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명 서류 놓고 두 명이 1시간 투표로 13명 뽑았다?

이진숙 방통위, 방문진·KBS 이사 선출방식 논란

선정 이유·배제 사유 논의도, 이견 조정도 없어

이진숙·김태규 2인이 맘대로 정해 입 맞춘 것

절차 위법적…탈락 후보들 취소·효력정지 소송

윤 정부 오로지 MBC 장악 위해 만든 난장판

2024-08-05     김성재 에디터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이 취임 첫날 두 명이 만나 전체회의를 열고 KBS와 MBC 대주주 방문진 이사 지원자 83명 중 13명을 단 한 시간여 만에 이사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정 과정은 2인이 7~8 차례 투표를 통해 이뤄졌으며 지원자 1명에 대한 서류 검토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은 셈이다.

이사 선정 이유나 배제·결격 사유 등을 충분히 논의하기는커녕 아예 전혀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이며,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추천하고 임명한 방통위원장·부위원장 2인이 서로 마음에 드는 지원자를 투표 형식으로 짜맞춰 뽑은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 선정이 졸속을 넘어 기본적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방통위 2인 체제’가 위법이라는 지적이 법원에서 제기된 데 더해서 이 정도면 논란의 수준이 아니라 법적 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될 만하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오전 취임식을 마친 뒤 오후 5시 김태규 부위원장과 함께 ‘전체회의’를 열었다. 1시간여 진행 끝에 KBS 이사 7명, MBC 방문진 이사 6명과 감사 1명을 선임했다고 오후 7시쯤 발표했다. KBS와 MBC방문진 이사에는 모두 83명이 지원했다. 83명 지원자의 서류를 두 명이 1시간 여만에 검토하고 이 중 13명을 이사로 뽑은 ‘졸속 심사’를 한 것이다.

심사 방식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2일 국회 과방위가 연 ‘방통위 파행 운영 및 방통위원장 의혹 검증을 위한 현안 질의’에서는 이진숙 위원장·김태규 부위원장이 투표를 통해 뽑았으며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1시간 동안 6~7차례 투표를 거듭해 결정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방통위 조성은 사무처장에게 "(방문진 이사진을) 이견 조정 없이 두명이 앉아서 투표로 뽑았냐"고 묻다가 실소를 터뜨리고 있다.  JTBC 유튜브 화면 갈무리. 

김영관 방통위 기획조정관은 “방문진의 경우 아홉 분을 선임해야 하니 두 분(이진숙·김태규)이 9명씩 투표를 해서 투표를 받으면 선임하는 방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는 경우가 있나? 제가 공천도 해보고 미스코리아 심사도 해보고 다 해봤는데 이런 건 처음”이라며 “보통은 압축 단계를 거치고 압축하면서 배제하는 사유를 다 명기하고 이런 식으로 가든지 (중략) 2명이 앉아서 내가 생각한 9명 (뽑기)한 다음에, 그 9명이 교집합이 생긴 부분은 무조건 선임이 됐겠네요”라며 실소를 터뜨렸다.

이준석 의원이 “이견 조정하는 과정이 (기록에) 남아 있겠네요”라고 묻자 조성은 방통위 사무처장은 “이견 조정은 별도로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견 조정 과정도 없이 그냥 두 명이 투표만 계속 해 결정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사장을 뽑고 경영을 감시할 이사회 이사를 이런 식으로 뽑는 나라가 있나? 이준석 의원 말대로 민간 기업에서도 이렇게 임원을 뽑지는 않는다. 미스코리아를 뽑을 때도, 말단 공무원을 뽑을 때도 이렇게 두 명이 앉아서 서류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논의도 없이 뽑지는 않는다. 투표만 반복해서 뽑았다는 것은 두 명이 미리 뽑고 싶은 사람을 정해놓고 여러 차례 투표로 조정해서 두 사람이 합의된 자를 뽑았다는 얘기다. 이런 임원 채용이 세상에 어디있나? 게다가 공영방송 사장 선출을 좌지우지할 이사회 임원 선출 아닌가? 

이 뿐 아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MBC노조 측이 ‘기피신청’을 제기했으나 이것 역시 한마디 논의도 없이 이사 선임 절차가 진행됐다. 법도 절차도 다 무시하고 그저 MBC 장악을 위해 군사작전 펼치듯 신속히 공영방송 이사 선정을 마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뽑은 두 공영방송 이사회 임원이 거의 전부가 극우 성향 인사였다니 더욱 말문이 막힌다.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3인이 소송을 제기했다. MBC 이사 선임 취소와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이다. 조능희 전 MBC플러스 사장, 송요훈 전 아리랑국제방송 방송본부장, 송기원 MBC저널리즘스쿨 전임교수 등 3인은 소송 입장문을 통해 ▲방통위법에서 정한 5인 합의제를 무시하고 2인 체제로 운영한 점 ▲기피신청 당사자로 제척돼야 할 이진숙 위원장이 본인에 대한 기피신청을 각하해 방통위법을 위반한 점 ▲이전과 달리 면접 절차가 생략된 점 ▲후보가 총 83명에 달하지만 논의 시간이 짧았던 점 등이 절차적 위법성 또는 재량 권 일탈과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진숙-김태규 2인 방통위가 졸속 선임한 MBC 방문진 이사진의 간단 행적. 한겨레신문 8월2일자 갈무리.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민주당의 탄핵 발의로 KBS·MBC 이사 선임을 마친 직후부터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그는 전임 이동관·김홍일 위원장들처럼 탄핵 의결 직전 ‘런’(도망)하는 식의 자신사퇴를 하지 않고 버틸 것이란 예상이다. 6개월 이내에 헌법재판소가 ‘탄핵 무효’ 판결을 내릴 것으로 자신하고 있거나 이제 MBC 방문진에 극우 성향 이사를 뽑아놨으니 MBC 장악은 본인의 직무정지와 상관없이 완수될 것이라는 생각에 굳이 사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 윤석열 대통령이 자격이 없는 이진숙 씨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유도 눈엣가시 같은 MBC 장악이었으니 이진숙의 탄핵이든 사임이든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법인카드 불법사용으로 수사받아야 할 이진숙 씨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것이기도 하다.

남은 것은 공영방송 이사 선임 취소와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이다. 효력정지 가처분 재판은 오는 9일 열릴 예정이다. 그동안 방심위의 MBC보도 법정제재에 대해 MBC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17건은 모두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바 있다. 법원이 ‘위법적인 2인 방통위가 절차를 어겨가며 졸속 심사로 MBC 방문진 이사를 선임한 사실’을 인정할 가능성은 기대해 볼 만하다. 효력정지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진숙 방통위원장, 그리고 국힘당의 MBC 장악 시도는 일단 제동이 걸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무모한 언론장악 욕심 탓에 이렇게 나라가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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