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장 울려퍼진 희생자들 이름…이상민 탄핵안 가결

이태원 참사 103일 만에 유가족들 호소 응답

국무위원 탄핵소추 가결, 75년 헌정사상 처음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도 대부분 찬성표 던져

김승원, 제안설명 중 희생자 100여명 호명해

"잊히지 않도록 역사에 기록해달라는 유족 뜻"

헌재, 180일간 심리…김도읍 법사위원장 변수

2023-02-08     김호경 에디터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2023.2.8.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가 실제 이뤄진 것은 75년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처절했던 호소와 간절한 바람은 참사 103일 만에 야 3당에 의해 일부나마 응답받았다.

국회는 8일 오후 본회의에서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총투표수 293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09표, 무효 5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겼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의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와 재적 의원 과반수(150명) 찬성이다.

원내 1당인 민주당(169석)이 당론으로 발의를 추진하고 정의당(6석), 기본소득당(1석) 등 야 3당 176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에 참여해 찬성 179표가 나온 만큼 이탈표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이 장관 탄핵소추에 회의적이었던 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들도 대부분 찬성 표를 던져 무난하게 가결된 것이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탄핵소추안 표결 전 본회의 안건 설명에서 "이 장관은 재난 예방 및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 공직자로서 성실 의무를 위반한 책임, 국회 위증과 유족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2차 가해 등 헌법과 법률 위반을 한 여러 탄핵 사유가 있다"고 적시했다. 이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국회가 정부의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후에라도 그 책임을 다했다고 기록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의원은 "유족분들은 희생자들이 이름도, 영정도 없이 정부 분향소에만 안치될 수 없다고 하신다. 희생자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역사에 기록해 달라고 한다. 저는 유족의 뜻을 받들어 희생자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드리겠다"면서 참사 희생자 100여 명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김단이 김도은 김동규 김미정 김보미 김산하 김세리…"

김 의원은 명단을 다 부른 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정말 미안하다"며 "정당과 정파의 구분을 넘어 국민을 사랑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지켜달라. 간절히 호소드린다"는 말로 제안 설명을 마쳤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상정을 규탄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3.2.8.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는 참여했지만 '거대 야당 협박 정치 중단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거세게 항의했으며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본회의장 앞에 집결해 "이재명 방탄쇼 탄핵소추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장관은 입장문을 내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오늘 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인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을 탄핵소추한 야당을 겨냥한 듯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은 그 취지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며 "초유의 사태가 가져올 국민 안전 공백 상태가 최소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불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오후 3시47분쯤 언론 공지를 통해 "의회주의 포기"라면서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발끈했다.

반면 민주당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수행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받아들이길 거부한 책임을 국회가 대신해서 물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대통령실을 겨냥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끝내 거부한 윤석열 정부는 헌정사에 가장 부끄러운 '실패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장관은 더 늦기 전에 유가족께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6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 참석,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3.2.8. 연합뉴스

탄핵소추 의결서가 이 장관에게 송달된 때부터 이 장관 직무는 곧바로 정지된다. 헌법재판소 심판까지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장관 직무를 대행한다.

헌법재판소는 조만간 본격적인 탄핵 심판 체제에 돌입할 전망이다. 헌재는 국회로부터 소추의결서를 제출받은 뒤 최장 180일간 탄핵안을 심리하게 돼 있다. 이 장관의 직무가 판결 전까지 정지되기 때문에 헌재가 법에 정해진 심판 기간 180일을 넘기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전까지 헌재 탄핵 심판은 세 차례가 있었는데, 지난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헌재는 63일 만에 기각 결론을 내렸고,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는 91일 만에 인용 결정을 했다. 다만 '첫 법관 탄핵' 사례였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경우에는 2021년 10월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지 약 8개월(267일) 만에 각하 판결이 나왔다.

탄핵 심판은 행정부 고위직이나 판사 등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 의회의 결의로 헌재가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이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형사 재판의 검사 역할을 하는 소추위원이 된다. 탄핵 재판은 김도읍 위원장이 소추의결서 정본을 헌재에 제출하는 순간 시작되며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이 장관은 파면된다.

탄핵 재판의 최대 쟁점은 탄핵 대상자에게 '파면할 만한 헌법·법률 위배'가 있는지다. 야 3당은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 대응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며 탄핵소추안에 헌법 34조 6항(국가의 재해 예방 의무), 재난안전법 8개 조항,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의무)와 63조(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을 열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당 소속인 김도읍 위원장이 변론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변론에서 피청구인인 이 장관을 신문하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겠는냐는 것이다.

이선애·이석태 재판관이 올해 3∼4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헌법재판소법상 재판관 정족수는 7명 이상이기 때문에 심리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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