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그대로다…채상병 특검법에도 거부권 시사

김진표 국회의장, 민주당 압박에 결국 법안 상정

"여야 합의 처리 독려해왔지만 특수한 상황 고려"

민주당 주도로 가결…국힘에선 김웅 혼자 찬성표

여론조사 채상병 특검법 찬성 67%, 반대 19%인데

윤재옥 "거부권 건의"…대통령실도 "엄중 대응할 것"

해병대예비역 "군말 없이 수용하라…사생결단 항전"

2024-05-02     김호경 에디터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상정을 두고 김진표 국회의장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운데)가 대화하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한 이른바 '채상병 특검법'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70% 안팎에 달하는 만큼 이는 총선 민의를 국회에서 그대로 실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여당은 극렬 반발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하고, 대통령실 역시 거부권 행사 의사를 즉각 내비쳐 총선 참패 뒤에도 민심을 대하는 윤석열 정권의 인식과 태도에 전혀 변화가 없음을 드러냈다. 채상병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10번째 거부권 행사 법안이 될 전망이다.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채상병 특검법(정식 명칭 '순직 해병 사망 사건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재석 의원 168명 중 168명 전원 찬성으로 의결됐다. 법안은 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당 등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김웅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처리에 항의하며 전원 표결에 불참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제안 설명에서 "순직 사건을 밝히는 것은 총선 민심이기도 하다"며 "민심을 잘 받들어 정치를 하는 것이 국회의 기본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를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채상병 특검법을 21대 국회 내에 처리하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67%였고, 반대는 19%에 불과했다(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 통과되자 방청석에 있던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도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수근 상병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 수사단 수사 과정의 진상 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지휘를 갖는 특별검사 임명과 그 직무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사령부 등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인지하는 관련자들을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법안은 지난해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돼 지난 3월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그간 여야 합의 처리를 주문하면서 본회의에 상정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김 의장의 법안 상정을 공개 촉구하고 해외 순방 출국도 저지하겠다고 고강도로 압박하자 김 의장은 결국 이를 수용했고 이날 본회의에 의사 일정 변경 동의안이 상정됐다. 여당의 반발 속에 의사 일정 변경 동의안은 가결됐고 곧바로 채상병 특검법이 상정됐다.

표결에 앞서 김진표 의장은 "의장으로서 본 안건에 대한 여야 합의 처리를 독려해왔다"며 "그런데 21대 국회가 5월 29일까지이므로 특수한 상황이다. 국회법이 안건의 신속처리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비춰볼 때 이 안건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어떠한 절차를 거치든지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오늘 의사 일정 변경 동의안건을 표결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이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계단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 처리한 야당을 규탄하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이날 여야 합의로 상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정식 명칭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 법안') 표결에만 참여한 뒤 채상병 특검법 표결은 거부하고 본회의장을 떠나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민의힘은 야당 교섭단체가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한 조항과 특검 수사 상황을 브리핑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등을 독소조항으로 규정하는 한편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채상병 특검법에 반대해 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개최한 규탄대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합의 처리함으로써 협치의 희망을 국민에게 드리고자 노력했지만, 오늘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입법 폭주하고 김진표 국회의장은 입법 폭주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 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 채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 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우리 당은 앞으로 21대 마지막까지 모든 국회 의사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규탄대회 뒤 기자들과 만나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부권 건의 시점에 관해서는 "의원들과 상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김웅 의원이 특검법에 찬성표를 행사한 데 대해 윤 원내대표는 "김 의원이 개인적으로 표결에 참여하고 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러나 당의 입장이 정해지면 우리 당 소속 의원들은 당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야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통과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발표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대통령실 역시 '엄중 대응' 입장을 표명해 거부권 행사 방침을 강하게 시사했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의사 일정까지 바꿔가며 강행 처리해 대단히 유감이다. 특히 영수회담에 이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여야 합의 처리로 협치에 대한 국민 기대가 높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일방적인 입법 폭주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협치 첫 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입법 폭주를 감행한 것은 여야가 힘을 합쳐 민생을 챙기라는 총선 민의와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의 특검법 강행 처리는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하고, 그 이후에 특검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며 "오늘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큰 만큼 대통령실은 향후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채상병 특검법'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2일 오후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해병대 예비역들은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고 채상병 특검법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많은 국민이 바란다는 것을 정부와 여당이 똑바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면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보단 겸허한 자세로 이 법을 수용하고 잘 집행되도록 하는 게 민심을 받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당선인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에 개입했는지 낱낱이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 특검법 처리를 앞장서 요구해 왔던 해병대예비역연대 정원철 회장도 윤 대통령을 향해 "국회에서 통과된 특검법을 군말 없이 수용하시기 바란다"며 "우리 국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적으로 규정하고 사생결단의 항전을 선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백상시'들은 피 흘리며 국민과 싸울 준비가 됐느냐"면서 "국민을 외면하고 보수의 가치를 망각한 자들아! 국민이 부여한 마지막 기회에 응하지 않을 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궤멸의 선봉에 설 것임을 경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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