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당이 반대한다고 선거제 개편 못하나
[곽노현의 정치 새판] 게임 룰을 선수들이 정해야 한다는 궤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피해자가 없도록 정해야
위성정당 금지조항을 신설하고 2020년 개정선거법에 따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내년 총선을 실시하자고 주장하면 국힘당은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며 펄펄 뛸 게 틀림없다. 이유인즉 게임의 룰은 여야합의로 정해야 하는데 2020년 개정선거법은 일방적으로 정했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 선거제개편과 선거법개정에 관한 한 국힘당은 자신이 합의해주지 않는 이상 민주당이 어떤 개정안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선 안 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국힘당은 마치 법적인 비토권이라도 갖고 있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2020년 선거법개정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국힘당의 입장도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의해 뒷받침된다. 국민여론과 민주당도 국힘당의 게임의 룰 비유에 은근히 고개를 끄덕이는 듯해서 진짜 문제다. 이 글은 게임의 룰은 선수합의로 바꿔야 할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룰 변경은 무효라는 규범적 주장이 얼마나 그럴싸한 가짜, 즉, 사이비 주장인지를 상세하게 밝히는 데 있다.
우선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여야 합의로 바꾸는 게 정상이라는 국힘당의 주장부터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게임의 룰을 선수들이 직접 정해야 한다는 발상부터가 문제다. 선수들이 직접 게임의 룰을 정하면 최대한 경쟁을 완화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하게 마련이다. 관객이 정하면 거꾸로 경쟁을 최대한 강화하고 위험한 묘기를 격려하는 방향으로 정할 가능성이 높다. 심판들이 정하면 게임의 룰 판정이 쉽고 명확한 방향으로 정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게임의 룰을 누가 정하는지에 따라 게임의 성격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고 게임을 직접 뛰는 선수들이 정할 경우 궁극적으로는 선수들의 이익이 관철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임의 룰은 게임을 창조해서 경쟁을 유발하고 판을 조직하는 이들이 정하지 직접 뛰는 선수들이 정하는 법이 없는 배경이다. 실제로 게임의 룰은 구단주들과 심판들로 구성된 게임별 협회에서 정하지 직접 뛰는 선수들이 정하지 않는다.
게임의 룰을 누가 정하고 바꾸든 상관없이 실체적 원칙은 그 결과로 관객이건 심판이건 선수건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 중에서도 상위팀에만 유리하고 하위팀에 불리한 룰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힘당은 선거법이란 게임의 룰은 선수들이 정해야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서도 모든 선수들이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1,2위를 가리는 결승전은커녕 4강전에도 진출한 경험이 없지만 게임에 진심이고 우승에 목마른 팀과 소속선수들에게 참여기회를 주자고 한 적이 없다. 언제나 1위와 2위를 번갈아 차지해온 가장 오래된 두 팀의 선수들만이 참여해서 정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게임의 룰을 정한 1군 선수들은 본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의도로 2군 선수들에게 높은 진입장벽을 치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 시행했다. 실제로도 거대양당이 정한 게임의 룰은 군소정당들에게 늘 불리한 게임의 룰이었다. 예컨대, 정당지지율이 10%에 달하는 정당의 원내의석수를 2%에 묶어놓는 식이었다.
국힘당, 참여기회 막힌 게 아니라 스스로 불참한 것
국힘당은 2020년 선거법개정 과정에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납득할 수 없는 얘기다. 국힘당은 참여기회를 봉쇄당한 게 아니라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입법과정에 불참을 선택했다. 결국 개정선거법은 국힘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과반수찬성, 그것도 재적의원의 60%가 넘는 가중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힘당은 이 개정선거법을 무효라고 우기며 이른바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개정선거법을 짓밟았다. 명색이 공당이 법 우롱 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앞장선 막가파 행태였는데도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실은 거대정당으로서 국힘당이 갖는 기득권과 이해관계는 국힘당과 마찬가지로 여당과 야당을 번갈아가며 해본 민주당이 거의 모두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국힘당이 빠져도 빠진 게 아니었다. 반면에 참여선수들의 다양성으로 보자면 그때만큼 다양한 선수들이 참여해서 게임의 룰을 정한 적도 없었다. 전례 없이 제3, 제4 원내교섭단체가 참여했고 원내교섭단체가 아닌 정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거대양당을 대표한 민주당 외에도 중간규모의 중도 원내정당 2개와 전통 있는 진보 원내정당이 타협해서 만들어 낸 전례 없는 선거제 개혁안이었단 말이다. 이렇게 볼 때 20대 국회의 개정선거법이야말로 가장 다양한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해서 만든 멋진 게임의 룰이었다.
