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 재난문자·네이버 먹통에…정보시장 된 트위터
‘실트’ 들여다보니 실시간 상황, 민심추이 그대로
실제상황, 달콤한 죽음, 지하철역, 오발령, 오세훈
행안부, 서울사람, 무정부상태, 휴전국가, 북풍몰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의 불길한 재난문자로 시작된 31일, 트위터는 하루종일 정보를 주고받는 시장과 같았다. 재난문자에는 ‘대피하라’는 말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TV를 틀어봐도 별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속보를 보려해도 네이버는 열리지 않았다. 유튜브를 튼 시민들은 촌각을 다투는 마당에 ‘15초 광고’가 넘어가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서울의 경우 대피소는 각 자치구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알고 접속을 시도해도 각 자치구나 정부 관련부처의 일부 홈페이지는 트래픽에 걸려 있었다.
“서울시민 시점. 대피경보로 새벽에 깸. 싸놓은 피난짐 없음. 대피소 모름. 네이버 접속, 서버 터짐. 유튜브에서 뉴스확인! 광고 15초 봐주세요. 공식 사이트에서 대피소 검색! 대기시간 삼십만구천육백분. 이미 다 죽었을 것 같은데요.” 한 시민이 온라인에 올린 경험담이다.
사람들은 트위터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정보를 알고 있거나 알아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퍼트렸다. 그러면서 ‘실트’(실시간 트렌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실트’에 오른 언어들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화법은 직설적이었고 날것의 분노를 내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드문드문 풍자의 글, 블랙유머도 눈에 띄었다. 그 모든 언어들이 민심이었다. 트위터의 ‘실트 언어’로 민심을 살펴봤다. 기사문 중의 붉은 부분이 ‘실트’에 오른 ‘말말말’이다.
서울시가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경계경보 재난문자를 보낸 오전 6시32분, 네이버는 한동안 접속이 안 됐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재난문자를 받고 포털로 몰리면서 트래픽이 급격하게 증가한 탓이다. 이 때문에 ‘네이버 접속’이 실트에 올랐다. 시민들은 트위터로 몰려갔다. “아우 네이버도 접속이 안돼서 개놀랬네. 오직 트위터만이 나에게 정보를 줌.” “TV 안 켜면 트위터가 제일 빠른 거 같아. 나는 네이버는 아예 접속도 안 되고 다음은 접속은 되는데 뉴스 안 떴더라고. 트위터에서 알았다.”
‘실제상황’ 실트 글은 오발령 전후가 달랐다. 오발령 전에는 공포에 떨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글이 많았다. 오발령이 확인된 뒤로는 실제상황이었다면 어쩔뻔했느냐는, 허탈과 분노의 글들이 태반이었다. “실제상황이었음 이미 황천길에 줄서서 앞사람한테, 님아 뭐였음? 먼일임? 했을듯.” “경계경보 다시 읽어봐도 걍 실제상황이었으먼 ‘죽을 마음의 준비 하세요!’임.”
시민들은 ‘실제상황’을 ‘달콤한 죽음이여’라는 말과 엮기도 했다. “만약에 실제 상황이었으면 어디로 대피할 준비할 지도 모르겠고 허둥지둥하다 걍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전쟁나면 그냥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이러고 죽어야 됨.”
‘지하철역’은 주로 오발령 전에 오른 말이다. 사람들은 ‘대피 경보가 발령되면 지하철로 피신하라’는 정보를 퍼뜨렸다. “(긴급재난문자는) 대피할 준비만 하라는 거고 공습경보로 바뀌면 가까운 방공호나 지하철역으로 뛰라고 합니다.” 정보를 얻은 뒤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집 근처엔 지하철역도 없고 터널도 없고…. 죽는건가.”
오발령이 확인되자 시민들은 화가 났다. 서울시 문자를 받고 화들짝 놀랐는데 행안부가 이를 뒤집는 문자를 보낸 상황이다. 시민들은 황당해 했다. ‘오발령 이지랄’이 ‘실트’에 올랐다. 한 시민은 ‘웃픈’ 상황을 소개했다. “오열하면서 짐 싸고 본가 가는 기차 예매하고 있는데 오발령 이지랄해서 개빡침.”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어머니와 주고받은 문자도 이미지로 올렸다. “오발령이라서 탄핵 시위나 나갈라고. 엄마 나 막지마.” 어머니는 딸에게 “ㅇㅋㅇㅋ”라고 답했다.
재난문자가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한 시민들은 자신들이 겪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사연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로 출근하는 경기도민이 회사에 전화해서 출근 어쩌냐고 했더니 출근해서 대피하라고 했댘ㅋㅋ” “경기도에서 잠을 자는데, 나는 서울 주민이라 재난 알람과 함께 일어남. 같이 자던 짝꿍은 경기도민이라 문자도 안 오고.” 지방에 살면 단점은 “전쟁 날 경우 자다가 죽음”이고, 장점은 “경계 오발령 안 받고 푹 잘 잘수 있음”이라는 글도 있었다.
