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반대 논리 그대로… 윤, 의협 대변인인가?
간호법 거부권 행사하며 ‘탈 의료기관화’ 언급
의협회장은 ‘탈 병원화’ 들어 간호법 반대해
고령화 따른 의료서비스 확대 국민 요구 배반
“의사 반대하면 법도 못 만드는 의사공화국 민낯”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에 대해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보건의료 인력의 기득권인 의사들의 주장을 수용하고 국민의 의료서비스 확대 요구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머리발언에서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하며 거부권을 의결했다.
발언 중 ‘탈 의료기관화’란 단어는 의사들이 사용한 언어와 일치한다. 지난달 16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벌어진 의사협회의 간호법 반대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박명하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단어를 썼다.
“탈 병원화와 지역사회 돌봄 사업 이권 챙기기라는 간호법 제정 진짜 목적을 숨겨왔다.”
대통령이 의사들과 똑같은 취지에서 간호법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의사들은 간호법이 생겨 간호사들이 단독 개원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반대하고 있다. ‘탈 의료기관화’ ‘탈 병원화’에는 의사의 통제에 벗어나 간호사들이 단독 의료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간호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왜곡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간호법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 중 의사들은 ‘지역 사회’란 단어가 포함돼 간호사들이 의사 통제 없이 단독 진료를 하는 여지가 생긴다고 의심한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호법의 목적 조항은 향후 (간호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가 의사의 감독 없이 ‘지역 사회’에서 단독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호법 31개 조항에도 ‘단독 개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없다.
애초 여야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법안 원문에선 10조의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하는 독소조항이라며 의사들의 반발이 컸다. 이 조항은 상임위 법안소위 등을 거쳐 의료법과 똑같이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수정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확대 요구도 무시한 행위다. 다음은 발의안에 담긴 간호법의 입법 취지다.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기반한 의료인과 의료기관 규제 중심의 법률로서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료시스템에서 변화되고 전문화된 간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숙련된 간호사 등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근무 환경의 개선과 지역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간호 정책의 시행이 필요하나, 현행 의료법에는 이와 관련된 규정이 미비한 상태임.”
이런 취지에 공감해 2005년 4월 최초 법안 발의가 이뤄졌다. 가깝게는 2021년 3월 여야 3당이 동시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뤄진 2년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국민 다수도 법의 취지에 공감한다. 보건의료산업노조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56.1%가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고,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58.4%에 이른다.
대통령 본인이 대선 기간 중 발언한 간호법 입법화 약속도 어겼다. 지난해 1월 11일 간호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가지 (요구를) 주셨는데, 간호사님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간호사님들의 지위나 이런 것들이 명확히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략) 3당에서 법안 발의를 해서, 또 정부가 여러 가지 조정을 좀 해서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제가 원론적으로 법안이 국회로 오게 되면 우리 당 의원님들께 합당한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정말 공정과 상식에 합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저희 의원님들께 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거부권 행사에 대해 간호사협회 등이 참여한 보건의료노조는 16일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정치적 입장 차이를 이유로 정당한 국회의 입법권을 훼손한 유례없는 행정 폭거에 대해 더없는 분노와 함께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어떻게 지역 사회에서의 간호 업무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향점이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와 동일시되는가”라며 “정치적 논리에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마저 멈춰 세우는 행정 독재와, 의사 단체가 반대하면 그 어떤 법도 제정되지 못하는 의사공화국의 민낯이 더없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주축을 이룬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400만 회원은 환영의 뜻을 밝힌다”며 17일 예고했던 총파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민을 거부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회에서 재투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더는 민생을 내팽개치지 말라, 더는 국민을 분열시키지 말라, 국민 통합의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며 “하지만 윤 대통령은 기어이 ‘국민과 맞서는 길’을 택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