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일본도 쉬쉬 하며 여는 '관동대학살 추모전'

일본 전시회, 우익 공격 걱정돼 전시회 장소 바꿔

한국은 국회 희망…사무처 검열 우려돼 '제3 장소' 예비

작가들 "이광재 사무총장·김진표 국회의장 또 검열?" 걱정

'굿바이 망명전' 작가들 대거 참여…재일동포 작가도

2023-06-10     이승호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예술가 50여 명이 손을 잡고 오는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 <관동대지진 100년 만의 통곡 아이고AIGO전>을 연다. 관동대학살 당시의 만행을 고발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시회다.

주최측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붕괴의 원인이 된 동일본 대지진 때도, 1995년 고베에서 일어난 한신 대지진 때도, 또다른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때도 혐한 유언비어가 퍼지고 일본인들의 자경단이 꾸려지곤 했다”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처럼, 두 나라가 진정한 화해로 나아가는 길은 과거의 아픔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작가들은 ‘언제, 어디서 전시해야 하나’라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두 나라 모두 ‘정치적 이유’로 날짜와 장소를 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시회는 일본에서 먼저 열린다. 8월 15일~21일 관동 지역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된다. 주최측은 애초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한 사립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측 관계자들이 “사립 갤러리는 일본 우익의 전시 취소 압력과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며 난색을 표해 다른 곳으로 결정했다. 우익 세력이 전시회를 무산시킬 경우, 자신들의 ‘성공 사례’로 여길 수 있다는 점도 옮긴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일본측 참여 작가들의 이름을 극히 일부만 공개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상황은 더 고약하다. 주최측은 일본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한국 전시회를 일주일간 열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장소와 날짜조차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일단 전시 장소로 서울 여의도 국회 로비를 희망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게릴라처럼 또다시 <굿바이 망명 작가전>을 제3의 장소에서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

일정이 불투명한 것은 국회사무처의 ‘예상되는 사전 검열’ 걱정 때문이다. 국회사무처는 지난 1월 내규에 ‘전시 목적 로비 사용 허가’ 조항을 새로 넣었다. 신설 조항에 따르면 작가들은 ‘국회에 전시 희망기간 두 달 전에 작품 사진을 제출해 자문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굿바이전 인 서울>에 전시된 작품들을 강제 철거, 거센 비판을 받은 직후 삽입한 조항이다.

작가들은 ‘사전 자문위원회 심의’ 조항에 대해 “문화와 예술을 탄압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개정 전 내규에도 이미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사무총장 권한으로 행사를 취소할 수 있다’ 조항이 들어 있는데 구태여 이중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굿바이전 인 서울> 작품을 철거할 때 ‘사무총장 권한’ 조항을 들이댔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사전검열 장치’로 ‘자문위원회 심의’를 추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무총장 권한’으로도 부족해 ‘자문위의 판단’을 방패로 삼겠다는 의도다. 작가들은 조항 신설의 배후에 이광재 사무총장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주최측은 국회 전시회가 무산되면 서울 모처의 한 갤러리로 간다는 계획이다. 주최측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구체적 장소는 기사에 언급하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장소가 알려지면 '한국 우익의 방해'와 ‘정치적 탄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박재동·이하·고경일·아트만두·김동범·조아진·김운성 작가 등 36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올해 초 서울 여의도 국회 로비에서 <굿바이전 인 서울>을 열려다 국회사무처의 폭력적 철거로 무산되자, 서대문구 충정로 딴지일보 사옥 벙커1에서 <굿바이 망명 작가전>을 강행했던 작가들이다. 칠대삼창작모임 소속 작가들도 참여한다. 일본에서는 오카모토 하고로모 작가 등이 참여한다. 재일동포 작가도 함께한다.

 

 

전시 작품은 모두 50여 점이다. 유화·아크릴화·사진·일러스트레이션·만화 등 평면 작품부터 입체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각 예술 작품이 망라돼 있다.

작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왜 ‘관동대학살’을 역사에 아로새기지 못했을까” 물으며 “은폐된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역사와 평화를 아로새기기 위해 <아이고전>을 준비했다”고 입을 모았다.

고경일 작가는 “일본 우익의 방해로 한국 작가들의 일본 입국이 거부당할까봐 걱정”이라면서도 “일본쪽 언론은 인터뷰 요청을 해오는 등 관심이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 작가는 “<굿바이 망명 작가전> 때 시민들이 후원해준 500만 원 가량의 돈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는 취지로 이번 두 나라  공동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항공편도 참여 작가들이 각자 사비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예상 총경비는 모두 4000만 원쯤 된다.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족한 경비는 시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으고자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 시민들에게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보답한다. 이하 작가의 경우 ‘세계 유일의 인물화’를 그려준다.

 

일본 작가 가와메 데이지(1889~1958)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스케치'.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관동대지진이란?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민심이 흉흉해지자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들이 일본 여성들을 강간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유언비어에 휘둘린 일본인들은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다 죽여라” 소리치며 자경단을 조직, ‘조선인 사냥’에 나섰다. 일본군도 학살극에 가세했다.

이 학살극으로 조선인 6600여 명과 중국인 800여 명이 죽었다. 학살극을 만류하던 진보적 일본인들도 같은 꼴을 당했다. 100년 전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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