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두 얼굴…'장애인 갈라치기'에 6억대 손배소까지

反전장연 장애인 단체만 모아서 정책 간담회 개최

전장연과 만남 언급하면서 뒤로는 억대 소송 제기

오세훈은 尹 미니미?…대화 없는 강경대응만 답습

삼각지역 역장, 휠체어로 스친 뇌 병변 장애인 고소

2023-01-11     김성진 기자
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3년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신년 인사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1.9.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국장애인단체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조건 없는' 만남을 언급한 가운데, 전장연 이동권 시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장애인 단체들만 따로 만나 강경 대응을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공사)는 전장연과 '냉각기'를 갖기로 하고 뒤로는 6억 원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오 시장이 전장연에 반대하는 단체들만 선택적으로 만난 것은 '시민과 장애인'에 이어 '장애인과 장애인'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만남과 대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억대 소송으로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오 시장은 9일 오후 장애인 단체장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장애인 정책 간담회에서 "전장연을 만나기는 하겠으나 전체 장애계의 입장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만날 것"이라며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황재연 서울지체장애인협회장, 조형석 서울시각장애인협회장, 허정훈 서울시농아인협회장,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 허곤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 김의종 서울시척수장애인협회장, 전치국 서울시교통장애인협회장, 변용찬 장애인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박마루 장애인 분야 명예시장 등이 참석했다. 전장연은 초청받지 못했다.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내고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 관련 단체장 9명을 만나 신년인사를 나누고 현장에서 느끼는 장애인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면서 "오늘 간담회는 시작부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고 홍보했다. 장애인을 포함한 시민의 권리를 대변할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단체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장애인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9. 연합뉴스

보도자료에 따르면 황재연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장은 "전장연의 시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전장연 시위 이후에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비장애인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전장연 시위로 인해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이 20년 후퇴했다"며 "전장연이 장애계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으니 장애인 단체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전치국 서울시교통장애인협회장은 전장연의 탈시설 확대 요구와 관련, "탈시설 후에 인권침해가 더 심할 수 있다. 장애인들이 전장연의 집회에 강압적으로 불려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마루 서울시 명예시장은 "여론조사에서 전장연 집회에 대하여 56%가 반대한다는 결과가 있다"며 "장애인들이 전장연 시위로 인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장애인 단체를 만나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힌 데 이어 10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원칙을 재확인했다. 오 시장은 인터뷰에서 "지난 6일 총 6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지하철에서 불법 시위는 못 할 것"이라며 "전장연이 계속 불법 시위를 한다면 추가적인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전 세계 어디에도 본인들이 원하는 예산이 흡족하게 편성되지 않았다고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도시는 없다"며 "이제 시민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서 새해 들어 분명하게 입장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원의 강제조정안에 대해서도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손해 본 것을 청구하는 게 공공 기관의 책무"라고도 주장했다.

오 시장이 서울시와 공사를 통해 6억 원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은 법원의 조정안 거부 의사를 재차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9일 '서울시는 2024년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운행 시위를 5분 넘게 지연할 경우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안을 냈지만 오 시장은 "법치 파괴"라고 주장하며 이를 거부했다.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서울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다가 서울교통공사 측과 거칠게 대치하고 있다. 전날 전장연은 탑승을 막는 서울교통공사·경찰과 대치하며 13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가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시위를 재개할 것을 예고하며 해산했다. 2023.1.3. 연합뉴스

이 때문에 법원 강제조정안을 수용해 5분 내 지하철 탑승을 하려던 전장연 회원들과 이를 막는 경찰, 공사 측 관계자들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뇌 병변 장애인 등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1월 3일자 <스쳤는데 쓰러지고 119 부르고…도 넘은 전장연 시위 방해>기사, 1월 9일자 <"휠체어에 들이받혔다고?" 장애인들의 말은 달랐다>기사 참고)

오 시장의 전장연에 대한 일련의 대응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쪽으로는 기득권 언론을 등에 업고 여론전을 통해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고, 한쪽으로는 개인이나 단체를 억대 소송으로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공권력 투입 엄포를 놓았고, 대우조선은 이에 맞춰 47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노동 운동을 위축시켰다. 지난달 화물연대 파업 역시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손해배상을 지원하겠다고 부추겼다.

또 대통령실은 지난달 진보성향 시민단체 등을 겨냥해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제고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보수 진영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권성동 전 의원은 지난해 9월 원내대표 당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재개와 관련, "반복된 불법행위를 주도한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시와 공사는 기관 대 단체 차원을 넘어 개인 대 개인 고소로도 장애인들을 압박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구기정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역장은 지난 5일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뇌 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전장연 회원 A씨를 고소했다. 철도안전법상 철도종사자를 폭행하거나 집무를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구씨는 지난 3일 삼각지역에서 A씨의 휠체어에 몸을 부딪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5일 오전 서울 4호선 혜화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2023.1.5. 연합뉴스

전장연은 이날 논평을 내고 오 시장을 향해 "장애인 단체를 모아서 단합대회 한 것도 아닐진데, '지하철 지연 행위 원칙대로 대응할 것'을 언론을 통해 밝히는 것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며 "시민과 장애인, 장애인과 장애인을 갈라치고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공개적으로 시민들이 알 수 있게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제안 드리고 진지하게 고민해달라"며 "자주 만나서 예산 문제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장애인의 권리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탈시설과 관련해서도 "제발 무책임하게 장애인 단체 간 이견으로 치부하는 갈라치기를 멈춰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장연은 비장애인 시민에게 "장애인단체 간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대신 죄송함을 표한다"며 "이번 오 시장과의 귀한 면담자리에서 장애인들이 '시민권열차'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함께 해달라. '무정차'로 지나지 말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전장연은 오 시장과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오는 20일부터 탑승 시위를 재개할 예정이다.

11일 서울 지하철에 있는 광고 사진. '이동 약자가 가는 길에 서울이 함께 갑니다'라고 쓰여 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023.1.11.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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