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즈가 아니다, 이것은

2024-07-03     임미성 재즈 가수
임미성 재즈 가수

현대 음악의 문을 연 신고전주의의 선구자이며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인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는 1893년 작품 <짜증(Vexation)>을 작곡한다. 악보에 표기된 지시어는 다음과 같다. “이 동기를 840회 연속으로 연주하시오. 이를 위해서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극도의 침묵 속에서 어떠한 미동도 없이 연주하시오.”

박자 기호와 세로줄이 제거된 한 장의 악보. 연주자는 무엇보다 이 악보를 ‘아주 느리게’ 연주해야 했다. 연주 시간이 14시간에서 느리게는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 작품은 에릭 사티 사후, 1963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존 케이지에 의해 세상에 선보이게 되는데 4명의 연주자와 교대로 18시간을 연주함으로써 초연에 성공한다.

 

에릭 사티

한 장의 악보로 20시간 연주하는 <짜증(Vexation)>

<짜증>은 그 후로도 많은 피아니스트의 도전과 실패가 이어졌고, 여러 연주자의 릴레이 연주로 완주되었으며, 2020년 마침내 베를린의 한 스튜디오에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바트가 15시간 30분 동안 연주하는 과정이 그대로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다. 그는 두 번의 휴식을 취했고 5리터의 물을 마셨다. 다소 지치고 힘든 표정으로 때로는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등 극한의 상태를 이겨내며 “화가 나도 참아 냈다”고 한다.

연주 횟수가 길어질수록 어떤 연주자는 환각증세를 보이며 연주를 중단하고 들어가거나 제멋대로 연주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관객들은 하나둘씩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이 모든 상황은 에릭 사티가 의도한 결과였다. 작품 <짜증>의 구성요소는 악보를 연주자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곡을 감상하는 관객의 태도(팔짱을 끼거나 과자먹기, 하품하기, 재채기하기,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등)도 작품을 완성하는 하나의 조건이었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를 경악케 한 이 작품 <짜증>에서 에릭 사티가 시도한 것은 ‘곡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아울러 작곡가에게도 관심을 두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는 무심하고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 수 있는 가능성으로 <짜증>이라는 거대한 작품을 구현해낸 것이다.

에릭 사티의 840회 연속된 단조로움은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체념’에서 시작되었으나 마침내 다시 자기 자신을 향한 부드럽고 단단한 배려의 다른 이름인 ‘짜증(vexation)’으로 승화되었다. 결국엔 고요한 무관심으로 흘러가야 할 감정. 이 무관심의 음악은 에릭 사티가 1920년에 만든 새로운 장르인 ‘가구음악’의 일환이었다. 장 콕토 대본의 연극에서 공연한 가구음악은 마치 사적인 대화, 벽에 걸린 그림처럼 배경으로 삶에 기여하는 데 가치가 있었다.

누구나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되는 음악을 원한 작곡가

에릭 사티는 쉬는 시간에 연주되는 음악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음악에 집중하지 말아달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가구음악은 1970년대 이후 유행한 공간음악(ambient)이나 배경음악(BGM)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불편함을 편안함 이상으로 여기고 자신을 ‘음향 측정 기술자’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에릭 사티에게 음악은 거창한 예술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누구나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되는 음악으로 남아야 했다. 그의 대표곡인 <짐노페디>는 단순한 선율의 고요함과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단조로움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의 바람처럼 <짐노페디>는 가구음악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며 최근까지도 광고나 영화에서도 자주 듣는 음악이 되었다.

<짐노페디>의 느리고 맑은 선율 들은 명상을 할 때에 도움이 된다. 빌 에반스를 비롯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다. 형식의 파괴와 이전에 없었던 음악 어법으로 현대 음악의 포문을 연 에릭 사티의 음악이 대중에게 환영받은 것은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 이후였다. 삶의 대부분을 끝내 시대와 조우할 수 없었던 에릭 사티는 자신의 운명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다.”

