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국민 68% 부유세 찬성…‘부자감세’ 꽂힌 윤 정부
로마클럽·입소스 조사…한국은 71% 찬성
“빈곤·양극화·기후 위기 대응 재원에 활용”
“0.1% 부자 150억 이상 자산에 1% 세율”
국내서도 ‘한국형 부유세’ 도입 제안 나와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와 상속세 완화, 종합부동산세 폐지 같은 부자 감세 정책에 집착하고 있으나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국민 대다수는 부유세 확대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와 소득의 극심한 양극화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힘든 취약층이 늘고 있는 데다 기후 위기와 소수자 차별 등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부유세로 충당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도 부자 증세를 통한 세원 확보를 모색하고 있고, 부유세를 내야 하는 일부 억만장자들조차도 부유세에 찬성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만 시대착오적인 신자유주의와 낙수효과 맹신에 빠져 ‘부자 감세'라는 갈라파고스에 갇힌 모습이다.
2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인류의 당면 현안 해결을 위해 출범한 국제기구 로마클럽의 지속가능 성장 프로젝트 어스포올(Earth4All)과 글로벌 커먼즈얼라이언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G20 국가 중 18개국에서 각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7개국(중국 제외)에서 부유세 찬성 의견이 68%에 달했다. 한국 국민도 71%가 경제와 생활방식 변화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에 찬성했다.
이에 비해 부유세 도입 반대는 11%에 그쳤다. 응답자의 70%는 부유층에 대한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하고, 69%는 대기업에 대한 세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가별로는 인도네시아(86%)가 부유세 도입에 가장 높은 찬성률을 보였고 튀르키예(78%), 영국(77%), 인도(73%) 한국 순이었다. 부유세 찬성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우디아라비아(54%)와 아르헨티나(54%), 덴마크(55%)도 절반 이상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의 대다수 국민이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는 정책을 탈피해야 한다고 응답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응답자의 68%는 자국 경제 운영 방식이 이윤과 부의 증대에만 집중하기보다 사람과 자연의 건강과 국민 행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답했다. 62%는 국가의 경제적 성공은 성장 속도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행복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를 위해 개별 국가와 글로벌 정치 경제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17개국 응답자의 65%와 67%는 각각 자국 정치 시스템과 경제체제에 큰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봤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답변도 우세했다. 기후 변화와 자연 보호와 관련해 전 세계가 전기·운송·식품·산업·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빨리 주요 조처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18개국 국민 71%가 ‘10년 이내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런 응답은 멕시코가 91%로 가장 높았고 케냐 86%, 남아공 83%, 브라질 81%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미국과 중국, 인도 등 G20 국가 재무장관들이 참석하는 7월 브라질 회의 의제 발굴을 앞두고 실시됐다. 브라질 회의에서는 경제와 사회,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부유세가 처음으로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한다. 로마클럽은 “이번 조사 결과는 G20 국가들에 부의 재분배라는 분명한 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평등 확대를 통해 더 안정적인 지구를 위한 공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더 강력한 민주주의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드린 딕슨-데클레브 어스포올 회장 겸 로마클럽 공동대표는 “이 조사는 G20 국가의 대다수 시민이 더 나은 복지, 더 많은 기후 해결책, 더 적은 불평등을 제공하는 경제가 필요한 때라고 믿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부유세 도입은 일반 국민 뿐 아니라 부자들도 찬성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연합뉴스가 2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 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여론조사 기관인 유고브가 미국 백만장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60%가 1억 달러(약 1400억 원) 이상 소득에 대한 추가 과세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최고 세율 37%보다 더 올려 부유세를 걷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조사 결과는 초고액 자산가에 대한 증세를 주장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상류층도 지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부자 증세 같은 진보적인 세금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이번 조사는 고액 자산 보유 개인과 기업으로 구성된 진보 성향 단체 '애국적 백만장자들'의 의뢰로 자가를 제외한 자산 가치가 100만 달러(14억 원)가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애국적 백만장자들'의 모리스 펄 의장은 "미국 백만장자들이 현재 목격하는 불평등이 국가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너무 늦기 전에 이 문제에 관해 뭔가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부유세 도입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세무사 모임 발족 및 22대 국회 조세·재정 분야 입법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는 상위 0.1%의 최고 부유층 자산 150억 원 이상에 대해 1%의 세율로 부유세를 걷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디지털 전환 위기와 인구 감소 위기, 에너지 전환 위기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정 정책이 적극적이어야 한다”며 '한국형 부유세'를 제안했다. 그는 “소득세와 법인세와 상속·증여세, 종부세 등 여러 세목에 부가세 형식으로 과세하면 모두가 부담하면서 여유 있는 계층은 더 낼 수 있는 설계가 될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상위 0.1% 부유층에 세금을 더 걷는 ‘한국형 부유세’ 도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