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의 죽음을 ‘장비 파손’으로 여기는 사고체계

주진우 의원이 되살린 30년 전 정신적 충격

"전투 중 사망은 '전투 손실' 그 외는 '비전투 손실'"

병사가 죽으면 '물자과'에 관리하던 야만적 육군

임성근 "군인은 필요할 때 죽어주도록 훈련된 존재"

2024-07-26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기억을 갖게 된 때는 1999년 1월의 아주 추운 날이었다. 당시 나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임 활동가로 일하고 있었다.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장교의 죽음을 진상 조사하는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처음으로 사건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국방부 조사실을 방문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출입증을 교부 받는 국방부 정문 위에 걸린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참으로 묘한 문구였다. 처음 보는 단어였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조사단 사무실에 도착하고도 끝내 그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기록을 가져온 수사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수사관님. 궁금해서 그런데요. 들어오다 보니 정문 현수막에 ‘비전투 손실 예방의 달’이라고 써 있던데, 그 뜻이 뭔가요?”

그래서 듣게 된 놀라운 사실. 수사관은 기록을 내려놓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전투 중 사망한 군인은 <전투 손실>, 그 외 나머지 죽음은 <비전투 손실>이라며 친절하고 ‘매우 쉽게’ 설명해 줬다. 그러면서 매년 연말과 연초에 비전투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부대 정문에 현수막을 게시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답변이었다. 어떻게 인간의 죽음에 대해 ‘손실’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지, 그 뜻을 처음 듣고 받은 정신적 충격은 3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얼얼하다.

 

지난 1998년 12월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재조사중인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판문점 올렛관측 초소 3번 벙커에서 총성실험을 하는 장면. 2013.3.5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7.19 연합뉴스

주진우 의원의 ‘군 장비 파손’ 발언이 되살린 ‘비전투 손실’의 기억

그 희미해진 충격을 다시 되살린 것은 지난 7월 4일 이른 새벽,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국힘당 소속 주진우 의원(부산 해운대구갑)의 발언이었다. 주 의원은 채 해병 사건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안’) 필리버스터 반대 토론자로 나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문제 발언을 했다.

"(…) 만약에 이게 사망 사고가 아니라 여러 명이, 예를 들어서 군 장비를 실수로 파손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군 장비를 파손했는데, 군에서 조사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일주일 만에 조사를 한 다음에 한 8명을 다 ‘군 설비에 대해서 파손 책임이 있으니까 너희 집에 다 압류를 해 놓고 일단 소송을 진행하겠어’라고 한다면 당하는 군 입장에서는 그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

주진우 의원의 발언 내용이 알려진 후 세상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요란했다. 주 의원은 오해라고 부정했지만, 그의 발언은 군인의 죽음을 군 장비 파손으로 비유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파문이 이어지자 며칠 후인 7월 6일, 주 의원은 본인 SNS에 연이어 해명 글을 올리며 "군 행정권 남용의 폐해를 국민들께서 이해하시기 쉽도록 절차적으로 설명한 것이 어떻게 순직 해병의 숭고한 희생을 장비에 비유한 것인가. 감히 그런 패륜적 발상을 하고 입으로 뱉는 민주당이야말로, 고귀한 희생을 모독하는 처사”라며 국회 윤리위에 자신을 제소하겠다는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 중 이러한 주 의원의 해명을 듣고 공감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2022년 12월 기준, 대한민국 군인은 약 48만 명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 48만 명이 ‘지겹도록 관리하기 힘든 장비’의 숫자에 불과한지 모르겠으나 그들 한 명 한 명의 군인은 그들 부모에게 있어선 유일한 하늘이요,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땅인 존재다. 그런 하늘이요, 땅인 자식들을 군에 보내 놓고 노심초사하는 그 부모 앞에서 예를 든다는 것이 ‘군 장비 파손’ 따위였다니 말이 되나. 그러면서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절차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당당히 말하는 것이 또 가당키나 한 반론일까.

냉방 10년 버틴 사망 병사 모친이 폭로한 ‘비전투 손실’의 현실

군인의 죽음에 대해 국방부가 그것을 전투 중이든, 아니면 비전투 중이든 ‘손실’로 표현한다는 것을 안 후, 나는 그 어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2013년, 국회 국방위 보좌진으로 일할 당시 국방부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비전투 손실’ 용어 사용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그 용어를 언제부터 사용해 왔는지를 물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비전투 손실(非戰鬪 損失)’은 ‘질병이나 상해로 인하여 사망한 자 또는 자의적이라고 인정되지 않으며 적 활동과 억류로 인한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질병 또는 상해의 이유로써 소속 부대를 이탈한 인원’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한 1965년 3월 ‘비전투 인적 손실자’라는 용어로 처음 사용을 시작하여 이후 1971년 2월 ‘비전투 손실’로 변경되어 현재 <합동군사 용어사전>에 등재 후 ‘계속 사용 중’이라고 답변해 왔다.

