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서 억울'…국민연금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탄핵 이후 사회개혁 구상] 국민연금 목적 확고히

단순한 금융상품 아니라 공적연금이자 사회보험

“더 내는 억울함” 식의 세대 간 갈라치기 지양해야

‘각자도생’ 문제에서 사회적 연대의 확대로 이행

“촘촘한 노후 보장으로 청년에게도 희망·용기를”

연금 고갈? 불확실한 전망에 의한 먼 장래의 일

정부와 국회는 당장 연금 사각지대 해소 나서야

2025-02-17     임항 편집위원
국민연금 보험료를 매기는 기준소득금액이 달라지면서 오는 7월부터 보험료가 최대 월 1만 8000원 오른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5년 기준소득월액 상한액과 하한액은 617만 원에서 637만 원으로, 39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각각 올랐다. 이 기준은 올해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1년간 적용된다. 사진은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 모습. 2025.1.31. 연합뉴스

국민연금의 목적은 무엇인가. 국민의 존엄한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가 주도로 세대 간 연대를 통해 노후에 고정적 수입이 없어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는 공적 연금이다.

젊은 노동 세대는 이를 믿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린 채 현업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연애를, 결혼을 주저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국민연금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은 인생의 황금기에 지금 많은 도시인이 그렇듯이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기, 투잡(겸업) 필요성 등의 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공적 연금인 것은 구성원 전체의 노후 부양이라는 사회적 돌봄을 위해 국가가 기획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금융시장의 연금 상품과 달리 부담자와 수익자가 다르다. 연금상품은 내가 낸 보험료에 투자수익을 더한 돈을 내가 돌려받는 반면,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은 현재 노후 세대의 부양에 들어가고 대신 내 노후는 미래 세대가 책임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부양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사회 전체가 나누어 짊어질 것을 약속한 보험이라는 의미에서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다.

“아버지 세대가 더 받고, 내가 덜 받는다” 억울함만 강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인 대용은 ‘국민연금 개혁, 존엄한 노후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기고문(비마이너, 24년 11월 8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공적연금이자 사회보험에 걸맞는 제도로 설계하고 운용하지 못해 왔다. 1988년 제도 시작부터 사회적 부양의 의미를 확인하고, 의무와 역할을 나누기 위한 논의의 장이 만들어지기보다 내 노후를 위해 얼마 내면 언제, 얼마를 돌려받는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왔다. (중략)

당장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 방안은 사회적 연대를 더 축소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고 있다. 2007년 연금개혁 이후 17년 만의 정부안이라고 나온 연금개혁안은 보험료는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동결하겠다면서도 '자동조정장치'를 둬서 실질 연금액은 깎겠다는 둥 복잡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결국, 정부의 요지는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덜 내고, 미래에 많이 받으니 미래 세대의 '억울함'을 고려하여 지금부터 많이 내고, 노후에는 조금 받으라는 것이다. 세대 간 연대, 노후 소득보장이란 과제는 사라지고 억울함과 공평함이 난무하는 정부의 개혁안에서 노후의 삶은 사회적 과제가 아니라 보험료를 납부한 만큼 돌려받는 각자도생의 문제가 된다.”

국민연금에 덧씌워진 각자도생의 프레임부터 깨야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경쟁만이 아니라 협동으로도 꾸려나가야 할 공동체에서 필수적인 사회적 돌봄의 기능을 국민연금만큼 폭 넓게, 넉넉하게 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세대 간 부담의 공평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무엇보다 보험료를 내는 시점과 급여를 받는 시점의 격차 탓에 공평성을 미리 꾀한다는 것이 어차피 주먹구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2025.1.23. 연합뉴스

금융시장의 연금상품보다 월등한 수익률 구현

국민연금은 금융상품 측면에서 보더라도 장점이 많다. 금융시장의 어떤 보험이나 연금상품도 결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준다. 정부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모든 국민에게 가입 의무를 지우고, 모든 사업장 사용자에게 근로자 보험료의 절반을 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 덕분에 사업장 근로자들은 내는 보험료에 비해 배 이상 훨씬 더 많은 연금 급여를 받게 된다.