시대를 앞서 간 천재다운 독백은 계속 이어진다. 재즈가 아름답고 현실적인 것은 재즈가 우리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가 언급한 것은 재즈가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지루함, 짜증을 우아함, 부드러움으로 환원시킨 풍자와 역설

그에게는 풍자와 해학이 있었기에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 제목이나 악보 위의 지시어들을 보라, <까다로운 여인의 왈츠>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연주곡> <엉성한 프렐류드>(이상 작품 제목) “치통을 앓는 나이팅게일처럼” “매우 기름지게” “너무 많이 먹지 말 것”(이상 지시어). 근대 최고의 몽상가인 그에게 ‘지루함‘은, 발터 벤야민의 멋진 비유처럼 ‘경험의 알을 부화시키는 꿈의 새’였다.

지루함의 한계를 견뎌내는 건 사물이 아닌 시간에 대한 ‘응시’다. 에릭 사티는 우리가 <짜증>을 감상하지 않고 그저 응시하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밀어내고 싶어하는 감정인 지루함, 짜증, 권태는 에릭 사티의 독특한 풍자와 역설이 담긴 작품을 통해 우아함, 부드러움, 친밀함으로 환원된다.

에릭 사티는 평생 가난 속에서 고독했으나 자유로웠다.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고 샹송을 작곡했다.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천재의 방을 채우고 있는 건 12벌의 회색 벨벳 양복과 100여 개의 우산(그는 비가 오면 우산을 품속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수북히 쌓인 악보였다. 클래식의 피카소, 초현실주의자이자 초기 다다이스트인 에릭 사티가 재즈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는 진실하지 않은 음은 하나도 쓰지 않는 신념과 상상하고 가정할 줄 아는 정신이 있었다. 그는 쉬지 않고 작품에 몰입하며 매 순간 나아갔다. 관객들을 당혹케 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상주의에 아듀를 고하며 모험심으로 집대성한 그의 작품 <짜증>은 재즈가 아니다. 에릭 사티의 지칠 줄 모르는 정신, 그것이 재즈다.

 

찰스 부코스키

허영과 위선의 삶을 허용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작가 부코스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의 저자. 죽기 전까지 글을 썼던 현대 문학의 이단아. 찰스 부코스키의 비명은 ‘Don’t try(애쓰지 마라)’였다. 최선을 다하되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당부가 아니었을까. 방탕한 예술가로도 비난받았던 찰스 부코스키는 아버지의 잦은 학대로 암울했던 유년시기를 두고 “일찌감치 지하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한다. 그러한 고통은 훗날 술과 마약과 도박으로 찌든 삶으로 연결되기도 했으나 그에게는 거침없이 직설적인 극사실주의자로서의 삶을 가며 작품을 써 내려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인가를 시도할 계획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렇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시작되는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또 끝까지 가기 위해서 ‘고립’은 선물이라고 위로해 준다. 그리고 다짐한다.

“하고, 하고, 하라/ 또 하라 끝까지, 끝까지 하라. 너는 마침내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니/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싸움이다.”

공장에서 비스킷을 굽고, 거리의 포스터를 붙이고, 도살장에서 잡역부로, 혹은 철도 노동자로 전전하다 취직한 우체국에서 12년 간 일하며 간간이 시를 쓰기도 했으나 해고당하기 직전 파격적인 출판사의 제의로 마침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작품속에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이라 불리우는 그가 작품 속에서 빈민가의 거친 삶을 낱낱이 들춰냈을 때 출판사들은 그의 작품이 역겹고 추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이로 인해 부코스키의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은 나날이 깊어갔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자신의 실패에 초연해지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편린들을 제목으로 옮겨 놓았다. <우체국> <호밀빵 햄 샌드위치> <술고래>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창작 수업> 등등. 그의 글에는 통찰력 있는 유머와 풍자가 넘친다. 심플하면서도 핵심을 놓치는 법이 없다. 그의 문장을 두르고 있는 티슈처럼 얇게 덮힌 거칠고 외설적인 표현만 걷어낸다면 단순하고 투명한 삶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는 허영과 위선과 기만의 삶을 허용하지 않았다.

