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세력의 몰상식 버티기…미국 믿고 저러나?

내란 주도세력과 공범자 비판 피하는 미국

CRS, 한미일 준동맹 지속가능성에 의문

VOA “한국 위기사태는 야당의 방해 탓”

캠벨 화낸 건 쿠데타보다 그로 인한 정권교체?

미국 민주주의 우월성 담론의 위선 아니길

2024-12-27     한승동 에디터
윤석열은 2023년 8월 워싱턴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다. 바이든은 이 한국 지도자에게 많은 투자를 했고, 그가 계엄령을 선포한 뒤에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 12월 26일

12월 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총애하고 키운(cultivated) 동맹국의 지도자(윤석열)가 수십년 만에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바이든 정부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보수주의자 윤 씨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한 뒤에도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버틴 트럼프와 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그에 대한 비난을 자제(refrain)했다.”

12월 26일 <뉴욕타임스>의 기사 ‘바이든과 그의 보좌관들, 미국의 목표를 훼손한 동맹국들에 구애(court)’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란 주도세력과 공범자 비판 피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 이스라엘 같은 파트너들이 미국의 이익과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하자 깜짝 놀랐다’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윤 씨는 2023년 워싱턴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다. 바이든 씨는 이 한국 지도자에게 막대한 투자를 했고, 그가 계엄령을 선포한 뒤 그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다.”

‘자제’가 아니라 그들이 윤 씨와 그의 추종자들을 공식적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비난한 적이 아예 없다. 그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중 다수가 비판하고 경계해 마지 않는 상대는 오히려 그런 윤 씨와 그 추종자들을 헌법과 법률 규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야당들이다. 이는 미국 조야의 유력 인사들이 지금의 한국 위기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사태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가려 하는지를 헤아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뒤 이스라엘에 도착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포옹하고 있다. 바이든은 그때 네타냐후에게 일부 행동을 완화하도록 설득하려고 했지만,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위협한 적은 없다.  뉴욕 타임스 12월 26일

민주주의 정상회의 “위선적이거나 순진한 것”

뉴욕타임스는 그런 나라로 한국, 이스라엘 외에 아프가니스탄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꼽았다. 이들 나라가 미국이 맡긴 역할 수행에 실패하거나 미국의 정책 제안과 외교적 노력을 거부했을 때에도, 미국의 전현직 관리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종종 러시아, 이란, 북한, 특히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를 소외시킬 수 없다며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2021년 꼭두각시 아슈라프 가니 정권에 뒷일을 맡기고 황급히 철수한 뒤 벌어진 아프간 정권 붕괴 뒤의 혼란과 유혈사태가 그러했다.

신문은 바이든 정부가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민주주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한국을 선택하고 윤 씨에게 ‘민주주의 정상회의’ 세 번째 회의를 서울에서 열어 주재하게 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를 “위선적이거나 순진한 것”(hypocritical or naïve)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담은 미국의 많은 동맹국이나 파트너가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논란이 많은 문제였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외교 정책의 중심으로 강조하면 위선적이거나 순진해 보일 뿐이다.”(엠마 애시포드 스팀슨 센터 수석 연구원)

위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팔레스타인 주민 4만 5000명 이상을 죽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정부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한결같은 지지와 지원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애시포드는 미국 정부의 위선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한쪽(러시아의 침공)은 용납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 비난하면서 “다른 쪽(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은 (정당한) 자기방어”라고 옹호하는 데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더 심하다”

버몬트 주의 독립적인 국제정책센터 수석 부사장이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고문을 지낸 맷 더스는 “그(바이든)는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을 자행했을 때도 무조건 이스라엘을 지지했다”며 바이든이 강조해 온 “규칙 기반의 질서”가 정작 바이든 정부의 그런 위선적인 개입 때문에 입은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며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국제법의 기초에 더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했다. 게다가 바이든은 수십년 간의 그의 정치활동 내내 미국이 세계질서 옹호의 챔피언, 즉 “교회의 대제사장”인 양 처신해 왔기 때문에 그런 위선적인 행위는 더욱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얼마 전 미국 상원 초당파 그룹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전투원들에게 무기를 제공해 파괴적인 전쟁을 부추긴 또 다른 미국의 파트너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다른 외부 개입세력들에 대해 조치를 취하도록 바이든 정부에 촉구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UAE가 전쟁 내내 “인도적 기여”를 했다면서, 그들(UAE 등 개입세력)이 더는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그들을 옹호했다.

논란이 됐던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파병 움직임도 UAE를 통해 수단 내전에 간접적으로 개입한 바이든 정부의 기획과 유사한 맥락에서 추진됐다면, 유럽과 미국은 자신들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정작 자신들은 직접적인 개입을 꺼리고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아무 관련도 없는 8천 km나 떨어진 그들의 아시아 ‘파트너’에게 그 짐을 떠넘기려 한 셈이 된다.

