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너머 마을 16] 마을주민, '마을시민'으로 거듭나야

마을의 사람 : '생활인구'와 '마을시민'의 상생공동체를

2025-04-22     정기석 시민기자

 

‘율티마을의 생활인구’로서 율티마을 안에 일터를 두고 있는 율티공단의 노동자들과 율티마을의 ‘삶터와 일터가 하나되는’ 상생교류회

최근 율티마을에서 마을이 생긴 이래 아마도 처음인 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율티마을&공단 상생 교류회(Linkage)’.

오래 전 율티마을 주민들의 생업이었던 자염 염전을 갈아엎고 들어선 율티공단의 노동자들과 설문조사도 하고, 공방체험도 하고, 갯벌의 쓰레기도 줍는 플로깅(Ploogging)도 함께 했다.

율티공단에는 3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중에는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도 수십 명이 포함돼 있다.

물론 이들은 율티마을 주민은 아니다. 그저 율티마을에 율티공단이라는 일터가 있어서 율티마을에서 지내고 있을 뿐이다. 기숙사나 율티마을의 원룸을 제외하면 거처는 대부분 인근 진동면 소재지로 삼고 있다.

당연히 율티마을 주민들과 율티공단의 노동자들은 거의 하루종일 율티마을에서 함께 지내지만, 서로 만날 일도 어울릴 일도 없다. 율티마을과 율티공단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물리적, 사회적 장벽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어촌체험, 로컬푸드, 테마굿즈 등 ‘문화적인 것’으로 먹고사는 율티마을공동체를 위해 ‘마을시민’으로 거듭 나는 공부와 훈련을 하고 있는 율티마을주민들이 문화공방에서 배워서 만든 ‘우해이어보마을 그림문패’ 수여식

율티공단 노동자는 율티마을의 생활인구, 리퀴드 폴리탄(Liquid Politan)

열린공동체로서 어촌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율티마을 주민들은 단지 율티공단의 노동자들을 일만 하는 외부인으로,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대하고 싶지 않았다.

'정기적·부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지역에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 이들'을 일컫는 관계인구 수준에 그치고 싶지 않다. '지역에 체류하며 실질적인 활력을 높이는' 생활인구 단계도 넘어서고 싶다.

이른바 '리퀴드 폴리탄(Liquid Politan)'으로 율티마을 사람으로 아예 스며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리퀴드 폴리탄이란 'Liquid(유동적인)'와 'Metropolitan(대도시의)'의 합성어로, 물처럼 경계를 허물고 도시 간을 유동적으로 오가며 일과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을 의미한다.

주민등록을 하거나 상주하는 정주 인구가 감소하고 소멸되는 여느 농어촌과 마찬가지로 율티마을의 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자꾸 늙어가고, 비워지고,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84세대 145명의 주민 뿐이다. 그 중에는 주소만 두고 몸은 따로 사는 인구도 적지 않을듯하다.

어쩔 수 없이 늙어가고 비워지고 사라지는 '사람의 삶터'를, 율티마을을 '일터'로 삼고 있는 율티공단의 노동자들도 함께 보태고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 ‘율티마을&공단 상생 교류회(Linkage)’는 비록 마을 안의 작은 행사이지만, 율티마을에게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지향하는 목표부터 ‘일터와 삶터의 상생 모델 구축’으로 정했다.

이번 행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율티마을회와 율티어촌계의 율티마을 주민들과, 율티공단 입주 기업 중 하나인 동국R&S가 율티마을이라는 ‘열린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 했다는 점이다.

율티공단 입주기업 동국R&S로서도 율티마을과 교류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ESG 경영을 실천한다는 의의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율티마을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마을과 지역의 주요 자산인 율티갯벌 환경 개선을 위한 플로깅 활동에 기꺼이 응하고, 흔쾌히 동참한 사실은 충분히 고무적이다.

특히 율티마을 주민들의 주요소득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는 문화공방 체험 프로그램을 율티공단 노동자들이 마치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즐긴 모습은 이번 행사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높였다.

 

율티마을에서 2Km 남짓 인접한 천주교 마산교구청. 18만여 명의 신도회원이 ‘율티마을 관계인구’들과 ‘우해이어보’ 천주교 성지 테마 체험 및 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천주교 마산교구청 신도회 18만여명과 연안김씨 대종회원 12만여명

율티마을 밖에서는, 율티마을 안에 함께 지내고 있는 율티공단 노동자들말고 더 많은 관계인구들과 숙명적인 인연과 관계를 맺고 있다. 모두 율티마을에서 탄생한 국내 최초의 물고기도감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덕분이다.