단순한 방식으로 완전한 걸 말하기 위해 단순함에 몰두한 천재

부코스키의 말이 울림이 있는 것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어떤 보호막도 겉치장도 없는 궁극의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냉소적인 성격이었지만 비관론자는 아니었다.

“난 아직/ 운이 좋아/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는/ 글이라도 쓰는 게/ 아예 못 쓰는 것 보다는/ 낫잖아.”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작가나 출판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초조한 작가들에게 언제라도 권해주고 싶은 시다. 당대의 문학사조를 바꾸어 놓았던 부코스키는 여전히 글쓰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글을 쓰는 건 특이한 일이다.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결코 도달할 순 없다”

그는 단순한 방식으로 완전한 걸 말하기 위해 단순함에 몰두했다. 이미 천재였지만 다시 천재가 되기 위해 단순해지기로 작정한 그는 방탕한 삶을 살고 늘 취해 있으면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끊임없는 탐구 정신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실패에 초연하는 자세, 삶의 고통을 마주하는 능력, 진실을 향한 갈구, 글쓰기와의 투쟁, 담담한 낙관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현실에 대한 비판, 인생의 공허함에 대한 통찰력, 어딘가에 늘 한줄기 빛이 있다는 희망. 머지않은 소통과 조화. 그의 시와 소설과 산문은 결코 재즈가 아니다. 그의 컨템포러리한 삶에서 보여준 모든 삶의 양식. 그것은 재즈다.

 

마일즈 데이비스 

슬픔과 체념의 소리 연주한 재즈의 신 마일즈 데이비스

재즈 북의 저자 요하임 에른스트 베렌트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에 대해 “마일즈의 사운드는 음악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저항에 어울리는 무조건적인 슬픔과 체념의 소리다”라고 요약한다. 그렇다. 재즈의 신이라 불리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연주는 슬픔과 체념의 소리였다. 체념은 일본의 이키 문화를 이끄는 중요한 감정으로 ‘은은한 방식으로 이원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원성의 방식으로 마일즈는 재즈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하게 되는데 “재즈에서 틀린 음은 없으며 음들이 틀린 장소에 있을 뿐이다. 연주하는 그 음이 틀린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오는 음이 그게 옳았냐 그르냐를 결정하는 것이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연주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습관에도 일침을 가한다. “아는 것을 연주하지 말고 들리는 것을 연주하라” “때론 불지 않는 것이 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비밥 스타일에 저항해 만든 <Kind of Blue>는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다. 재즈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이 음반은 재즈의 경계를 확장시키며 재즈 역사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기존의 화성적 진행과 코드 중심의 연주 스타일을 벗어나 선법(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음을 나열하는 스케일)을 사용함으로써 코드변화가 줄어든 대신 선율이나 리듬, 음색과 감정이 중요시된 모달 재즈(Modal Jazz)가 등장한 것이다.

이 혁신적인 음반은 리허설 없이 원테이크(반복하지 않고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일즈는 이 음반에서 자발성을 원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연주해야 할 것에 대한 스케치를 가져갔다. 녹음할 당시 주문은 단 한 가지였다. 어떤 소리를 만들 수 있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자는 것. 빠르지 않은 템포에 한층 세련되고 단순해진 선율, 다양해진 즉흥연주는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신비한 사운드였다. 연주하는 사람의 태도와 스타일(style)을 강조했던 마일즈는 비밥에서 쿨 퓨전과 힙합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장르를 확장해 나갔다.

재즈음반 <Kind of Blue>는 재즈를 넘어선 음악의 본질

역대 베스트앨범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음반 <Kind of Blue>는 판매누적수가 400만이 넘는다. 지금도 많은 재즈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다른 쟝르의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치 미래의 청중을 예견하고 만든 듯한 <Kind of Blue>의 시들지 않는 생명력은 연주자들 간의 깊은 신뢰와 실험정신에 기인한다.

마일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머니에 마우스피스를 넣고 다녔다. 언제든지 연주할 수 있도록, 아니면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 음반 <Kind of Blue>는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재즈음반이다. 그러나 재즈는 아니다. 그것은 재즈를 넘어선 음악의 본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재즈는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가능성. 재즈는 하나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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