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욕 들으면서 일 하기 싫어 노조 만들었다”

공단 소규모 사업장 대표 "여긴 다 가족이에요"

"맞아요. 가정폭력 일삼은 사장이 많아 문제죠"

2024-05-23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일할 때, 뭐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진짜로 쌍욕을 해요.” “욕을 한다구요? 무슨 욕이요? 이 새끼, 저 새끼요?” “에이, 그 정도면 양반이죠. 그 정도면 노조 만들지도 않았어요.”

2024년 봄, 시화공단에 있는 A사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결성되었다. 정확하게는 노조를 결성한 게 아니라 산별노조에 집단으로 가입했다. 시화공단에서는 노조 자체가 워낙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존재라 노조 결성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특히 전체 직원 수가 300명을 넘을 정도이고 연 매출이 1000억 원이 넘는, 시화공단에서는 꽤 규모가 큰 기계·금속 가공 사업체였다. 노조 출범식에서 축하 박수를 치면서도 ‘왜 이제야 노조를 만들었지?’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2024년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왜 노조를 만들까? 이 글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자 불만과 이해를 직접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

한국 노동법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대변체로 인정하는 조직은 두 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노조이고, 다른 하나는 노사협의회이다. 노조는 노동자 2인 이상이 특정 목적하에 자주적으로 모이는 결사체이고, 노사협의회는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시고용 30인 이상 되는 사업체에서는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조직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로만 구성되지만 노사협의회는 노사 동수로 구성된다는 차이도 있다.

집단적 이해대변체의 역할은 당연히 노동자의 불만과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노조를 결성·가입하는 이유도, 매 분기별로 노사협의회를 개최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는 이유도, 근저에 깔려있는 노동자 불만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본주의 임노동 관계의 핵심은 하루 일정 시간 동안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 처분권한을 자본이 지급하는 임금과 맞교환하는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은 본능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이윤 극대화를 위한 노무관리를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임금이 체불될 수도, 심지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이 있는 이유도 자본의 노무관리에 최저선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다.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을 하고 있다. 2024.5.16.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그렇다면 집단적 이해대변체에서 노조와 노사협의회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노동자의 불만·이해를 사용자에게 강제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바로 노조가 체결하는 임금·단체협약(이하 ‘단협’)이다. 단협은 한번 체결하면 자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적 효력과 강제성을 지니고 있다. 만약 자본이 지키지 않으면 법정 소송과 파업으로 노조가 강제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게 노동자의 집단적 불만과 이해를 직접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조직은 노조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A사는 오랫동안 노사협의회가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사협의회가 그렇듯이 유명무실한 역할만을 해 왔다. “임금 얘기하면 (회사가) 어렵다고만 하고, 아무리 얘기해도 기본적인 자료도 안 주고, 그냥 논의만 하자고 하고…”. 노사협의회로 노동자 고충이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으니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최근 5~6년 사이에 반월·시화공단에서 결성된 노조 중에 일부는 이처럼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다 노조로 전환한 경우이다. 노사 동수 구조하에서 협의, 의결을 통해서는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대변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조 만드니 욕설이 사라졌다”

A사의 경우에는 노사협의회 무용론 외에 노조를 만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노동자이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 문제, 즉 노동자에 대한 ‘모욕’ 문제이다. 이 글 모두에서 서술한 욕설 얘기도 바로 A사 사례이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지 욕 들으려 일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폭언·폭력을 떠나 간접적인 직장 내 괴롭힘 또한 비일비재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이’ 회사를 이직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는 시화공단을 탈출할 수 있는 청년층에게나 해당된다. 지역을 떠나기 힘든 기혼의 30대 이상 노동자는 다른 사업장, 아니 반월공단을 가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대우하라.” “두발 자유화 실시하라.” 노동자 대투쟁의 포문을 열었던 1987년 여름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 나올 때, 플래카드에 썼던 문구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촉발한 한보그룹 부도 사태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태수 회장은 청문회장에서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계열사 사장)이 뭘 압니까?”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반문했다. 계열사 사장이 머슴일진데 한보그룹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사용자인 정태수는 무엇으로 봤을까? 30~40여 년 전의 먼 옛날에 벌어졌던 일이 A사 노동자에게는 2024년,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A사처럼 그랬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다들 그랬어요, 노조 만들고 나서 제일 좋은 점은 욕 안 들어서 좋다고.”

A사 노조 출범 직후에 같이 홍보물을 나눠 주던 한국와이퍼 분회장이 필자에게 언급한 말이다. 일본계 자본인 덴소코리아의 안산공장 위장 청산에 맞서 2022년~2023년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던 한국와이퍼 분회도 A사처럼 2018년, 노사협의회를 노조로 전환한 사례이다. 전근대적 작업장 노무관리라는 점도 동일하다. 한국와이퍼, A사 모두 직원 수가 300명을 넘을 정도로 지역에서는 꽤 큰 사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설이 횡행하는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일을 해 왔던 것이다.

‘가족’은 좋지만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소규모 사업장

시화공단 지역에는 5인, 10인 정도의 소규모 사업장이 거의 대부분인데 이곳의 작업장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 10여 년간 필자가 만난 시화공단 소규모 사업체 사장님들 대부분은 “여긴 다 가족이에요”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실제로 국내외 중소사업장 노사관계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특징이 가족적인 온정주의 경영 스타일이다. 직원 수가 2~4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고, 중·대형 사업장처럼 엄격한 노무관리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비록 임금은 낮지만 근태, 휴가 등 노무관리에서 유연성이 발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점이 소규모 제조사업장 노무관리의 전부일까? 정말 가족처럼 노무관리를 할까? 필자의 질문에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조 조합원의 얘기는 폐부를 찌른다.

“가족경영 스타일, 그건 맞아요. 그런데 가정 폭력을 일삼는 사장이 많다는 게 문제죠.”

지면에 쓸 수 없을 정도의 쌍욕이 횡행하는 폭력적인 작업장 현실은 A사뿐만 아니라 시화공단 내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상당수가 매일같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노조는 조합원, 나아가 전체 노동자의 임금, 근로조건 개선을 목표로 한다. 임금은 높이고 노동시간은 줄이는 것이 노조 결성·존재의 주된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활동을 하는 노조를 단순 이익집단 정도로 폄훼하고 혐오를 조장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노조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개선보다 더 중요한 존재 이유가 있다. 노조는 노동자 자존감의 최후 보루라는 점이다. 노조는 노동자 자존감을 올곧이 세워주고, 지켜주는 방패라는 것을 A사 노조가 증명하고 있다.

덧붙이면 A사, 한국와이퍼 모두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여성 노동자가 전체 직원의 절반을 넘고 있다. 철강, 기계·금속 가공 사업체가 다수인 반월, 시화공단에서는 예외적인 사업장이다. A사, 한국와이퍼 노동자를 향한 모욕에 전근대적·신분제적 위계를 반영한 한국 사회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업장에서 욕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남성 상급자이고, 그 욕을 듣는 노동자 대부분은 현장의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부디 이 생각이 필자의 기우이자 편견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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