자연스레 ‘서울시장’과 ‘오세훈’이 소환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판하는 글들이다. 특히 오 시장의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대응하는 게 원칙”이라는 어이없는 해명이 알려지면서 비난 글이 쏟아졌다. 이태원 참사 때는 안전에 소극적이더니 왜 이번엔 ‘과잉 대응 필요’를 들고 나오느냐는 비판도 많았다. “오세훈, 오늘은 안해도 될 짓을 했고 10·29 때는 해야할 일을 안했다.” “참 장하다. (오세훈 아닌) 오발령 서울시장.”
‘행정안전부’도 비난을 받기는 매한가지였다. 특히 책임을 떠넘기려는 행태가, 서울시와 함께 도마에 올랐다. “행정안전부에서 보낸 문자에 서울특별시가 혼자 사이렌 울렸어요, 하면서 꼬리짜르기 하고 있잖음. 정부 부처랑 지자체 사이에 국가안보 관련한 소통이 이렇게까지 안된다고? 장난하냐.” “수건 돌리나요? 놀고들 있네요.”
‘서울사람’ 아니면 문자도 못 받느냐는 항의가 터져 나왔다. 서울사람들 외에 ‘지방사람들’, ‘경기도민’ 등도 검색하면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수도권 사람도 몰랐다. 그냥 서울 사람들만 알고 있던 거다.” “서울사람들만 살고 나머지 지역은 개죽음이죠.” “서울사람들만 사람이냐, 경기도민은 죽으라고?” 서울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수도권 사람들은 ‘사람’이고, 지방사람들은 ‘사람 아님’이라는 풍자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묵직한 이슈들이 나왔다. 상황을 파악한 시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무정부 상태’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이번 정부가 너무 무서워졌음. 평소에도 답답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만 이런 상황이 오면 진짜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침.” “윤석열은 그 와중에도 출근도 안하고 NSC도 불참한 거다. 윤석열 정권의 주둥이 안보의 민낯과 비상시 대처능력이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휴전국가’는 대한민국이 전시국가가 아니라 휴전국가인데 오발령 나오는 상황이 한심하다는 내용의 글들을 담고 있다. “휴전국가에서 경계경보 오발령ㅋㅋ 사람 잘못 뽑은(난 안 뽑음) 걸로 국가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얼레벌레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웃기네. 아니 안 웃김.” “휴전국가에서 이런 긴급재난문자로 공포감 조성해놓고 오발령 문자입니다, 라고 하는 건 단순문제 아닌거 같은데. 국가위기상황 대처능력이 이거밖에 안된다는 뜻이고 지금 정부가 얼마나 능력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꼴이니까. 정부 스스로가 국가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리게 하는거.”
‘공포감 조성’과 ‘공포정치’에 언급된 글들은 뭘까. 재난경보를 울릴 상황이 아닌데도 일부러 ‘공포감 조성’을 위해 그랬다는, 공포정치를 의심하는 글들이었다. “이미 UN에 보고된 일 사전 안내도 없고 오밤중에 굳이 시간 지나서면서까지 재난문자 경보문자 보내는 거. 뒷북에 최소한의 정보 제공으로 공포감 조성해서 나락 간 지지율 올리려는 걸로밖에 안 보여서 ㅈㄴ 웃김.”
“일본 자민당이 툭하면 사이렌소리 경계경보 공포정치로 총선승리 했는데 군대 갔다온 우리한테 이걸 써먹는다고. 군 면제자가.” “미사일 아님. 미사일이었어도 무의미한 대피 얼럿으로 공포감 조성(시간 늦음 구체적 대피장소등 언급 없음). 서울시랑 행안부 손발 안맞아서 오발령 문자 날아옴. 실화임? 이 정도로 무능할 수가 있는 거임?”
이날의 혼란을 ‘북풍몰이’로 의심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총선 앞두고 북풍몰이라고 밖엔.” “경계경보 공포조장 북풍몰이.” “행안부 오발령했다. 경보 선제타격 북풍정치!”같은 글들이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야 했다. 분단국가의 대통령은 뭐하고 있느냐는 성토도 이어졌다. “휴전중인 분단국가라는 게 실감이 더 느껴지고 무서운데.” “내가 분단국가임을 잊고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으면, 국가가 알아서 경계경보와 오발령이라는 똥꼬쇼를 해준다.”
“윤석열은 낮잠 자고 서울시장이 띨띨해서 이번에는 북풍몰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심지어 분단국가라 실제 위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진짜 미사일 날아올 땐 저XX들 또 쇼 하다가 뒤지게 생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또다른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들은 “반려동물은 대피소 입장이 안됩니다. 임시 거주시설 등에선 ‘상황에 따라’ 수용 가능하지만, 관계자에게 인도하고 따로 생활해야할 수도 있어요. 집에 두고 대피하더라도, 절대 기둥에 묶어 놓고 가면 안됩니다.” 등의 정보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