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희망고문’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재명 대표 국회연설, 제7공화국 전망 부재

대중추수주의로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분배 없는 성장 전략은 희망고문이다

무기산업 육성으로 먹고 살 수는 없다

내란 잔당 최상목 지지한 미국 역할 규명해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

2025-02-23     정범진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정범진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권력의지를 반영한 이재명 대표의 행보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행보를 두고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 내부, 언론에서도 말이 많다. 헌법재판소에서 내란 수괴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차기 집권자로 유력한 제1야당 대표의 일거수 일투족은 대중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두고 중도 보수정당이라거나 분배가 아닌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등 이재명 대표의 일련의 발언과 메시지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다. 집권 세력에 의해 억울하게 분칠된 이미지를 불식하고, 차기 대선 주자로서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자기 지향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일종의 출사표로 보인다. 이는 이 대표의 의도대로 민주당의 외연 확장과 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더 이상 성평등 후퇴는 없다, 헌재는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2.18. 연합뉴스

무엇이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를 가능하게 했는가?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1차적으로 시민과 국회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아직 내란 잔당들에 대한 단죄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거짓 선동과 가짜 뉴스는 공동체의 극심한 분열은 물론 헌법기관인 사법부에 대한 폭력적 침탈까지 야기했다. 반란의 표면적 사유만 보면 의회 권력과 타협하지 못한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꿈꾸며 일으킨 황당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궤변들, 예를 들면 야당을 척결해야 할 종북세력으로 간주하거나 자신이 임명한 선거관리위원회 책임자가 부정하는데도 부정선거 주장을 강변하고, 일국의 지도자가 이웃 국가와의 관계는 전혀 고려 없이 뜬금없는 중국 간첩설을 언급하는 망상이 사회적 힘으로 그토록 쉽게 자리잡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논자들이 이러한 사태의 원인에 대한 진단에 나섰고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승자독식 사회의 병폐, 불평등의 심화가 극단적 양극화에 이르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세대와 계층이 파시즘 도래의 토양으로 기능한다는 이야기, 종교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약자에 대한 배제와 희생양 찾기는 그 해법을 찾기도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파탄난 시민의 삶은 외면하고, 내란의 우두머리를 옹호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공천과 기득권만 지키면 된다는 집권 여당의 존재는 분노를 넘어 서글픔까지 느끼게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2025.2.10. 연합뉴스

제7공화국에 대한 전망 부재

2025년 2월 10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그런데 1만 자가 넘는 연설문 안에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희망이 담겨 있는가, 진단과 해법은 적절했는가에 대한 건강한 논의는 사라지고, 아전인수식 해석과 진영에 따른 공방만 남고 모든 제안은 제안과 동시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재명 대표의 이번 연설에 담긴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헌정수호연대’ 구성, 특정 직역 노동시간 연장 반대, 회복과 성장 전략으로 경제 위기 극복, 정년 연장‧연금 개혁 등 사회적 대타협,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비롯한 직접민주주의 강화, AI‧바이오‧문화컨텐츠‧방위산업 육성, 재생에너지‧한국형 마더팩토리 지원, 철강 및 석유화학산업 위기 대처, 북극항로‧대륙철도 연결, 통상위기 대응, 한미동맹 강화와 조미대화 촉구, 군의 정치적 중립 제도화, 탈이념‧탈진영 실용정치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거론된 모든 사안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 등 특정 직역 노동시간 연장 반대,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등 나름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한 노력한 사안도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봉착한 총체적 난국을 돌파할 해법으로서, 그리고 집권이 유력한 세력의 대표가 제시하는 차기 정부의 청사진으로서의 무게감과 효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진단은 안일하고, 해법은 상투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과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소통플랫폼 '모두의질문Q' 출범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5.2.7. 연합뉴스

분배 없는 성장 전략은 희망고문

우선 먹사니즘, 잘사니즘, 회복과 성장 전략으로 대변되는 경제철학과 전략이다. 성장으로 파이를 키워 더 크게 나눠 먹자는 이야기는 1970년대 박정희 개발독재를 지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모든 정부가 우려먹은 ‘희망고문’이다.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전략은 가장 위의 그릇에 물을 다 채우면 흘러넘쳐 맨 아래까지 그 물의 혜택을 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 경제에서 물은 아무리 채워도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 물그릇이 채워지기에는 너무 깊거나 크고, 채워졌다 싶으면 그릇의 주인인 가진 자들이 그릇을 바꾸고, 그릇 뒤에 구멍을 뚫어 다른 데로 빼돌리기 때문이다.(강수돌, 자본주의와 생태강의: 강수돌 교수의 기후위기 특강(고양시: 북튜브, 2025), pp. 105-106.) 법인세, 상속세, 금융투자 소득세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소득이 있는데도 과세하지 않고, 있는 세금도 감면해 주는 행태에서 여야의 차이는 없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 돈이 없어서 이 모양인가.

