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몰린 20대…생활비 떨어져 신용불량자 전락

최근 3년 새 ‘신용유의자’ 25% 급증

88%는 1천만 원 이하 소액에 족쇄

경기 침체에 일자리 없어 수입 급감

고물가·고금리에 생활비는 천정부지

시늉에 그치는 정부 청년 지원 정책

2024-09-09     장박원 에디터

한국 청년들의 삶은 고단하다. 취업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높은 물가와 고금리로 가장 기초적인 생활비도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나마도 구하지 못한 청년 중에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대한민국 청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나왔다. 생활비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신용유의자로 전락한 20대가 최근 3년 새 25%나 급증했다는 통계다. ‘신용유의자’는 예전 '신용불량자'를 대체한 용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빚 족쇄'부터 차는 꼴이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년 신용유의자가 3년 새 25% 급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앞. 2023.8.21.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실은 9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업권별 신용유의자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한국신용정보원에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20대는 중복 인원을 제외하고 6만 5887명에 달했다. 지난 2021년 말 5만 2580명보다 25.3%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신용유의자는 54만 8730명에서 59만 2567명으로 8%가량 늘었다. 20대 신용유의자의 증가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는 수치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이 6개월간 대출을 갚지 못하는 등 연체가 정해진 기간을 넘으면 신용정보원에 신용유의자로 등록된다. 신용유의자가 되면 신용카드 사용 정지와 대출 이용 제한, 신용등급 하락 등 금융 생활에 큰 불편을 겪게 된다.

 

 20대 신용유의자 연도별 증감 현황. 연합뉴스

청년들은 수백만 원을 갚지 못해 신용유의자가 되는 이들이 다른 나이대에 비해 많다. 신용평가사에 단기 연체 정보가 등록된 20대는 지난 7월 말 기준 신용카드 대금 연체자를 빼고 7만 3379명이었다. 이 중 연체 금액이 1000만 원 이하인 경우는 전체의 88.1%인 6만 4624명에 달했다. 20대 연체자 10명 중 9명가량이 소액 채무자인 셈이다. 이는 당장 쓸 생활비나 월세가 없어 신용유의자가 되는 청년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융사별로는 은행권에서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차주가 3만 3610명으로 전체의 절반 수준이었고 저축은행(2만 2356명)과 여신전문회사(1만 6083명) 순이다.

자료를 내놓은 이강일 의원은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20대 신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의 생계 어려움이 소액 연체라는 결과로 드러났다. 청년층 소액 연체를 채무조정 등 금융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사회 정책 등 거시적 청년정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3년 청년 신용유의자가 급증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내수 경기 침체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다 보니 청년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기업들은 청년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2022년 11월 이후 전년 대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7월에는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청년들이 44만 명을 넘어섰다. 7월 기준 가장 많은 숫자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대졸자가 역대 최대인 400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계약 기간 1년 이하의 임시·일용직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서기도 했다. 

 

 자료 : 고용노동부. 연령별 고용보험 가입자 현황.

처참한 청년 일자리 실태는 9일 발표된 고용보험 동향에도 나타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대 고용보험 가입자는 2022년 9월 이후 2년 연속 전년 대비 감소세다. 29세 이하 고용보험 가입자는 8월 말 238만 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10만 3000명)이 줄었다. 감소 폭은 지난 7월 10만 4000명에 이어 2개월 연속 10만 명이 넘었다. 전체 고용보험 상시가입자는 1544만 5000명으로 1년 전보다 22만 명(1.4%) 증가했다. 이런 와중에 청년층은 4% 이상 감소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6.5%로 작년 같은 달보다 0.5%포인트 감소했다. 지난 5월(-0.7%포인트)과 6월(-0.4%포인트)에 이어 3개월 연속 줄었다. 청년 취업자 감소는 절대 인구가 줄은 영향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탓도 작지 않다. 단기 처방이나 대증 요법이 아닌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때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