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와중에 골프·만찬, 견인차 방해까지

"서울 간대도 상황 못 바꾼다"던 윤 대통령

원희룡, 오송 참사현장 진입로 막고 인터뷰

홍준표 재난상황 골프 비판일자 "기차는 간다"

세종시장은 집중호우 시작한 날 두 시간 만찬

2023-07-18     이승호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최근 12년 내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나는 등 대형 참사가 일어났지만 대통령도, 주무장관과 여당대표도 부재중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등 외국 방문중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0일 5박 7일 일정으로 출국해 동포 간담회 참석 등을 위해 미국 방문중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돼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중으로 직무 정지 상태다. 한창섭 차관이 직무대행을 맡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자리에 있지만 존재감이 없다.

와중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부재에 대해 비판 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이 와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투로 해명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참사 현장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느라 견인차량 진입을 방해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골프를 즐겼고, 최민호 세종시장은 시청사 안에서 만찬 행사를 가졌다.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는데 왜들 저러나”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폴란드·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대통령도 상황 못 바꿔”대통령 “공무원들 미리 대처해야”

나라에 물난리가 났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이 서둘러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통령실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필요한 (재난 관련) 지시는 하겠다, 생각해서 하루에 한번 모니터링하신 걸로 알고 있다”는 말도 내놨다. 다수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속출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이 ‘하루 한번 모니터링’을 하면 된 거 아니냐는 말도 어이없지만, 지난 17일 귀국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윤 대통령은 귀국 당일 중대본 회의 자리에서 “기후변화 상황을 늘상 있는 것으로 알고 대처해야지, 이상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은 완전히 뜯어고쳐야 된다”며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을 공무원들에게 ‘미리미리 대처’를 요구한 것이다. 국가재난관리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유체이탈이라도 했는지 장기판 훈수 두듯하니 기이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견인차량을 막고 인터뷰 중인 원희룡 장관.  YTN 뉴스화면 갈무리

현장 견인차량 진입 막아선 원희룡 인터뷰

원희룡 장관은 지난 16일 오후 많은 희생자를 낸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찾았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참사 현장 근처의 도로 한복판이었다. 그 바람에 사고 현장 수습을 위해 출동한 견인 차량이 지나갈 수 없었다.

누군가가 원 장관에게 “지금 견인 차량 들어가야 하니 잠깐 좀 비켜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원 장관은 “(기자회견) 짧게 하고…”라고 말하곤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피해달라” “잠시만, 견인차 들어온다는데” “잠깐만 피해달라. 차부터, 차 들어와야 한다고, 차부터”

길을 비켜달라는 부탁이 거듭 이어졌다. 그래도 원 장관은 인터뷰를 계속했다.

다시 한 남성이 원 장관에게 “장관님, 죄송합니다. 지금 견인차 들어온다고 해서, 조금만 피해달라고 해서”라고 알렸다. 다섯번째 부탁이었다. 그제서야 원 장관은 “예예, 우선 좀…”이라며 길 한편으로 물러섰다.

길을 막은 원 장관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에 원 장관은 18일 페이스북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어 뒤에서 견인차가 오는지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었고, 제가 ‘짧게’라고 말한 것은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현장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인터뷰는) 짧게’하자고 ‘기자들에게’ 말한 것”이라며 “수초 후에 보좌진으로부터 견인차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즉시 옆으로 비켜섰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은 변명에 가깝다. YTN의 ‘돌발영상’이나 CBS의 ‘노컷브이’ 등 당시의 현장 영상을 보면 ‘길을 비켜달라’는 소리가 크게, 아주 잘 들린다. ‘짧게 하고’는 누군가의 “지금 견인차량 들어가야 합니다”에 대한 답변이었다. ‘수초 후’는 실제 약 20초 후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차량에 올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3.7.17 연합뉴스

홍준표 “그래도 골프는 친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토요일인 지난 15일 골프장을 찾았다. 언론이 “재난 상황에 골프를 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자 홍 시장은 발끈했다. 홍 시장은 즉각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구는 다행히 수해 피해가 없다”면서 “주말에 골프를 치면 안된다는 그런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홍 시장이 골프를 치던 15일, 대구는 북구 팔거천의 물이 불어 한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홍 시장은 “팔거천에서 60대 한 분이 자전거를 끌고 출입제한 조치를 한 가드레일을 밀치고 무단으로 하천변에 들어갔다가 미끄러져 빠진 사고”라며, 시장의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홍 시장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트집으로 여기기도 했다. 홍 시장은 “전국을 책임진 대통령도 아니고 나는 대구시만 책임지는 대구시장입니다. 일도 못하는 사람들이 입만 살아 가지고 걸핏하면 트집이나 잡고. 이제 그만 트집 잡아라. 그래도 기차는 간다”라고 비아냥거렸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17일 논평을 내고 “물론 시장이 직접 수해복구에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재해에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하고, 대구시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시장이 자리 잡고 있어야 시민은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7일 수해를 입은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일대를 찾아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방문에 “사진만 찍고 가면 다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청주시 하나노인전문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오송 지하차도 침수 희생자를 조문한 뒤 “진상규명과 원인을 빠르게 분석해 만약에 책임자가 있다면 엄중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겠다”며 윤 대통령의 발언을 반복했다. “나도 행정을 했던 사람이잖아.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통령도 화가 나신 거지. 현장에 안 가 있고 어디 가 있느냐고.”

지난 17일에는 박대출 정책위의장, 이철규 사무총장 등 당지도부와 정진석·홍문표 의원 등과 함께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충남 청양군을 찾았다. 그들은 주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김 대표가 ‘위로’와 함께 ‘지원약속’을 했지만 구체적인 피해보상 등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돌아가는 김 대표의 뒤에서 “사진만 찍고 가면 다냐” “왔으면 선물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주민의 말을 한마디라도 들어야지, 이게 뭐냐”고 소리쳤다.

 

최민호 세종시장이 지난 14일 폭우로 물이 불어난 반곡동 삼성천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 세종시

최민호 세종시장, 호우경보 발령한 날 ‘만찬 행사’

최민호 세종시장은 지난 14일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두 시간이나 청사에서 케이터링(음식 서비스 제공) 만찬 행사를 가졌다. 국장 2명 등 간부들도 참석했다. 사회적 기부를 실천한 기업인 등을 위해 준비한 만찬이었다.

이날은 충청권 집중호우가 시작된 날이었다. 세종시에는 낮 12시 10분을 기해 호우경보가 발령돼 있는 상태였다. 직원들도 대응 2단계 야간 비상근무에 여념이 없었다.

최 시장은 “계획된 행사여서 취소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상청은 행사 며칠 전부터 이미 심각한 집중호우를 예보하고 있었다. 덕담을 주고받았을 만찬은 얼마든지 뒤로 미룰 수 있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청 재난상황실에서 상황판을 보며 직원들로부터 집중호우 대비 현황을 보고받고 있다. 경기도청

김동연 경기지사 ‘신속하고도 구체적 대처’

이런 가운데 김동연 경기지사는 신속하고도 구체적인 대처에 나서 도민은 물론 다른 지역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기도는 청주 오송지하차도 사고와 예천 산사태로 사망한 경기도민 3명에게 사망지원금 2000만 원(장례비 등 포함)을 내주기로 했다. 생계비(4인 가구 기준)로 162만 원도 지원한다. 추가로 확인되는 피해자와 부상자들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김 지사는 이런 행정적 지원 외에도 SNS를 통해 도민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책도 함께 찾는다. 지난 14일 트위터에 올린 글은 19일 오후 1시 현재 ‘뷰 수’가 68만 5000에 육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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