국힘당이 현행선거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인정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소선거구제 아래서 60년 넘게 유지해온 제1당 지위에 대한 미련과 정당지지율보다 많이 획득해온 초과의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존의 소선거구제 아래서 누려온 달콤한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대표성과 비례성, 다양성이 현저히 결여된 소선거구제와 양당제 쌈질정치 때문에 국회와 국회의원이 아무리 불신을 받아도, 민주정치와 정치인이 아무리 조롱을 받아도, 시대과제와 민생이 아무리 위험에 처해도, 국힘당이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식의 고약하고 이기적인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국힘당에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한다.
국힘당에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위에서 역설하였듯이 2020년 개정선거법은 민주당이 공수처법안 통과에 필요한 야당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만든 일방적 입법독주의 산물이라고 폄훼당할 게 아니다. 오히려 개정선거법이 통과되자마자 위성정당을 설립해서 개정선거법을 우롱하며 무력화한 국힘당의 막가파 행태가 진짜 문제였다. 현행법인 2020년 개정선거법에 대해 국힘당은 게임의 룰 논리에 따라 이미 사문화된 법이라고 봐서 언급조차 안 한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도 비슷한 입장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까지도 위성정당금지조항을 입법하지 않은 게 설명되지 않는다. 나아가서 국회전원위 안건의 하나로 위성정당금지입법을 전제로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옵션을 올려놓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요컨대,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라서 국민들이 아무리 개혁을 원하고 객관적으로 아무리 개혁이 필요해도 여야합의, 실질적으로는 거대양당의 합의가 필수적이라는 국힘당의 주장에 민주당이 은근히 동조해온 게 틀림없다. 실은 국힘당의 주장이 맞건 그르건 상관없이 민주당에게도 기득권과 비토권을 인정하는 논리라서 민주당도 손해 볼 게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더 실질적인 이유는 2020년 개정선거법에 따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경우 47석의 비례의석 중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되살려내기를 꺼리는 이유는 민주당이 과반수의석을 확보하는 데 불리한 선거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다른 하나의 이유는 민주당도 거대양당의 하나로서 국힘당의 반대논거, 즉, 게임의 룰 비유에 논리적으로 설득 당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겠지만 정치의 세계는 추구하는 실리를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해야만 살아남는 독특한 세계이기 때문에 국힘당이 내세우는 게임의 룰 비유를 설득력 있게 반박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게임의 룰 비유는 대중이 알아듣기 쉽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인 프레임이었다. ‘게임의 룰이라서 선수들이 합의해서 정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게임의 룰을 선수가 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180도 다른 프레임으로 대체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게임의 룰 비유와 파생주장들은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그럴싸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선거법 개정은 모든 게임의 룰이 그렇듯이 선수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더욱이 1, 2등 선수들로만 게임의 룰을 정하게 하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하위권 선수들에게 높다란 진입장벽을 치게 마련이다. 거대양당과 현역의원이 정한 우리나라의 선거법개정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는 바이다. 선거제개편은 선거결과에 목을 매는 거대양당과 현역의원에 맡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민주적 대표기구이자 독립 제3자기구인 추첨시민의회에 맡기는 것이 정도다. 이래야만 거대양당과 현역의원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이 열망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서 정치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 게임의 룰은 선수나 팀이 만드는 게 아니라 독립 제3자가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