우선 율티마을에서 2km 남짓 떨어진 진전면 임곡리에 자리잡은 '천주교 마산교구청'의 18만여명의 신도회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해이어보'는 국내 최초의 물고기도감이라는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와 더불어, 천주교 신유박해와 관련된 유배성지로서 율티마을 어촌마을공동체사업의 핵심테마이자 주요자산이라 할 수있다.

가령 '천주교 성지' 종교문화 테마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할 예정이다. 우선 신도들이 천주교마산교구청을 방문해 둘러보면 엎어지면 코가 닿는 율티마을로 이동한다. 율티공단의 동국R&S 옆 골목 쯤으로 추정되는 '우해이어보'를 집필한 담정 김려선생의 거처 '우소헌' 터를 밟아본다.

이어 율티마을 체험실로 이동해, '우해이어보'를 테마이자 소재로 지역대학에서 개발해놓은 레시피를 직접 조리해보거나 식사 체험을 해본다. 마을공유가게에 비치된 '우해이어보' 테마의 물고기 형상의 성물(Goods)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다. 끝으로 '우해이어보' 전시관 또는 박물관에서 관련한 자료와 물품 등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다.

아울러 우해이어보의 집필자 담정 김려선생은 연간 김씨이다. 그 후손들인 ‘연안 김씨 대종회’에서 조상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는 율티마을에 관심이 남다르다. 12만여명에 달한다는 연안 김씨 종친회와 인연과 관계도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역시 가령 ’연안 김씨‘ 역사문화 테마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할 예정이다. 율티마을을 방문하는 연안 김씨 대종회원들은 율티마을을 둘러보며 ‘김려선생의 우해이어보’ 스토리텔링을 현장에서 생생히 청취한다. 우소헌, 고저암 등 조상의 흔적이 묻은 ‘우해이어보’ 발현지를 답사하는 셈이다.

 

율티공단 옆 끝섬 위 大觀亭(대관정). 일제가 1920년 조선의 교육정책을 말살하려 웅천향교와 진해향교를 훼철해 창원향교로 흡수 통합, 삼진지역 48개 문중의 ‘마을주민’들이 明倫契(명륜계)를 조직해 명륜당 대신 설립

율티마을주민에서 ‘율티마을시민’으로 거듭 나야

이렇게 관계인구, 생활인구, 나아가 리퀴드 폴리탄이 율티마을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결국 율티마을 주민들이 율티어촌마을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율티어촌마을공동체를 되살릴 정도가 되려면, 그저 그동안의 어민, 주민의 자세와 태도로는 부족하다. 마을주민을 넘어서 ‘마을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은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의무를 가지는 존재로서, 자기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자각한 그 '시민(Citizen)을 말한다.

따라서 '마을시민'이란 말 그대로 하자면 마을에 사는 시민인 셈이다. ‘지역공동체적 사회자본, 혁신적 인적자본으로서, 마을 또는 지역사회공동체사업에서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농촌 및 지역 주민’을 뜻한다.

가령 마을공동체사업의 책임운영주체인 '마을기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역량을 갖춘 책임 있는 사업주체 역할과 책무를 감당할만한 유능한 인력이 마을시민이다.

특히 청장년 귀농인, 또는 귀어인들은 얼마든지 농어촌에서 마을시민 역할과 책임을 맡을 수 있다. ‘치열한 도시의 직업전선에서 갈고닦은 경험, 기술, 노하우, 지식정보 같은 빛나는 무형자산’을 마을주민으로서 생활의 도구이자 무기로 삼을 줄 알기 때문이다.

당연히 마을공동체사업을 잘하려면 농어민과 마을주민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도시와 기업의 회사처럼 기획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회계도 하고, 관리도 하는 마을시민들도 있어야 한다. 그 마을시민들이 모여, 마을협동조합 등 마을기업을 만들고 꾸려가야 마을공동체사업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율티마을 마을주민들은 지금 율티마을대학에 모여, 소득사업도 계획하고 마을사업가 과정도 공부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바로 율티마을주민들이 율티마을시민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율티마을공동체사업을 능히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동면 선사유적지 석관묘. 율티마을을 비롯한 인근 진동면 지역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마을을 크게 이루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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