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맘다니 '유대인 공동체' 강타
'이스라엘 비판' 맘다니 놓고 미국 유대인들 분열
노인 세대 "이스라엘 반대는 반유대주의"
젊은 세대 "인종 분리 이스라엘 안 된다"
11월 본선 앞두고 맘다니 공격 계속될 듯
"반유대주의, 미국서 유대인 번영시킨 이상 공격"
미국 유대인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유대 광신 정권이 자행해온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가자 제노사이드(집단학살)에 대한 시각을 두고 가족끼리는 물론 공동체 안에서도 세대 간 분열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안에서 곪던 분열과 갈등을 서로 '확인'하게 된 계기는 인도계 무슬림으로 33세의 정치 신인 조란 맘다니가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직을 거머쥐면서였다. 진보적인 맘다니는 예비선거에서 임대료 동결, 최저임금 인상, 무료 버스, 무상보육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걸어 앤드루 쿠오모(67) 전 뉴욕주지사에 역전승을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민주 뉴욕시장 후보 맘다니 '유대 공동체' 강타
가자 대학살 놓고 미국 유대인 가족 내 갈등
그러나 미국 유대인들이 예의주시했던 건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봉기)에 대한 맘다니의 입장이었다. 문제는 예비선거에서 맘다니가 '인티파다의 세계화' 구호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반대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아가 오는 11월 본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전쟁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배를 받는 네타냐후가 뉴욕 땅을 밟는다면 체포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 이후 뉴욕시장은 누구나 이스라엘을 방문해왔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생존권"(right to exist)을 인정하면서도 "동등한 권리를 지닌 국가로서"란 단서를 달았다. 반유대주의로 낙인찍혔음은 물론이다.
알다시피, 정치인이 미국에서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팔레스타인을 동정 또는 지지하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런 정치인엔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를 비롯한 친이스라엘 로비 그룹들이 집요하게 낙선운동을 벌이고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됐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민주당의 자말 보먼(민주·뉴욕주), 코리 부시(미주리) 전 연방하원 의원이다. 이들은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낙선운동에 부딪혀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맘다니 "네타냐후 뉴욕 오면 체포하겠다"
친이스라엘 단체들 낙선운동에도 승리
당연히 이번에도 친이스라엘 단체들은 맘다니 낙선에 주력했다. 뉴욕시는 유대인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곳이어서 유대인 표심이 어디로 가느냐가 당락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2020년 기준 뉴욕시의 유대인 인구 비중은 약 12%에 달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각 후보 관련 슈퍼팩(정치자금 모금 단체) 자금 지출 내역을 보면, 쿠오모 지지나 맘다니 반대에 지출된 비용은 약 2천600만 달러(약 360억 원)에 달했고, 맘다니 지지는 180만 달러에 그쳤다. 쿠오모 지지 슈퍼팩인 '픽스 더 시티'에는 마이클 블룸버그(880만 달러), 빌 애크먼(50만 달러) 등 뉴욕의 친이스라엘 갑부들이 거액을 기부했다.
맘다니는 11월 본 선거에서 무소속인 에릭 애덤스 현 뉴욕시장, 커티스 슬리바 공화당 후보와 맞붙게 되며, 쿠오모도 무소속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번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패배했다고 친이스라엘 단체들이 손 놓고 있을 리는 없다. 여전히 맘다니의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젊고 진보적 유권자를 중심으로 친이스라엘 단체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대한 반감으로 젊은 세대 유대인들이 네타냐후 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는 점이 이번 예비선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미국 유대인 단합시켰던 컨센서스 붕괴"
이스라엘에 좋은 건 유대인에도 좋다?
에즈라 클라인 칼럼니스트는 '미국 유대인은 왜 더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란 20일 자 기고에서 맘다니의 승리가 대부분의 미국 유대인이 "그동안 서로가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되돌아보게 했다"라고 지적했다. 클라인은 "유대 가정에서 대화하기 힘든 시기다.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 유대인을 단합시켰던 컨센서스(공감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컨센서스는 △ 이스라엘에 좋은 건 유대인에도 좋다 △ 반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의 한 형태다 △ 곧 언젠가 시온주의와 자유주의를 화해시킬 '두 국가 해법'이 나온다 등인데, 지금 세 가지 구성 요소 모두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클라인의 견해다.
