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책 속에 담긴 이재명 정부의 과제
관료권력은 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가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며 12.3 내란이 비로소 종식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한국사회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특히 사법·행정 관료집단이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왜곡된 권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교정해야 할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제도적 탈옥에 부역한 지귀연 판사와 심우정 검찰총장,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재판에 대한 조희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이어지는 궤적은 무엇을 반영하는가. 이는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관료권력이 법치를 가장한 권력 남용으로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파괴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짜 대한민국, 국민주권 시대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에서 관료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는 핵심 개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문체부가 내란 정국을 틈타 현직 공무원이 국립기관장에 지원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을 개정하여 김건희의 황제 국악공연 관람을 주도한 유병채 실장을 차기 국립국악원장으로 내정한 사례를 대표적인 관료 기득권 챙기기로 꼽을 수 있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권력의 전횡이 도드라지는 케이스인 것이다.
목민(牧民)은 관료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필자는 이처럼 근래에 관료사회에 누적된 고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상황을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와 『한국 문화정책의 이해-이론 역사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쓴 노한동은 1987년생으로 2013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문체부에서 출판, 체육, 저작권 등의 업무를 맡았던 인재다. 그러나 그는 2023년에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한 후 대통령실로 파견되었다가 문체부를 떠났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는 노한동이 문체부를 박차고 나온 복합적 이유들이 담겨 있다. 가령 관료사회의 권한 없는 책임, 복지부동(伏地不動), 과도한 상명하복 문화, 합리성이 결여된 가짜 노동, 2년 단위 순환 보직 등을 꼽아볼 수 있다. 사실 그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한 문제점들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 익숙한 문제를 공직사회 실무자 관점에서 재조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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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는 이 책에서 일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와 시민 간의 관계를 목민(牧民:임금이나 원님이 백성을 다스려 기름)으로 설정하는 주피터 형과 공복(公僕: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으로 인지하는 헤라클레스 형으로 구분하는 행정학의 논의를 빌려, 헤라클레스 형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를 멈추고 관료의 권한을 강화하는 주피터 형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한동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리 지금보다 정책 결정의 민주성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그 일을 주도하고 책임져야 하는 정치권을 필두로 한 거버넌스는 정책을 결정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역량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 (…) 결정적으로 우리 정치권, 그중에서도 국회는 그 고유 권한인 입법 활동을 할 때조차 여전히 관료에게 의존할 정도로 실무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 미우나 고우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책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춘 집단은 정부의 관료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관료의 책임과 권한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책임을 덜기보단 권한을 더 주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게 순리 아닐까. (…) 관료가 겪는 무기력과 무능을 해소하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권 능력’을 배양하는 것보단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란 뜻이다.”
책임지지 않는 공무원에게 더 많은 권한 줘도 좋을까?
이와 관련해 노한동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직사회의 무능, 무책임을 극복하기 위해 한 분야에서 30년씩 일하는 공무원이 실제 정책을 만드는 기술관료(Technocrat)이기에 국회를 움직이는 건 정부여야 하며 공무원이 해당 문제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정권이 바뀌어도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진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공복(公僕)을 자처함에도 권력자에게 약하고 시민에게는 강한 공직사회를 지적하면서도 관료의 권한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노한동의 관점은 진퇴를 거듭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의 이 입장은 갑과 을의 위치를 넘나들며 면피에 능하며 헌법정신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공직사회의 현실과 동떨어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은 현재도 선거, 법률을 통해 정책 실패, 권한남용 등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인, 정무직 공무원에 비해 무거운 책임을 진다고 보기 어렵다. 