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거부한 '간호법' 통과됐지만…의료체계 '총체적 난국'

간호사 안정적 업무 가능해져…의료공백 해결 아냐

의사단체들은 집단 반발…의료노조 파업 해제 미지수

근본적인 의대증원 해결 난망…한동훈 중재도 거절

정부 대책이라곤 응급실 병목풀기 경증환자 덤터기

이재명 "이게 대책? 응급실 앞에서 경찰 검문해라"

여야정+α 대화해야 하지만 '불통' 대통령에 기대 난망

2024-08-28     김성진 기자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자 기뻐하고 있다. 2024.8.28. 연합뉴스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의료 종사자들이 속한 보건의료노조가 오는 29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PA(진료지원) 간호사의 의료행위 법제화를 골자로 하는 간호법 제정안이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치권과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간호법 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거부권을 행사해 한 차례 폐기된 법안으로, 정부·여당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장기화함에 따라 22대 국회에서 뒤늦게 간호법 제정안을 재추진했다. 그러나 간호법 통과만으로는 의료붕괴 사태를 막기 역부족이다. 대통령실이 의료개혁안과 관련, 의대정원에 변함이 없다고 못박고 여당 대표의 중재안마저 거부한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반대하는 간호법까지 통과해 의정 갈등만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간호법이 통과됐지만, 보건의료노조가 인력확충,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만큼 의료인력 총파업도 유효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응급실은 코로나19 재확산까지 겹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총체적 난국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전날 밤 여야가 막판 합의를 이룬 간호법 제장안을 의결했다. 제정안은 PA 간호사의 의료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내용이 뼈대를 이룬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이미 처치와 시술 등을 하는 PA 간호사의 의료행위를 아예 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여당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검사·진단·치료·투약·처치로 명시하자고 했지만, 막판 논의 끝에 야당의 입장을 반영해 업무범위를 시행령으로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다만 또 다른 쟁점인 간호조무사의 학력 기준은 법안에서 빠지고 추가 논의를 이어기로 했다. 법안은 급행으로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국회는 오후 본회의를 열고 재적의원 290인, 찬성 283인, 반대 2인, 기권 5인으로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이 의사단체 등의 의견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한 지 약 1년 4개월 만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뒤늦게라도 법제화하면서 의료 공백 상황을 대신 막고 있는 간호사들의 안정적인 업무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국립중앙의료원지부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연 진료 정상화, 불법진료 근절, 처우 개선 촉구 출근길 선전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8.26. 연합뉴스

그러나 간호법은 의료공백을 메우는 법안이 아니다. 정부·여당은 의료인력의 대규모 이탈을 막기 위해 야당과 타협하고 간호법을 긴급하게 통과시켰지만, 의료현장 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앞서 보건의료노조 소속 61개 사업장은 찬성률 약 91%로 총파업을 가결하고, △총액 대비 6.4% 임금인상 △주4일제 시범사업 실시 △불법의료 근절과 업무범위 명확화 △인력확충 △간접고용 문제 해결 등을 요구했다. 정부의 외골수 정책으로 반년 넘게 이어진 의료 공백과 그로 인한 업무 부담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현장의 비명이다. 이날 간호법 통과로 불법의료 근절과 업무범위 명확화 문제는 일부 해소됐지만, 나머지 사안은 그대로다.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고려대의료원, 이화여대의료원 등 10여 개 사업장의 노사 교섭이 타결된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노조 측은 사업장별로 개별 교섭을 갖고 최종 결렬되면 파업 전야제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29일 새벽까지 타결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나머지 50개 정도의 사업장에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간호법 통과로 의사-간호사 직역간 갈등뿐 아니라 의정갈등도 더욱 심화하는 모습이다. 의정갈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정부·여당이 간호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의사단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앞서 대한의학회·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대한개원의협의회·대한병원의사협의회·한국여자의사회·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대한의사협회 등 9개 의사단체는 전날인 27일 긴급 시국선언문을 내고 간호법 제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도 입장문을 내고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악법인 동시에, 간호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충수의 법"이라며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되고,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데 따른 혼란 등으로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 피해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오는 29일 파업 돌입을 밝힌 가운데 27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2024.8.27. 연합뉴스

의료공백 사태의 근본 원인인 의대정원 문제는 더더욱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오는 29일 연금개혁과 함께 의료개혁에 대해 직접 국정브리핑을 할 예정인 가운데, 대통령실은 "의료 개혁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관된다"면서 의과대학 2000명 증원 계획안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2026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 중재안도 거부했다. 한 대표의 중재안은 올해 유급될 확률이 높은 의대 1학년 약 3000명과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약 4610명을 합하면 내년도 의대 1학년 학생은 약 7500명이 넘어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운 만큼, 2026년도 증원을 유예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여당 대표 제안에 대해 "(대통령의) 현재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거부 방침을 밝혔다. 의료 문제 담당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교체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방침대로만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년 넘은 전공의 집단 이탈에, 직역간 갈등에, 코로나19 재확산까지 덮치면서 이미 응급의료체계는 무너지고 있지만, 정부의 현장 대응책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응급의료 수요가 평소 2배 가까이 늘어나는 추석을 앞두고 정부는 경증환자 분산을 위해 응급실 본인부담률을 90%까지 높이는 정책을 내놨지만, 일반인이 증상의 경중을 판단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비용 부담만 늘려 적기에 받을 치료도 놓치게 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응급실 공백 문제를 국민에게 전가한 꼴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증환자 부담률 인상에 대해 "이게 대책이냐"며 "차라리 응급실 앞에 경찰 세워두고 검문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대비해 내놓은 대비책 역시 파업병원기관 모니터링, 24시간 비상진료체계 유지 등으로 '배고프니 밥을 먹겠다'는 수준의 내용뿐이다. 시민들 사이에선 "다치지 말자" "각자도생"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 08.27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대규모 의료인력 이탈을 의식해 긴급하게 간호법을 추진하면서 여야간 오랜만에 타협이 이뤄졌지만, 근본 문제인 의대증원을 해결할 정치는 이전보다 더욱 고차원의 방정식이 되면서 단기간 해결은 난망해 보인다. 한동훈 대표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대통령실이 한 대표의 의대증원 유예 중재안을 거부한 가운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와 한 대표의 내달 첫 회담에서 의대증원 문제을 의제로 올리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의대증원 문제가 당정간 갈등에서 여야간 문제로 확대됐다. 여기에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시민사회 등 정책 당사자 변수까지 포함하면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러한 고차방정식을 풀기위해 여야정에 의료계와 시민사회를 더한 갈등조정 메커니즘을 대통령이 주도해야 할 시점이지만, 대통령이 그럴 의중이 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실이 기존처럼 의대증원 2000명이 '과학'이라고 고집한다면 해결은 난망할 뿐 아니라 의료붕괴라는 현실을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의 의중은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내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금·의료개혁 국정 브리핑을 하고, 브리핑 뒤에 자유주제로 질의응답을 가질 예정이다. 브리핑과 질의응답 과정 등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실, 정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브리핑 등에서 아무런 타협점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한동안 의정갈등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편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30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찬 회동은 추석 연휴 이후로 연기됐다. 여권에선 만찬 연기를 두고 의대증원 문제를 두고 당정 갈등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실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이 대표와 협의해서 협치 시그널을 보냈으면 보냈지 한 대표에게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주도권을 내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용산은 정책 주도권을 내주면 계속해서 한 대표에게 끌려다닐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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