클라인에 따르면, 노인 세대 유대인 다수는 맘다니의 승리에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만한 유대인 안식처로 보고 이스라엘 반대를 반유대주의를 위한 구실이라고 여긴다. 이들은 텔아비브를 빼곤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 뉴욕시에서 맘다니가 시장이 된다면 세계 어디든 안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젊은 세대 유대인은 다르다. 다수는 맘다니를 찍었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미래의 이스라엘이 가자의 폐허와 요르단강 서안의 '반투스탄'(남아공의 옛 흑인 거주 지역)을 지배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국가가 되고, 그 결과 전 세계로 반유대 폭력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의 경우 자유주의의 기본적 이상에 대한 헌신이 오늘의 이스라엘에 대한 헌신보다 더 강하다.
노인 세대 "이스라엘 반대는 반유대주의"
젊은 세대, "인종 분리 이스라엘 안 된다"
이 대목에서 진보 성향의 주이시 커런츠의 대니얼 메이 발행인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지적했다. 메이는 "미국 유대인은 미국에서의 성공이 민족이나 종교에 따라 소속을 따지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특정한 민족적 종교적 그룹을 대변하는 나라라는 관념에 기초한다"고 지적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엔 정치적 소수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는 '다민족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토대인 데 반해, 이스라엘 유대인엔 '다수자 유대인'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는 토대이다.
현재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자행하는 네타냐후 정권의 참혹한 학살 행위를 두고 젊은 세대의 유대인 층이 둘로 갈려져 있다고 클라인은 소개했다. 일부는 네타냐후를 옹호하는 부모 세대의 입장에 동조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자신들이 살지도 않는 나라인 이스라엘의 행위와 정책 때문에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에 분노하고 좌절해 있다는 것이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일간 하레츠에 "지금 우리가 가자에서 하는 행동은 초토화 전쟁이다. 민간인을 겨냥한 무차별적이고 끝없고, 사악하고 범죄적인 살해행위다"라면서 "그것은 의도적이고 사악하며, 악의적이고, 무책임하게 지시된 정부 정책의 결과다. 그렇다. 이스라엘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메이 발행인도 20일 가자에서 구호품을 받고자 몰려든 주민들에 총격을 가해 93명을 죽인 이스라엘군의 만행에 대해 "유대인엔 재앙"이라며 "이것은 영적인 위기다.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위기이며, 나는 이것이 유대인의 안전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고 걱정했다.
"반유대주의, 미국서 유대인 번영시킨 이상 공격"
"뉴욕시는 '우익 민족국가' 비전의 반대에 위치"
클라인에 따르면, 다수의 젊은 유대인은 올메르트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다. 클라인은 "그들이 전쟁범죄를 옹호하고 대량 굶기기를 전쟁 수단으로 삼는 걸 옹호하거나 수용하겠는가"라면서 "1년 전만 해도 제노사이드란 단어에 다수가 발끈했지만, 지금은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유대인들이 보는 세계는 유대인의 삶엔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의 생존권만을 바라본다. 이에 클라인은 "문제는 이스라엘이 생존권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지배할 권리가 있느냐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 밖에 사는 유대인들은 특정 다수 민족의 지배는 가장 두려워해야 할 문제라고 배웠다"고 덧붙였다.
클라인은 "반유대주의는 미국을 유대인이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만든 이상과 제도를 공격하는 구실이 돼왔다"며 "이스라엘이 우익 민족국가가 된다면, 그 국가에 대한 반대가 반유대주의라면, 유대인들은 유대 디아스포라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정치의 마스코트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런 맥락에서 뉴욕시는 '우익 민족국가' 비전의 반대에 서 있다. 클라인은 "수십 년간 디아스포라 자유주의 위에 세워진 미국 유대주의는 시온주의와 얽혀 있다. 하나의 이상이 다른 것의 현실과 양립할 수 없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라고 화두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