농어민과 자영업자 등 지역 가입자들의 경우 보험료를 지원받지 못하지만, 그들도 금융시장의 개인연금 상품에 비해서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더 높은 수익비를 보장받는다. 국민연금은 보험료의 징수에서부터 연금기금의 운용, 관리와 수급 등의 업무를 모두 정부 재정으로 운영하는 국민연금공단이 맡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는 연금 급여에서는 금융시장의 퇴직연금, 개인연금, 보험상품의 경우에 가입자가 부담하는 자금 운용과 관리 등의 비용이 제외된다. 가입자에게 그만큼 더 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기금의 운용수익률도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을 크게 앞서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1988년 창설 이래 2023년까지의 연평균 누적수익률이 5.92%, 퇴직연금은 2023년 말 기준으로 연 환산 수익률이 2.07%였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와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참조)

국민연금은 특히 2024년 들어 11월 말까지 투자수익률이 12.57%(잠정)까지 높아졌다. 국민연금기금의 해외자산 비중이 높아진 것은 지난해 원화 대비 달러화 강세가 이어진 요인이 크다. 또한 개인 퇴직연금은 위험자산 투자 한도 설정 등 규제 때문에 적립금의 80% 이상이 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으므로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12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의 '퇴직연금 비교공시' 자료에 따르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사들이 가입자한테서 떼가는 퇴직연금 수수료는 지난해 1조 6840억 5500만 원에 달해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의 53%만 수령…31%는 월 30만 원 미만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양분돼 있고, 이들 사이의 가입율 차이 및 부담과 혜택의 격차가 커서 사회적 연대라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방안 라운드 테이블’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18~59세 인구 3010만 명 중 1034 만 명(34.4%)이 적용 제외(22.4%), 납부예외(9.5%) 및 장기체납(2.5%) 등으로 인해 수급권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급여 수준이 낮은 사각지대에 있다. 실제 65세 이상 인구 999만 명 중 526만 명(53%)만이 연금을 수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 중 31%가 월 30만 원도 되지 않는 낮은 연금을 받는 실정이다.

국민연금 가입상태를 유지하지 못 하고 있는 가입 대상자의 대부분은 지역가입자들인 영세자영업자, 그리고 특수고용형태(특고)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이다. 국민연금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역가입자 685만 명 중 44.7%가 사업 중단, 실직 등의 이유로 납부 예외 상태에 있으며 12.8%는 장기 체납 중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사업장 가입자와 달리 현재 소득의 9%에 이르는 보험료를 혼자서 부담한다. 직장 가입자에 비해 두 배의 부담을 안고 있기때문에 연금 가입이 저조하고, 보험료 체납도 잦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특고 노동자 166만 명의 연금 가입비율은 37.5%로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입률(73.9%)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납부예외자인 전업주부를 포함해서 대표적인 연금 약자인 여성의 연금 지위를 높이는 과제도 시급하다. 여성 고용률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경력 단절 등으로 가입기간 등에서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다.  정부는 출산크레디트 등 가입기간 인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이나 별도의 재정 지원 등 보다 적극적인 연금 구조조정 및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런 사정들을 들여다 보고 나면 연금개혁의 우선순위는 지금 정부와 국회의 제시안과는 사뭇 다르게 배열된다. 연금 사각지대의 해소가 다른 무엇보다 더 시급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연금 고갈은 먼 장래의 일이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 전망에 바탕을 둔 걱정에 불과하지만, 연금 사각지대와 그로 인한 노인 빈곤은 발등의 불이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이 보고를 하고 있다. 2024.4.3. 연합뉴스

국회는 국민연금의 세대 간, 사회적 연대 강화 선언해야

정부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노력과 함께 국민연금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세대 간, 사회적 연대의 기능과 역할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은 소득대체율이나 연금 구조개혁 방법 등을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해야 한다.

즉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과 노인복지 등 재정지원을 통해 적정한 소득대체율을 보장함으로써 노인들이 급격한 소득 감소를 겪지 않도록 하겠다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존엄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청년들은 노후 걱정 없이 그들이 좋아하는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하고 결혼도 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런 방향은 제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의 시민 숙의단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다수의견과 일치한다. 이들은 노동시장 약자의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데 매우 높은 비율로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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