한편 내가 경험한 군의 ‘야만적 생명 감수성’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2014년 국회 국방위 소속 김광진 의원실에서 일할 때였다. 이때 나는 매일같이 군에서 의문사로 가족을 잃은 수백여 명의 유가족을 만나고 있었다. 하루는 한 어머니가 찾아와 눈물 속에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복무 중이던 아들이 숨진 후 10년째 장례를 거부 중이라고 했다. 너무 억울해서 장례를 치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엔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많이 억울했냐”고 여쭈니 “자식이 죽었다는데 부대가 준 것은 ‘아무것도 써있지 않은’ 반쯤 찢어진 편지지 한 장뿐”이었다며 ‘그것이 아들이 남긴 전부’였다는 횡포가 너무 분해 이대로는 아들을 보낼 수 없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그랬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차디찬 냉동고에 두고 맘 편히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어머니도 난방이 된 방에서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억울하니까 하루만, 또 하루만 참으면 군에서, 국회에서, 청와대에서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시간만 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 한 해가 지나가면서 아들은 10년째 군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서 세월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 어머니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병사 시신을 폐품 처리했던 ‘육군 군수참모부 물자과’

“보좌관님. 그런데 아세요? 그런 제가 1년에 한번이라도 군 병원 냉동실에 있는 아들을 보려면 어디로 전화해야 하는지?”

서럽게 지난 세월을 말하던 그 어머니가 느닷없이 던진 질문이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답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 행정실이나 영안실 사무실이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틀렸다. 답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답은 ‘육군 군수참모부 물자과’였다. 다시 말해 육군에서 군인이 죽으면 그것은 ‘고귀한 사람 시신이 아니라’ 고철이나 폐품처럼 ‘물자과’가 ‘물자’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72년 6월 제정된 육군 ‘사망자 처리 업무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육군에서 군 복무하던 아들이 사망하는 참담한 비극을 당할 경우 그 부모는 군수참모부 ‘물자과’로 연락하여 시신 인수 방법에 대해 안내를 받아 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당해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 대우가 아닐 수 없다.

반면 확인해 보니 같은 대한민국 군인이면서 공군과 해군은 또 달랐다. 육군의 사망 시신 관리 주체가 ‘물자과’인데 반해, 공군과 해군 담당 부서는 ‘인사과’였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해군 4만 1000명, 공군 6만 5000명, 해병대 2만 8800명에 비해 육군은 압도적인 차이인 36만 5200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육군에서 이런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13년 10월 실시된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소속 김광진 국회의원이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놀랍게도 당시 장관과 총장은 이 사안에 대해 모르고 있는 태도였다. 실태가 폭로하자 들끓는 비난 여론 앞에 군 당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인 2014년 3월 1일, 물자로 취급되던 ‘군인의 죽음이’ 마침내 인간의 고귀한 죽음으로 바뀌었다. 42년 만에 이뤄진 개혁조치였다. 이날 육군본부를 비롯한 예하 부대에서 영현 업무를 ‘물자과’가 아닌 ‘인사과’로 바꾼 것이다. 애초에는 육군에 ‘영현과’ 신설을 요구했으나 이것까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된 사연을 통해 물자 취급되던 군인의 시신을 42년 만에 다시 고귀한 존재로 가족에게 돌려준 의미있는 계기였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7.19. 연합뉴스

‘군 장비 파손’ 망언 반성 않는 군 미필 검사 출신 국회의원

그런데 그렇게 싸워 만든 지난 10년 간의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이 주진우 의원의 7월 4일 필리버스터 발언 파문이었다. 이미 그 전에 임성근 해병대 전 1사단장의 부적절한 발언도 한 몫 했다. 그는 채 해병 사건 관련 대대장 탄원서류에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된 존재다”라는 취지의 글을 써서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도대체 지금, 어느 부모가 ‘내 자식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자식을 군에 보내고 있나. 단언컨대, 그런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채 해병 역시 전쟁 작전 수행 중 사망한 것이 아니라 지휘관의 잘못된 임무 지시로 사망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자 어처구니없는 비유를 하니 어느 국민이 동의할 수 있겠나.

한편 지난 9일, 민주당은 주진우 의원의 ‘군 장비 파손’ 발언에 대해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주 의원이 해병대원 순직 사망사건을 군 장비 파손에 비유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뻔뻔하게 나온다”며 윤리위 사유를 제시했다. 그러자 주 의원 역시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윤리위에 맞제소했다. 지금까지 국회 윤리위 전례로 보아 제대로 된 징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국회 윤리위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파문을 두고 반드시 생각할 것이 있다. 주진우 의원 발언도, 또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탄원서 메시지도 적절치 않았음을 그들 스스로가 인정해야 한다. 그게 먼저다. 군인도 사람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며, 절대 함부로 말해선 안 될 고귀한 목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주진우 의원은 본인 건강 문제로 병역 의무도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남들 군 복무하는 동안 본인은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그 후 검사로서 승승장구하여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거쳐 오늘날 국회의원까지 이르렀다. 그런 사람이 의무 복무 중 사망한 채 해병을 두고 ‘군 장비 파손’ 운운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윤리적 태도이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겠나. 그건 정치를 떠나 인간의 기본 도리다.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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