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vs "그런 적 없다"…이재명 선거법 재판의 진짜 쟁점

[민들레 사랑방] "몰랐다" 프레임으로 끌고 가는 검찰의 의도

'당선목적 허위 사실' 구체 적시한 선거법 250조

'허위 사실' 공표한 쪽은 이 대표 아닌 검찰

'재판' 아닌 '재판 빙자 여론전' 몰두하는 검찰

2023-04-03     고일석 에디터

재판에서 벌어지는 법적 공방은 쟁점이 어렵고 복잡해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보도하려고 해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민들레 사랑방] 코너에서는 재판의 쟁점을 쉽게 풀어드리고, 기사에서 미처 알려드리지 못한 여러 얘기들을 전해드립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3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3.31. 연합뉴스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 방송 인터뷰 등에서 "김문기 처장을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말해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공판 소식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김문기 전 처장을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한 것이 ‘허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표가 “김문기 씨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한 것이 이 재판의 ‘혐의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대표의 공판 때마다 응원차 방청하거나 법원을 찾아오는 지지자들조차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 선거법 재판의 진짜 쟁점은 “몰랐다”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알았다거나 몰랐다거나, 기억한다거나 기억을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허위냐 아니냐를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선거법 위반의 대상이 아닙니다.

‘당선목적 허위 사실’ 구체 적시한 선거법 250조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기소한 혐의는 공직선거법 제250조 1항 ‘당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 공표죄’입니다. 이 조항은 아래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후보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의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등·재산·행위·소속단체,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로부터의 지지여부 등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

‘허위 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제한적입니다. “몰랐다”거나 “기억 못한다”는 것은 이 조항에서 예시하는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등·재산·행위·소속단체,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로부터의 지지여부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재명 대표를 기소한 것일까요? 검찰은 이 대표의 “몰랐다” 발언이 위 예시 중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기소했습니다. 즉 이 대표의 발언이 성남시장 시절 이 대표와 김문기 전 처장 사이에 있었던 '행위'를 이 대표가 '부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서 해당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피고인은 수차례에 걸쳐 마치 피고인이 성남시장 재직 당시에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한 성남도시개발공사 3급 간부인 B○○(김문기 전 처장)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수차례 보고를 받는 등 업무를 보좌 받은 사실이 전혀 없었고, 호주-뉴질랜드 해외출장 과정에서 B○○과 함께 골프를 하지 않았으며, 2018년 피고인이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으로 기소된 후 재판 대응과정에서야 비로소 B○○을 알게 되었고, 전화로만 통화해서 B○○의 얼굴도 모르는 것처럼 발언하였다. (중략) 이로써 피고인은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하였다.

다시 정리하면 검찰이 기소한 내용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가 “김문기 씨로부터 보고를 받는 등 업무를 보좌 받은 사실인 전혀 없고, 함께 골프를 하지 않은 것처럼 발언했다”는 것입니다.

2021년 12월 22일 대통령 후보 시절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앵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허위 사실' 공표한 쪽은 이 대표 아닌 검찰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대표는 방송 앵커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었고, 앵커들의 질문은 “시장 재직 때 알았느냐, 함께 골프를 치기도 했다는데 그런데도 몰랐느냐”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시장 당시에는 몰랐다”고 답변했을 뿐입니다.

앵커가 “시장 재직 때 김문기 씨로부터 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함께 골프를 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는데 “보고받은 적 없다, 함께 골프 친 적 없다”고 답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 대표가 마치 “보고받은 적 없고, 골프를 친 적도 없다”고 발언한 것처럼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장 어디에도 이 대표가 실제로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그런 말을 했다며 기소한 것입니다. ’허위 사실‘을 공표하고 있는 것은 이 대표가 아니라 검찰입니다.

저는 아주 작은 고등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다닐 때는 몰랐던 동창들이 수두룩합니다. 검찰의 주장은 제가 어느 동창생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서 제가 "그 친구와 함께 수학여행을 간 적도 없고, 운동회를 같이 한 적도 없습니다"라고 얘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입니다. 한 마디로 허무맹랑한 논리입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재판에서 보이고 있는 검찰의 행태입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문기 씨로부터 보고받은 적 없고, 골프를 함께 친 적도 없다”는 것처럼 발언했다고 기소했으면서, 재판정에서는 여러 사실과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이런데도 몰랐다고 할 수 있느냐”고 계속 추궁하고 있습니다. 공소 사실과 전혀 관계 없는 “알았느냐 몰랐느냐”로 밀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는 것일까요?

3월 31일 공판에 출석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증언을 일제히 보도한 언론들.

'재판' 아닌 '재판 빙자 여론전' 몰두하는 검찰

검찰은 유죄 판결을 받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의 의도는 유죄가 나오건 무죄가 나오건 이재명 대표에게 '거짓말'이라는 낙인을 반복적으로 찍으려고 하는 것이 검찰의 진짜 의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글 첫머리에서도 봤듯이 언론은 모든 기사에 이 대표가 “시장 시절에 김문기 씨를 몰랐다”고 발언한 혐의로 기소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재판의 쟁점을 “그런 적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공소사실과는 무관하게 “알았느냐 몰랐느냐”로 몰고 가는 검찰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3월 31일 공판에서 검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증인으로 불러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후보 때 김문기 씨와 통화를 했다”거나 “어떤 세미나에 이 대표와 김문기 씨가 함께 참석했다”는 등의 답변을 이끌어냈고, 언론은 이 발언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이마저도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유동규 전 본부장의 '추측'이고 '생각'일 뿐이지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공소 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김문기 씨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혹은 모를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을 재판에서 끊임없이 반복하고 이를 언론들로 하여금 일제히 보도하도록 해 이재명 대표가 “알았다, 몰랐다”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 검찰의 진짜 의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이라기보다는 '재판을 빙자한 여론전'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정치적 재판에서 검찰의 이러한 의도는 꽤 잘 먹혀 왔습니다. 이번에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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