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향 IAEA 보고서"…한국 야당에 혼쭐 난 그로시

'오염수 마실수 있다' 그로시에 "일본에 그렇게 권고하라"

예상 밖 십자포화에 그로시 안절부절, 당황한 기색 역력

민주 "IAEA, 처음부터 안전 결론"…'과학 동원' 짜맞추기

이소영 “그로시, 우리 질문에 구체적 답은 거의 없었다"

시민들, 국회 본청 밖서 시위…"그로시 고 홈!" 외치기도

2023-07-09     이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입국이 예정된 7일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 인근에서 시민단체가 그로시 사무총장의 방한을 반대하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3.7.7. 연합뉴스

방한 중인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혼쭐'이 났다.

더불어민주당은 9일 오전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진행된 그로시 총장과의 면담에서 벼르고 별러 왔다는 듯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핵 폐기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이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한 IAEA 종합보고서의 부실함과 일본 편향성을 정색을 하고 집중적으로 따졌다.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대책위) 주최의 이날 면담에선 먼저 그로시 총장이 모두발언을 통해 IAEA 종합보고서의 '공정함'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대책위 위원장인 위성곤 의원과 대책위 고문으로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에 반발해 14일째 단식 중인 우원식 의원의 발언이 이어졌다.

 

민주당 일본 핵오염수 대책위 면담에 참석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대책위원장인 위성곤 의원이 모두발언을 통해 IAEA 보고서의 문제점을 비판하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2023 07 09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예상 밖 십자포화에 그로시 안절부절, 당황한 기색 역력

그로시는 자신의 발언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조목조목 따지며 IAEA 보고서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이어가자 당황하거나 안절부절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경을 벗거나 손목시계를 보고, 간간이 한숨을 쉬기도 했다.

양측 모두발언이 1시간 계속되는 동안 국회 본청 밖에선 일부 시민이 "그로시 고 홈!" "돈 먹었냐?" 등의 구호를 외쳤고 이 소리가 회의실까지 들렸다.

위성곤 의원은 먼저 "사고 원전의 핵폐기물이 수십 년에 걸쳐 바다에 버려지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그러나 IAEA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우원식 의원은 그로시를 앞에 두고 단도직입으로 몰아세웠다. 그로시는 8일 일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쿠시마 제1원전 핵 오염수를 그냥 '물'(water)이라고 부르면서 "나도 마실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말해 '일본 국익 전도사'를 자청했다.

이 발언에 우 의원은 "그럴 정도로 안전하다고 확신한다면 그 물을 물 부족 국가인 일본이 국내에서 음용수나 공업 용수, 농업 용수로 쓰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할 의사가 없는지 묻고 싶다"며 "한국민은 굳이 오염수를 마실 생각도 오염수에서 수영할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고문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저지 대책위원회-국제원자력기구 면담에서 그로시 사무총장에게 원전 오염수 처리 비용과 관련된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2023.7.9 [공동취재] 연합뉴스

'오염수 마실수 있다' 그로시에 "일본에 그렇게 권고하라"

우 의원은 일본의 핵오염수 방출 계획이 '안전'하다는 IAEA 종합보고서의 판단에 대해 "아주 단정적 결론"이라면서 "전적으로 신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면담에서 민주당 대책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종합하면 몇 가지로 압축된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정부가 처음부터 해양 방출 외에 다른 대안을 검토하지 않았고, 그런 일본의 입장에 맞춰 IAEA가 "일본 요청 부분만" 검토했다는 점이다.

IAEA 일반안전지침(GSG) 8,9에 따르면 핵폐수 해양 투기의 경우 피해보다 이익이 큰지, 주변국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사회·환경·경제적 평가를 통한 '최적의 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IAEA는 규정을 따르지 않았고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은 일본에 떠넘겼다.

우 의원은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한 안전성 평가의 여러 결함에도 IAEA가 이를 정당화한다면 주변 국가인 회원국에 대한 명백한 권리침해에 해당한다"며 "보고서에는 해양 방출 정당성 확보는 일본 정부의 책임이라며 IAEA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일본 경제산업성 자문기관은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5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 의원에 따르면 △ 지층 주입(3조6340억 원) △ 지하 매설(1조4843억 원) △ 수소 방출(9140억 원) △ 수증기 방출(3189억 원) △ 해양 방출(310억 원) 등이다. 해양 방출이 가장 싸다.