무기산업으로 먹고 살 수는 없다

국가는 각 산업별로 생산력의 발전 수준을 평가하고, 모자란 부분은 지원하고, 경쟁력이 없거나 공동체의 삶의 질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문은 도태시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석탄발전소 같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생산과 소비, 그리고 교환의 정의로움에 관한 것이다. 방위산업은 무기산업이다. 무기산업은 전쟁과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사업이다. 무기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부정하고 부패한 산업이다. 무기산업의 일자리 유발효과는 청정에너지, 의료, 교육부문에 대한 투자와 비교해도 낮다는 것은 증명된 정설이다.(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조아영‧이세현 옮김, 어둠의 세계: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파주시: 도서출판 오월의봄, 2021), p. 528.)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기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자는 제1 야당 대표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내에서 개최된 한 무기박람회장에서 자기 회사는 중금속이 포함되지 않아 환경에 무해한 총알을 판매한다는 관계자의 발언이 떠올랐다. 무기산업, 원자력발전, 카지노 도박사업 등으로 우리가 먹고살 수는 없지 않는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동사거리에서 열린 '내란종식·헌정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 범국민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2.22. 연합뉴스

내란 잔당 최상목을 지지한 미국

미국 정부가 이번 쿠데타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나마 다 알려진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실을 도감청하는 실력으로, 그리고 서울 하늘에 헬기가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미군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미국이 이번 내란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이시우, “계엄과 미군,” 통일뉴스 2024년 12월 19일)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쿠데타 저지에 나선 야당과 광장의 시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란 당일 본인의 국무회의 행적을 궤변으로 변호하며, 반란 세력에 대한 단죄를 방해하고, 윤석열의 복귀에 우호적 조건을 제공하려고 노심초사하는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재명 대표의 한미동맹 강화와 자유민주진영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역할 수행 발언은 지난 시기 사대와 굴종의 한미일 동맹 강화로 남북 관계를 파탄 내고, 중국을 포위해 동아시아에서 긴장을 고조시켰던 윤석열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간 접경지역 등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이북 출신 이주민과 극우 세력의 배후에 미국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를 비롯한 정보 관련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내란 세력의 가짜뉴스에 기반한 중국 혐오, 대만 집권 여당 민주진보당의 한국 비상계엄 옹호와 미국 주도의 대중국 배제 전략의 연관성을 살피는 것은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다.

내란 세력의 전쟁 도발 사과,  전략적 인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남북관계 개선의 출발점

이재명 대표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조선(북한)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는 상황에서 조선에 대해서는 조미대화 복귀를 촉구하고, 조선과 미국의 대화가 진행될 때 대한민국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이 대남 관계를 전면 차단한 상태에서 남북관계 개선이나 협력사업을 제안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번 내란 과정에서 내란 수괴 윤석열과 김용현을 비롯한 군부의 주요 가담자들은 조선을 상대로 엄청난 도발을 지속적‧의도적으로 자행했다. 하지만 이북은 전략적으로 인내했고, 그 덕분에 전쟁의 참화와 계엄의 공포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가 미래의 대한민국을 책임질 지도자에 대한 뜻이 있다면, 남북관계 개선과 새로운 한반도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남북관계 접근은 실망스럽다. 엄혹했던 박정희 집권 시절 초선 국회의원 김대중의 4대국 안전보장과 3단계 통일론은 발상의 전환,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로 가능했다. 대한민국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리고 남북관계를 걱정하는 전문가라면, 이번 윤석열 일당의 도발에 대해 대신 사과하고, 내란 세력에 대한 엄정한 법적 단죄 천명, 그리고 조선의 인내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해야 한다.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중단, 국제사회의 대 조선 제재 해제, 한반도 비핵화, 조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입구로서 종전선언은 너무도 당연한 최소한의 청사진이다.

좌표를 잃은 실용정치는 대중추수주의

이재명 대표는 탈이념‧탈진영의 실용정치만이 국민통합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자, 회복과 정상화, 성장과 재도약의 동력이라고 했다. 필자의 과문 탓이겠지만 실용정치가 어떤 내용을 담은 정치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아마도 현실주의적 입장에 기반하여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그러면 그 전에는 비현실주의적 정치를 했는가? 말 꼬투리를 잡아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이재명 대표의 실용정치‧통합정치 주장은 공허하다.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지향도 없다. 오직 대중의 허위의식이라도 붙잡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권력을 잡는 데 기여할 수만 있다면, 당의 노선으로 채택하겠다는 입장과 다르지 않다. 먹사니즘, 잘사니즘은 전형적인 대중추수적 발상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연말을 거치면서 목도한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먹고사는 것, 더불어는 배제되고 나 혼자만이라도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주의’에 차안대(遮眼帶)로 시야를 가린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달려 온 최종 종착지였다. 지옥 앞의 바닥이 없는 구멍, 무저갱(無底坑)이었다. 지금은 단죄의 시간이다. 전두환의 사면은 국민통합이 아니라 쿠데타의 재발로 다가왔다. 새로운 공화국의 청사진도 허위의식과 희망고문을 끝내는 데서 시작된다.

 

1월 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민원실에서 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박태훈 준비위원장이 서울서부지법 폭력 난동 사태와 관련된 커뮤니티 운영진, 게시글 작성자를 내란죄 혐의로 고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31. 연합뉴스

계속되어야 할 광장에서의 시민의 정치노동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과 파면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며, 다가올 대선에서 야당의 승리도 만만치 않다. 당연 87년 헌정 체제의 유산들을 박물관에 넣고, 생명과 평화, 민주주의가 충만한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헌법 개정은 더욱 지난한 과정을 예고한다.

진보와 보수, 우클릭 좌클릭 여부를 떠나 이재명 대표가 이번 연설에서 보여준 문제의식과 청사진은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진정하고도 근본적인 해법을 담고 있지 않다. 김동춘 교수는 시민의 과도한 정치노동을 끝내야 한다고 설파했지만 생명평화운동은 아직 그 노동을 마쳐야 할 시점에 이르지 못했음을 잘 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제시한 일련의 진단과 처방은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우리가 광장에서 외쳐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기꺼이 탐욕과 왜곡된 선동, 망상이 빚어낸 내란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분열을 극복하고,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빛나는 노동과 투쟁, 아니 행복한 놀이와 여행을 할 것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