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특별법 패스트트랙 지정…유족 "이제 시작일 뿐"
유가족 단식 11일만에…국힘 불참속 본회의 통과
지켜본 유가족 박수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 법안에 대한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 지정 동의의 건은 총 투표수 185표 중 가(可) 184표, 부(否) 1표로써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땅 땅 땅)"
30일 오후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단식 농성에 들어간 지 11일 만의 일이다.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가족들도 박수를 치거나 서로를 끌어안았다. 일부 유가족은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며 울어 다른 유가족들이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는 이태원 참사의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해 특별검사(특검) 수사가 필요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해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법안은 상임위 180일 이내→법사위 90일 이내→본회의 60일 이내 상정 단계를 밟아 최장 330일(11개월)이 소요된다. 이날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인 내년 5월 본회의에서 표결할 수 있게 됐다.
여당 "정쟁 법안 동의 못해"…유가족은 탄식·눈물
하지만 본회의를 보는 내내 유가족들은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이날 이태원 참사 특별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앞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부의 요구의 건을 의결했고, 이에 항의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퇴장했기 때문이다. 퇴장 뒤 국민의힘 의원 중 몇몇은 반대 토론에 참석했지만, 나머지 전원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 표결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아울러 반대 토론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발언은 유가족의 가슴을 후벼 파기에 충분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국회 국정조사가 '반쪽짜리'로 끝맺음을 했음에도 "국회는 56일간에 걸친 성역없는 국정조사를 진행했다"면서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그 책임소재가 비교적 소상히 규명됐다. 세월호 참사와는 달리 더 이상의 의혹과 음모론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가족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진상이 규명됐다고 단정지은 것이다.
그는 "민주당 등 야당이 이 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정부와 여당에게 참사를 외면하는, 유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나쁜 정권, 비정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서"라며 "1년 9개월간의 특조위, 그리고 최장 10년간 추모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참사를 정쟁화하고, 총선용으로 키워나가려는 의도, 민주당의 위기 수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의도가 이 법에 있기 때문에 분명히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발언에 일부 유가족들은 방청석에서 일어난 채로 흐느꼈고, 다른 유가족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흐느끼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의원의 발언에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창피한 줄 아세요!"라고 큰 소리로 항의했다.
같은 당 전봉민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와 법률상 문제점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법률 심사와 통과가 목적이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말까지 무조건 진상조사위를 발족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태원 참사를 이용하겠다는 정략적인 의도"라고 했다. 이에 유족들 사이에서 탄식과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오로지 윤석열 정부를 흔들어보겠다는 정략으로 가득 차 있다"며 "민주당 의원님들, 아니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광우병, 사드, 후쿠시마에 이어 이제는 이태원 참사라는 국민적 아픔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고 한다. 더 이상 민주당의 거짓선동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야당 "진상 규명하는 게 어떻게 정쟁될 수 있냐"
야당 의원들은 정쟁이 아닌 당연한 책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그동안 참사라고 불릴 정도의 큰 재난이 발생하고, 피해자들의 통곡과 절규가 있은 후에야 관련 법령이 만들어지고 제도가 정비됐었다"며 "이러한 일들은 국회가 먼저 했어야 하는 일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특별법도 마찬가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국회가 제대로 응답해야 된다"며 "정쟁을 일으키는 법이라 얘기하지만, 이 법은 유가족이 원하는 내용에서 한 글자도 바꾼 것 없이 그대로 발의하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유가족이 정쟁을 원하지도 않고, 특정한 정당의 이익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법안 내용에 대한 이견은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이) 스스로 필요성에 공감했던 법안에 대해 갑자기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며 "참사의 추가적 진실규명을 애타게 기다리는 유족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두 번 짓밟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은 참사의 유족들과 시민들께 21대 국회가 보여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 정치"라며 "이렇게 텅 비어있는 여당 의원님들의 의석을 보면서 너무나 큰 실망과 슬픔을 느낀다. 재난마저 정쟁화하는 정부·여당의 비정함과 무책임함에 대한 적나라한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서 이태원 참사가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으로 발생한 참사임을 밝혔지만, 정쟁을 반복했던 여당과 책임 회피와 거짓 증언으로 일관했던 정부로 인해서 미완으로 끝이 났다. 그날의 진실 그리고 책임에 대해 유가족들과 피해자와 우리 국민들께, 아직까지 납득할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검경 수사로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규명됐다고 했던 이태원 참사 중대본의 책임자 한덕수 국무총리, 참사 당시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구조되고 이송됐으며, 어떤 조치를 받았는지, 그 과정은 적절했는지 알고 있느냐"며 "유가족들이 그렇게 궁금한 이 질문들 앞에서 여기 있는 누구 하나 속시원히 답할 수 있냐"고 말했다.
용 의원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가족이, 자식이, 연인이, 그리고 친구가, 국가의 무능으로 참사를 당했는데,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책임질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를 묻는 것이 어떻게 정쟁이 될 수 있겠냐"며 "21대 국회 내에 벌어진 참사에 대해서 21대 국회가 최소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 "이제 시작일 뿐…한걸음씩 앞으로 나가야"
이날 우여곡절 끝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탔지만, 향후 법안 심의 과정에서 특별법안을 폐기시키려는 국민의힘과 야당의 충돌은 자명해 보인다. 긴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 유가족에게도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직무대행은 패스트트랙 지정 뒤,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짧은 소회를 밝혔다. 그는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곡기를 끊고 단식을 했던 법안을 얻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면서도 "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단지 곡기 끊기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하고 통과를 위해 묵묵히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면서 "자식 잃은 이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부디 살펴주시고 저희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란다. 법안이 통과돼 우리 아이들 방치해서 죽인 그 책임있는 모든 자들이 죄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회초리를 들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태원 유가족들은 11일째 이어온 단식을 중단하기로 했다. 또 지난 8일 시작한 '이태원 특별법 제정 촉구 159㎞ 릴레이 시민행진'도 이날 오전 행진을 마지막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7월 중 국회를 향한 행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