일본학계, 평형수 활용한 핵오염수 처리 논의했다
2021년 9월 공기조화위생공학회 학술대회
"담수와 섞은 뒤 유조선에 실어 중동지역으로"
"일본의 풍부한 수자원 활용, 30~40년 사막녹화
일본대사관 “조르세티 제보는 사실무근, 허위”
본성(외무성)과의 장시간 논의 끝에 전화통보
"가짜문서"라면서도 '진짜 2238호 문서' 안 밝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은 지난 14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보도한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대형 선박 평형수 활용 농도희석 계획에 관한 ‘조르세티’의 제보 내용을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평형수 처리 계획’ 논의 학술강연 논문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번에 보도한 ‘평형수 계획’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지만, 후쿠시마 핵오염수 처리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대형 선박 평형수를 활용해 핵오염수(그리고 하수 처리수)를 희석해 해외로 내보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예컨대 일본의 공익사단법인 공기조화 위생공학회가 주관한 대회에서 발표된 학술강연논문 ‘글로벌 관점에서 본 처리수 대책 구상 작성 제안’(공기조화 위생공학회 대회 학술강연논문집. 2021.9.15.~17. 후쿠시마) 같은 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제보 내용 “사실무근”
일본대사관은 14일 오후 3시쯤 메일을 통해 조르세티가 제보한, 일본 외무성 동북아 1과가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 앞으로 보낸 ‘ALPS 처리수(밸러스트수[ballast水])’라는 제목의 ‘문서번호 제2238호(취급주의)’ 문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며, 그런 문서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한 일본대사관 언론담당관을 통해 이 문서 진위 여부 확인을 요청한 <더탐사> 쪽에 전화를 통해 알렸다.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소통관 앞에서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연 <더탐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 <더탐사>는 메일로 해당 문서를 일본대사관으로 보냈고, 대사관은 그 직후 문서 수령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오후 5시에 <더탐사> 쪽에서 전화를 걸자 언론담당관이 받아 “(전송문서를) 봤는데, 본성(외무성)과 얘기 중”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2시간 반쯤 더 지난 7시 30분께 이 언론담당관이 이번에는 <더탐사> 쪽에 전화를 걸어 해당 문서의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언론담당관은 “외무성 공문이라고 주장하는 건 명백한 허위문서”라며, <민들레>와 <더탐사>가 지난 6월부터 보도해 온 ‘외무성 간부 A’의 대담 녹취록, ‘IAEA(국제원자력기구) 문서’ 등도 모두 “외무성 공문을 위조한 위장문서”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악의적인 허위”이자 “우리 사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부정”이라며 “일본정부는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 문제와 관련한 일본 외무성의 공식입장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주한 일본대사관이 실제로 그런 문서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주한 일본대사 앞으로 보낸 것으로 돼 있는 그 문서를 받지 않았거나 그것이 거짓문서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본성(외무성)에 연락해서 몇 시간이나 논의할 필요도 없이 바로 그런 것 받은 적 없다거나 진위 여부를 확인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늘 그렇게(본성과 협의) 해왔다”고만 대답했다. 그는 또 그 문서의 문서번호(2238호)에 해당하는 다른 문서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있을 것”이라면서, 있더라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서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방사능 농도 3만배 사실이면 투기 절대불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 미래’ 대표는 스트론튬 90(Sr-90) 등의 핵종 방사능 농도가 기준치의 3만 배를 넘었다는 제보 문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바다에 절대 버려서는 안될 결정적인 요소”라며, 사실 여부는 IAEA가 문제의 수조들 핵오염수들을 당장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제까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밝힌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사능 농도는 1만 9909배가 최대치라고 말했다.
공익사단법인 주관 논문 ‘핵오염수 평형수 처리계획’
이른바 ‘평형수 계획’에 관해 일본에서 논의된 사례를 보여 주는 문서들 중에는 일본 고사카 기술사 사무소 기술연구자 고사카 신지가 작성한 논문 ‘글로벌 관점에서 본 처리수대책 구상 작성 제안-처리수와 일본의 수자원을 활용한 사막의 녹화’가 있다.
이 논문의 서두 영문요약은 오랫동안 일본사회의 걱정거리였던 삼중수소(트리튬) ‘처리수’(핵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계획에 관한 간단한 내용 소개와 함께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처리수와 일본에서 풍부한 수자원을 30, 40년간 사막 삼림 창생에 활용하는 것은 물이 부족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글로벌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동 원유 실은 대형 탱커(유조선) 평형수 활용
논문은 핵오염수나 하수를 처리할 때 방사능 농도를 낮추기 위해 섞는 희석용 물을 해수가 아닌 일본의 강물 등 담수로 한다는 점에서는 바닷물(해수)을 희석용 물로 쓰는 조르세티 제보 문서의 ‘평형수 계획’과는 다르지만, 대형 선박의 평형수를 활용한다는 기본구상은 같다.
논문은 건조지대가 많은 중동지역 녹화사업을 위한 물 운반 수단으로 일본에 원유를 싣고 오는 대형 탱커(tanker, 유조선)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선박은 하역 때 선박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추(錘)’ 역할을 하는 선 내 주입 해수(평형수)가 필요하다. 선박 바닥의 평형수 탱커에 해수를 주입함으로써 선박 자체의 무게중심을 아래쪽으로 내려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적재화물 중량 톤수에 대한 평형수 탱크 용량은 대체로 컨테이너선이 30%, 원유 탱크는 40%인 것으로로 알려져 있다.”
2018년에 일본이 중동에서 수입한 원유는 하루 269만 배럴이며, 그 가운데 38.2%가 사우디아라비아산이었다. “사우디로 돌아가는 탱커는 수입 원유량의 40%에 해당하는 해수를 평형수로 싣고 간다. 1배럴=159리터로 환산하면, 중동으로 돌아가는 탱커는 평형수를 하루 17만 1000입방미터, 사우디로 가는 것은 하루 6만 5000입방미터씩 나르게 되는 셈이다.”
기타규슈 시, 평형수 이용 서부 호주 녹화사업 검토
논문에 따르면, 기타규슈 시에서는 하수도 자원의 유효한 활용을 촉진하거나 저탄소사회 만들기 등의 관점에서 서부 호주와 항로가 있는 기타규슈 시의 하수 처리수를 평형수 선박이나 액체 수송선 등으로 실어날라 서부 호주의 물 부족 해수와 담수화로 말미암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삭감할 수도 있다는 계산 아래 실제로 하수 처리수 수출의 사업화 가능성을 관민 일체로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수송된 처리수는 서부 호주의 철광석 채굴 때의 분진대책으로 이용될 예정이었다. 관련 인프라 미비 등으로 아직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이른바 ‘평형수 계획’이 일본에서는 구체적인 사업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후쿠시마 핵오염수 처리 구상에도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문도 지적했듯이, 핵오염수를 ALPS로 처리하고 희석해서 해외로 수송하는 것이 가능할지, 또 이를 받아들일 나라가 있을지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많지만, 향후 30~40년 동안 지속적으로 배출될 핵오염수 문제 해결에 해양 투기가 일본으로서는 가장 값싸고 ‘안전한’ 처리방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를 위해 대형 선박 평형수를 활용한다는 구상도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조르세티가 제보한 문제의 ‘외무성 공문서’의 사실 여부에 대한 최종 확인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 국제무역선의 평형수를 활용한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사능 농도 희석 방안은 매우 구체적인 단계에서 논의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