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공개 찬성" 이태원 참사 유족들 목소리 본격화

"우리 유가족 모임은 전부 동의해요…모두가 찬성입니다"

"이름 공개가 패륜이고 잘못된 거다? 우리한테 물어봤나요?"

"자기들끼리 상상해서 하는 얘기…정부는 폰 번호 다 알아"

"동의 안 받고 위패·영정 없는 분향소 설치, 그게 2차 가해"

2022-11-26     김호경 에디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1.22 연합뉴스

시민언론 민들레가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명단을 공개한 데 대해 찬성한다는 유가족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개인의 잘못이나 불운 탓이 아닌 공적 안전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대형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이 추상적인 숫자 뒤로 지워진 상황에서 적어도 이름을 찾아주고, 공동체가 그들의 삶을 헤아리며 애도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자는 취지에서 명단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유족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기는 불가능한 조건에서 희생자에 관한 다른 추가적인 신상 정보 없이 추모 대상을 개별화하고 상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이름만 공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상당수 유족이 침묵을 깨고 기자회견과 개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감과 동의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고(故) 노류영 씨의 어머니는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진행자가 "유족들은 원하지 않는데 왜 명단을 굳이 공개하려고 하냐 하고 반대하는 측도 있었다"고 말하자 "아닙니다. 우리 유가족 모임은 전부 동의해요. 전부 다 찬성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우리 단톡방에 있는 분들은 전부 찬성"이라며 "다 동의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토로했다. "합동분향소도 마찬가지겠지만 위패도 하나 없고 아이 얼굴 하나도 없이 그게 무슨 분향소예요. 세월호 때도 아이들 사진을 다 걸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애들은 누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요. 누가 죽었는지 누가 어떻게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그냥 형식적인 국화꽃만 갖다 올리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싫어서 우리 딸은 거기다 안 올렸어요."

고(故) 이지한 씨 부모님도 24일 YTN 라디오 '이슈&피플'에 출연했다. 이지한 씨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름 공개요? (정부가) 우리 유가족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158명에게 하루면 끝나는 일 아닐까요? 번호 다 알고 있잖아요. 왜 그런 작은 조치조차 취하지 않으면서 패륜이다, 이름을 공개하는 건 잘못된 거다. 우리한테 물어봤나요? 안 물어봤잖아요. 자기들끼리 상상해서 하는 얘기잖아요."

이지한 씨 아버지는 여야 지도부와 유족들이 만났을 때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님도 접견했고,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도 만났습니다. 너무 분위기가 틀렸어요. 분위기가 상반됐고. 얼마 전 정진석 비대위원장 만난 자리에 20여 분이 같이 갔습니다. 국민의 힘에서는 여섯 분이 나오셨고요. 근데 들어가자마자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역시나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우리를 만나는구나. 한 분은 저희 유가족들이 슬픔을 얘기하는데 졸고, 또 한 분은 휴대폰 게임을 하시는 건지 뭘 보시는 건지 계속 만지작거리시고, 한 분은 저희 얘기를 듣다 말고 언성이 많이 오가니까 화가 나셨는지 나가버리셨고. 나중에 안 들어와서 저희가 정진석 비대위원장한테 물었습니다. 기분 나빠서 나간 분들 왜 안 들어오냐고. 끝날 때까지 안 들어왔습니다. 저희가 이렇게까지 무시를 당해야 합니까?"

지난 21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비공개 면담을 가진 뒤 기자들을 만난 유족은 "역대 어느 분향소에 위패가 없는 데가 어디 있느냐"며 "(명단을) 공개했냐, 안 했냐 가지고 논쟁하지 말고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2.11.22 연합뉴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주관으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유족들과 민변 측은 "명단 공개보다 유가족을 모이지 못하게 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존재 자체를 숨기려는 정부의 조치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고(故) 이민아 씨의 아버지는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면서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됩니까? 정부는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우리 얘기에 답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기자회견 말미에 한 유족은 발언 기회를 얻어 "매스컴이나 인터넷 기사로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쪽으로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 다 같이 하시는 말씀이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라고 했습니다"라며 "그 전에, 저희들 동의 없이 위패 없고 영정 없는 분향소, 그 또한 저한테 2차 가해였습니다. 한마디도 그거에 대해 말씀해주는 전문가는 없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장례 치르고 분향소에 윤석열 대통령 앞에 교복 입은 학생이 무릎 꿇고 통곡하는 것을 봤습니다"며 "그게 분향소가 맞나요? 그런 분향소를 보셨나요? 저는 못 봤습니다"라며 오열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언론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꾸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고 하는데 정작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가 유족에게 2차 가해라는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는 없었다는 울분이자 한탄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명단 공개와 관련된 여러 차례의 질의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유족들을 대리하고 있는 민변 소속 윤복남 변호사는 "명단 공개가 핵심이 아니라 희생자들을 온전하게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정부의 조치가 문제"라며 "정부의 선제적인 (명단 공개) 조치가 없다 보니 언론사가 됐든 종교 행사가 됐든 사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형태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으니 시민언론 민들레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추모 미사 등에서 명단이 공개돼온 저간의 상황을 요약한 것이다.

앞서 한 유족은 지난 17일 KBS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제가 만난 유가족분들 대부분 희생자 명단 공개에 찬성하세요. 사진까지 달라고 하면 드리겠다고도 하시고요"라고 전했다. 다른 유족은 14일 KBS와 인터뷰에서 "100%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딸아이도 그걸 원한다고 생각을 하고…."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및 소속 의원들은 지난 14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간담회에 참석한 유족들은 명단 공개에 반대하지 않았다. 안 수석대변인은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했는데 국민 속에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며 "유가족 중에서는 희생자들 명단이 공개되고 사진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된 추모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갖고 계신 분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민주당 10·29 참사대책본부 소속 신현영 의원은 "오늘 저희가 받은 느낌은 오히려 이 사건이 빠르게 잊힐까 봐 걱정하신 분들이 대다수이고, 156명 명단 공개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유가족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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