불발로 끝난 비상계엄 이후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자료와 증언들을 보면, 윤 씨 등 친위 쿠데타 주도세력은 서방의 그런 구상에 자발적으로 적극 호응하고 가담해 자신들의 계엄령 발동을 정당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CRS, 한미일 준동맹 지속가능성에 의문

지난 22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한국의 계엄 및 탄핵 사태로 한미일 삼국공조(준동맹) 등을 추진해 온 윤석열 정부 정책이 지속되지 않을지 모른다며,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의회”가 윤 씨가 주한 미군 지휘관들에게 통보도 없이 한국군을 계엄령 시행에 투입한 것과, (야당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대북 대결자세를 강화해 온 윤 씨의 대외정책을 비판하고 “대화정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든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회조사국은 특히 윤 씨가 과거 한국 대통령들보다 더 자발적으로 중국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준동맹관계 확장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둔 데에 반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윤 씨의 그런 접근을 비판해 왔다며, 여론조사에서 야당이 여당인 국힘당의 2배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윤 씨를 앞세워 추진해 온 한일관계 강화 및 한미일 삼국 준동맹체제 구축 노력이 지속 가능할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한 윤석열 대통령. 윤 씨는 지난 12월 3일 계엄령을 선포했으나 국회는 이를 해제하고 윤 씨를 탄핵했다.  뉴욕타임스 12월 26일

VOA “한국의 위기사태는 야당의 방해 탓”

그 이틀 전인 12월 22일 ‘미국의 소리’(VOA)에 출연한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태지역 안보담당 부차관은 한국 야당 등 ‘진보’세력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 동아시아 정책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계엄 사태 이후의 민주당 등 야당의 대응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경계했다.

국무부 직속이었다가 지금은 연방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미국국제방송처(USAGM, 옛 BBG)에서 운영하는 VOA 출연자들은 한국에서 진보정부가 출범하면 진보적 대북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동맹을 희생할 것이라며, 과거에 주한 미군을 ‘점령군’이라 했던 진보정당이 최근 동맹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한미군을 점령군으로 보고 있고, 반일정서에 기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롤리스는 “지금의 정책 결정자들뿐만 아니라 차기 트럼프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도 향후의 ‘두 시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당장 몇 달간 지속될 혼란의 시기”를 걱정했다. 또 한 시기는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일어난 뒤의 ‘진보세력’ 집권 기간일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야당이 현 정부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최대한 방해하려고 작정한 것 같다”며, 당장 겪게 될 혼란 시기를 “동맹으로서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연합뉴스> 12월 22일)

롤리스는 위기의 한국사태를 조기에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는 세력이 정해진 헌법적 절차 이행을 거부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과 집권당 주류가 아니라, 그런 그들을 비판하면서 법대로 하자는 야당과 ‘진보세력’이라고 완전히 뒤집어 주장한다.

롤리스에게 한국사태의 '정상화'는 한국 민주주의 체제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고 미일동맹이 끌어온 한일 유착, 한미일 3국 준동맹체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거기에 방해가 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버려도 좋다.

윤석열은 그런 그들의 전략에 자발적으로 호응했다. 그들은 그런 윤의 등장에 열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떠나고 있다. 2024.12.27. 연합뉴스

캠벨이 화낸 건 쿠데타보다 그로 인한 정권교체?

미국 전현직 관리들 다수가 윤석열 친위 쿠데타가 야기한 한국의 최근 위기상황을 이런 관점에서 파악, 대처하고 있다면, 12.3 비상계엄 선언 직후 이를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이라 비판한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의 얘기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을 좌우하는 국무부 제2인자의 그 발언은 윤 씨의 뜬금없는 친위 쿠데타 시도와 실패로 바이든 정부가 집중 투자를 해 온 한일 유착 및 한미일 준군사동맹 체제 구축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지도 모를 우행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미국이 콘트롤하기 쉽지 않은 한국 야당과 진보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만들 문을 열어제쳤다는 것에 대한 화풀이일 수 있다.

캠벨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이번 사태로 재확인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과 저력을 칭찬하면서 합헌적, 합법적 절차에 따른 위기상황 해소를 강조하면서도 위기사태를 만든 장본인 윤 씨와 그의 동조자, 공모자들에 대한 합헌적, 합법적 처벌 절차를 방해하면서 ‘시간 벌기’를 하고 있는 집권 국힘당 주류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비판을 피하는 것은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위선’일 수 있다. 캠벨이 “심한 오판”이라며 화를 낸 것도 비영리단체 아스펜 전략포럼이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포럼에서였다.

캠벨 등은 비상계엄 발동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실패 이후 윤석열은 정치적으로 이미 회생불능인 상태에서, 미국이 집착해 온 한미일 준동맹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를 배제한 친미 보수세력의 새로운 결집을 서둘러야 한다고 보지 않을까. 한국 민주주의 파괴자들인 쿠데타 세력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피하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이나 '진보세력'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CRS 보고서나 VOA 출연자들 발언도 그것을 암시한다. 국힘당과 한덕수 등 일부 관료들의 어정쩡한 태도도 미국 내의 그런 기류변화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주의 우월성 담론의 위선 아니길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절차 이행을 거부하고 있는 한덕수 권한대행과 국힘당의 최근 행보는 지난 23일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과 캠벨 부장관의 회담 및 계엄 사태로 연기됐던 한미간 주요 외교안보 일정 ‘완전 재개’ 이후 더 도드라져 보인다.

미국이 주창해 온 민주주의 우월성 담론이 위선적이라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미국에 대한 세계여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사태들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극우 정권 지지와 지원이다. 극우 네타냐후 정권 유지와 이스라엘군의 야만적인 ‘제노사이드’는 미국의 재정 및 군사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최근 ‘사태’가 미국의 민주주의 우월성 담론의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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