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일본·말레이시아·카자흐도 25% 관세 통보
일본 7차례 장관급 협상에도 24→25%
20%로 낮춰받은 베트남, 미제 수입 무관세
보잉 항공기와 농산물, LNG 대량구매 약속도
트럼프 일가의 베트남 골프 리조트 개발에도 협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정오(한국시각 8일 오전 1시)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25%의 관세율을 오는 8월 1일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캐롤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이를 먼저 통보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것으로, (이는) 대통령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협상시한 7월 8일에서 8월 1일로 연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일에 이어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2개국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관세율을 8월 1일부터 적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지난 4월 상호관세 방침을 발표할 때 90일간 발동을 유예하면서 7월 8일(미국 현지시각, 한국 7월 9일)로 끝나는 협상시한을 8월 1일로 연기하면서 관세율을 재조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10%), 베트남(20%), 중국(잠정 30%)만 합의
지금까지 미국과 관세율에 합의한 나라는 영국(10%), 베트남(20%) 두 나라뿐이며, 희토류 수출제한을 무기로 145%의 관세율을 30%로 내린 중국도 일단 잠정적인 합의에 도달한 상태다.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아예 협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25% 관세는 별도
이에따라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대미 관세율은 미국이 무역전쟁의 주적으로 삼고 있는 중국에 대한 관세율과 비슷해졌다. 한일은 대미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철강, 알루미늄은 따로 25%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7일에 발표한 25% 관세율은 자동차와 철강, 알루미늄을 제외한 모든 품목에 대한 것으로, 이들 품목에 중복 적용되진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말레이시아(4월 2일 상호관세 발표 때는 24%)와 카자흐스탄(27%)에 대해서도 한국(25%), 일본(24%)과 같은 25%의 관세율을 적용했으며, 남아공(30%)에는 30%, 미얀마(44%)와 라오스(48%)에서는 40%의 관세율을 8월 1일부터 각각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이들 각국에 대한 통고문에서, 이들 나라가 보복관세를 할 경우 올린 관세율만큼 추가로 관세율을 높이겠다고 경고하면서, 8월 1일까지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낮출 경우 미국도 통보한 관세율을 낮출 수도 있다며, 관세율은 상대국의 조치에 따라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다고 밝혀 추가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이는 7월 8일까지로 연기했던 협상시한을 사실상 8월 1일로 추가 연장한 것과 같다. 8월 1일도 그날부터 재조정된 관세율을 시행한다고 돼 있을 뿐 그날로 협상이 끝난다고 못박은 것은 아니어서, 그 이후에도 협상의 문을 계속 열어 놓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 7차례 장관급 회의 열며 협상했으나 별무성과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보낸 통고문은 한국에 보낸 통고문과 국가명, 수령자(총리 또는 대통령)명만 다를 뿐 거의 같은 내용으로 돼 있다.
일본은 그 동안 자동차 관세와 상호관세 철회를 요구하면서 미국과 7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의를 열어 왔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으며, 4월 2일 상호관세 발표 당시 24%였던 관세율은 오히려 1%p 더 오른 25%가 됐다.
트럼프의 목표는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활
<아사히신문>은 8일,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6일 사설에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의 권위주의 국가들의 위협에 대항해 가는데 동맹국들을 중시해야 함에도, 오히려 국제법을 무시하는 고관세 정책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은 득책이 아니라고 비판했으나, 트럼프 정권이 이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는 논평을 실었다. 권위주의체제 봉쇄나 격퇴를 위한 민주주의 동지국의 연대와 같은 전임 조 바이든 정권의 슬로건이나 캠페인에 관심이 없는 트럼프 정권 ‘무역전쟁’의 최대목적은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활”이라는 것이다.
베트남, 대미 수출관세 20%로 낮추고 수입은 무관세로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베트남과의 합의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베트남과의 무역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했다고 SNS를 통해 발표했다. 미국은 4월 상호관세 발표 때 베트남에 적용한 46%의 관세율을 이번에 그 절반 이하인 20%로 낮췄다. 대신에 베트남은 미국제품 수입 때 관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는 관세율 0%를 약속해 주었다. 그리고 두 나라는 이와 별도로 베트남이 80억 달러어치의 미국 보잉사 항공기를 구입하고, 29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농산품도 사들이기로 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보잉 항공기와 미국산 농산물, LNG 대량구매 약속도
또 중국의 베트남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베트남을 경유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3국 제품에 대해서는 40%의 관세를 물린다는 데에도 두 나라는 합의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미국 기업과 농가에게 큰 승리”라며 “제3국이 베트남을 통해 제품을 (미국에) 팔 경우 40%의 관세가 부과된다”고 자랑스레 밝혔다. 베트남 기업들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도 대량 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도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한다. 4월에 발표된 대로 미국이 베트남의 수출품에 46%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당장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 공장을 지어 미국으로 수출하려는 한국 기업들과 같은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데에도 문제가 생긴다.
베트남은 연간 약 1235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보는 나라로 멕시코,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대미 무역흑자국이다. 베트남이 미국에서 사들이는 물품 수입액은 연간 131억 달러 정도로 대미 수출액의 8분의 1정도다. 미국산 수입관세를 제로(0%)로 해도 베트남 국내산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품의 관세율을 20%로 낮추면 미국산 수입품 관세율을 제로로 해 주더라도 얻는 게 더 많다. 보잉기와 LNG, 농산품을 한 차례 과시적으로 대량 구입할 경우, ‘미국산 수입관세 제로’, ‘미국제품 대량구입’ 달성이라는 대국민 선전효과에 집착하는 트럼프 정권을 만족시키면서 장기간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트럼프 일가의 베트남 골프 리조트 개발에도 협력
게다가 트럼프 일가의 기업이 베트남에서 착공한 골프 리조트 개발사업에 베트남 현지 주민들이 건설 예정지 토지수용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다.
미국의 견제로 중국에서 빠져 나오는 해외 자본들의 대체 생산거점으로 떠올라 경제적으로 번성해 온 베트남이 중국산의 베트남 경유 대미 우회수출을 어떻게 통제하면서 미국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할 것인지, 중국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다. 그리고 애초의 46%에서 20%로 내려갔지만,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20% 관세율 벽을 어떻게 넘어가느냐도 쉽지 않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