우 의원은 "IAEA는 처음부터 다른 대안 없이 해양 방류에 대한 기술적 지원과 일본 정부 요청 사안에 대한 안정성 검토에만 한정했다"며 "처음부터 중립성,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검증이라는 게 우리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8일 일본대사관 앞 정리 집회에서 47차 촛불대행진 참가 시민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를 찢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23.7.8. 사진작가 이호

민주 "IAEA, 처음부터 안전 결론"…'과학 동원' 짜맞추기

결국 IAEA가 미리부터 일본의 해양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된다고 결론을 내려놓고, 지난 2년간 과학과 기술의 이름으로 짜 맞춘 보고서라고 민주당은 의심한다.

2021년 일본의 방류 계획 발표 때 즉각적인 그로시의 환영 표명에서 보듯이 IAEA는 다른 대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애초부터 일관되게 해양 방류 방안을 지지해 왔다는 것이다.

우 의원은 "해양 방류가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미리 결론을 내린 것은 셀프 조사이고 일본 맞춤형 조사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일본은 보고서를 오염수 해양 방류의 통행증으로 여기고 수문을 열 타이밍만 보고 있다"고도 했다.

우 의원은 "앞으로 방류 후 5개월, 7개월 후 안전하면 괜찮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는 30년간 태평양 바다에 방류하게 된다"며 "아무리 극소량이라도 오랜 기간 먹이사슬을 통해 체내에 축적되면 결국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그는 "안전하다고 검증될 때까지 안전하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한 달 전 후쿠시마 해역에서 잡힌 기준치 180배가 넘는 세슘 우럭이야말로 그 증거이고 과학이다"라고 덧붙였다.

핵 오염수 정화 장비인 다핵종제거설비(ALPS)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 삼았다. 위성곤 의원은 "IAEA는 오염수를 통제된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바다에 방류하면 사람과 환경에 미치는 방사능의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그러나 보고서는 ALPS의 성능 검증도 하지 않았고 오염수 방류가 장기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도 검토하지 않았다"고 직격했다.

 

 9일 오전 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대책위원회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면담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2023.7.9 [공동취재] 연합뉴스

민주 "정상 원전 냉각수와 사고 원전 핵폐기수는 달라"

그리고 보고서의 안전성 평가에 동원된 1차 샘플이 현재 정상 가동 중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냉각수라는 점에서 이를 토대로 한 평가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 의원은 "정상 원전의 냉각수와 사고 원전의 핵폐수에 들어 있는 핵종은 본질적 차이가 있다"며 "IAEA가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정상 원전에 국한된 것이지, 사고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은 아니다"라고 따졌다.

민주당은 일본의 해양 방류는 "일본만의 고유 주권이라고 하면 안된다"면서 고준위 핵폐기물의 해양 방류에 '최악의 선례'가 될 위험이 있는 만큼 일본의 해양 방류 계획의 연기를 촉구하고 IAEA의 동참을 당부했다. 뒤이은 30분여분의 비공개 면담에서도 민주당은 일본에 해양 방류 아닌 다른 대안의 검토와 방류 일정 연기를 함께 요청하자고 그로시에게 다시 제안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그로시 총장은 대안 검토나 방류 일정 연기 제안에 대해 답변을 회피했다"며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 설명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질문에 구체적 답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저지 대책위원회와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면담이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7.9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소영 "그로시, 우리 질문에 구체적 답은 거의 없었다"

이 원내대변인은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해사기구(IMO), 유엔인권이사회 등 보건·환경·인권과 관련한 국제기구와 함께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 오염수 방류가 해양생태계와 인류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함께 분석할 것을 제안했다"며 "그로시 총장은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IAEA는 지난달 14개 문항으로 구성된 민주당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이날 보내왔으며, 민주당은 내부 검토를 거쳐 IAEA의 답변서를 언론에 공개할 계획이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민주당 대책위 면담을 마친 뒤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뉴질랜드로 떠났다. 그는 출국 전 트위터에 민주당 면담 사진을 올리고 "IAEA에서는 한국민들의 우려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투명성과 열린 대화가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7일 방한 당시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자정을 넘겨 '몰래' 입국한 그로시는 8일에는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나 IAEA 종합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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