관련하여 과거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조윤선, 김종덕 등 정무직 공무원은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문체부의 소위 늘상 공무원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용호성의 경우처럼 차관으로 승진한 경우를 상기할 수 있다. 더불어 노한동은 자신이 만약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할 위치에 있었다면 “상급자의 지시에 항명하지 못하고 결국 지시를 수행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한동 같은 젊은 인재도 명백한 위헌적 명령(2020년,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위헌 결정)에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료권력 강화라는 대안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가 지적한 거버넌스의 역량 미달 문제의 경우, 국회 정도를 제외하면 권한과 책임을 제대로 가지고 운영되는 경우가 없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거버넌스 행정은 셰리 아른슈타인(Sherry R. Arnstein)의 시민참여 8단계 중에서 4단계 ‘요식적 의견수렴(Consultation)’, 5단계 ‘명목적 의사결정 참여(Placation)’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거버넌스에서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는 첨예한 주제지만, 이 논의를 발생시킬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체부 관료가 장악한 수직계열화된 예산의 카르텔 구조
한편으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서 일부 아쉬운 부분은 작년 8월에 발간된 『한국 문화정책의 이해-이론 역사 실천』을 통해 더 사유할 수 있다. 이 책은 문화정책의 이론과 실천을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문화정책』에서 김상철이 집필한 「문화재정과 문화정책-2000년 이후, 한국 문화재정의 특징과 과제」에 특히 주목했다. 보통 문화재정에 대한 논의는 예산확대 차원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익숙한 논의보다는 문화재정의 과도한 기금 의존 구조에 내재된 비민주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문체부는 일반회계보다 관광진흥개발기금과 국민체육진흥기금 등과 같이 사용처가 광범위한 기금들을 주요 재원으로 삼는다. 문체부는 일반회계의 세입과 세출 간의 큰 차이를 기금 재원에서 보충한다. 가령 2017년에 문체부의 일반회계 세입은 639억 원에 불과하지만, 문체부가 운용하는 각종 기금을 이용하여 세출규모 2조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반회계가 아닌 기금에 대한 의존성이 큰 문화재정은 관료를 중심으로 좌지우지될 여지가 많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기금은 일반회계와 달리 20% 내에서 수시 변경이 가능하며 집행 과정도 문체부 관료의 재량이 커서 국회, 기재부의 통제를 벗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투명성과 정당성이 미약한 문화재정은 문체부 산하 기관들을 통해 수직적으로 집행된다. 김상철은 이를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 부처와 산하 기관으로 수직계열화되어 있는 예산의 카르텔 구조”라고 말한다.
관료권력을 견제할 민주적 문화재정을 향해
이런 비민주적 구조가 바로 최순실 예산이라는 국정농단 그리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문체부를 통해 작동한 배경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정에서 기금 의존도를 줄이고 일반회계 비중을 확대하여 국회, 기재부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대안이 나오고, 문화재정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문화·예술 현장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문화정책에 대한 국회, 정부의 인식이 더 진전되어야 실현될 수 있기에 장기적으로 고민해 나가야 할 과제다. 후자는 문화재정의 수립 및 집행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자, 예술가, 시민사회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사실 문화재정의 비민주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사안은 전자의 문제를 장기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토대로 볼 수 있다. 가령 영화진흥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예산 일부에 참여예산제도를 시범 적용할 수 있다면 분권, 협치에 기반한 민관 거버넌스의 출발점을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거버넌스의 축적은 문화·예술 현장이 문화재정의 민주화를 위한 문제에 관심을 높이며 정치력을 발휘하는 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김상철도 문화재정의 과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예시로 들며 문화·예술 현장의 예산 요구권이 수반된 거버넌스 구축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2년에 청년예술가지원 사업 안에 참여예산제를 시범 적용하기 위한 연구와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 시범사업은 회기년도 중반기에 갑자기 추진되는 바람에 필요 예산을 충분히 마련할 수 없어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시도는 문화재정에 처음으로 참여예산제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남겨놨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이 제도가 실현되어 민주적인 문화재정을 만들어 나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관료공화국의 구조적 폐해를 해소하고, 실질적인 민관 거버넌스 체계를 심화하는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은 공직사회의 폐단을 생생하게 조명했지만, 그 해법으로 제시된 관료주의 강화는 오히려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역행적 처방이다. 이에 비해 『한국 문화정책의 이해』는 문화재정의 비민주적 구조를 성찰하며, 예술가와 시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거버넌스 모델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관료권력에 의존하는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 민주적 원리에 기반한 문화정책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분명히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