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6년만에 또 '회사분할'…총수일가 ‘대박’ 맛들였나
㈜효성 인적 분할…2개 지주사 체제 전환
총수 지배력 강화·경영권 분쟁 차단 노려
일반 주주 의견 반영 안 돼 손해 볼 수도
‘재벌체제=코리아 디스카운트’ 거듭 증명
재벌기업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회사를 쪼개는 것이다. ‘인적 분할’이 대표적이다. 한 회사를 두 회사로 쪼개 지분율에 따라 주식을 똑같이 나누는 방식이다. 분할 이후 주식 교환 등을 통해 총수 일가는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신설회사의 주가를 띄우는 동시에 신설회사 지분을 존속회사에 넘기면 대주주는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그 결과 기존 회사의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일반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 재벌기업의 회사 쪼개기에 대해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재벌체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도 일반 주주를 희생하면서까지 대주주 이익을 챙기는 맹점 때문이다. 효성그룹의 지주사인 ㈜효성이 인적 분할을 통해 새로운 지주사를 설립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효성그룹은 효성첨단소재와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 효성토요타, 효성홀딩스USA, 비나물류법인(베트남), 광주일보 등 6개 사에 대한 출자 부문을 인적 분할해 ㈜효성신설지주(가칭)를 설립하는 계획을 지난달 23일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오는 6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회사분할 승인 절차를 마친 뒤 7월 1일 자로 존속회사인 ㈜효성과 신설법인인 효성신설지주 2개 지주사로 나누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기존 지주사는 조현준 회장이 그대로 맡고 신설 지주사는 조현상 부회장이 대표를 맡는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에 따라 ㈜효성 0.82 대 효성신설지주 0.18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존속회사인 ㈜효성은 연간 매출 규모가 약 19조 원으로 효성티앤씨와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효성티엔에스 등 기존 사업군을 담당한다. 신설 지주사의 매출 규모는 조 부회장이 독립 경영하는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 등을 포함해 7조 원대다. 다만 자산 규모는 5조 원 이하로 대기업집단 지정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효성그룹 측은 인적 분할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지주회사별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존속회사를 이끌며 기존 사업에 집중하고 조 부회장은 성장 잠재력을 갖춘 사업 위주로 책임경영에 나서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속셈은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이 지배력을 확고하게 다지며 계열 분리하려는 것이다. 재계에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 각자 다른 사업에 주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회장은 조석래 명예회장의 장남이고 조 부회장은 3남이다. 지난 2021년 조 회장이 동일인(총수)이 됐고 조 부회장은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로서는 형제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모양새다.
두 사람이 보유한 ㈜효성 지분도 비슷하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조 회장은 21.94%, 조 부회장은 21.42%를 보유하고 있다. 조 명예회장 지분은 10.14%다. 조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난 2014년 조 회장을 횡령·배임으로 고발하면서 형제간 소송전이 벌어졌다. 조 회장과 조 부회장의 지분 차이가 없어 경영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이런 측면에서 효성그룹의 지주사 분할은 계열 분리를 통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차단하는 동시에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25일 “회사분할의 목적이나 명분을 확인하기 어렵고 사업상 필요성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자료를 내놨다. 경제개혁연대는 “효성 이사회가 이번 회사분할 결정의 취지와 이유 등을 주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지주회사별 책임경영 체제 구축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신속한 의사결정 체제 구축을 회사분할의 목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시장에서는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의 계열 분리 수순이라는 해석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효성그룹이 기존 핵심 사업인 섬유와 무역, 중공업, 건설, 화학 분야에 더 집중하고자 했다면 나머지 계열사는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이번 계획은 지배권 승계를 위한 인위적 분할로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지배주주 일가의 이해관계에 더 부합하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효성신설지주가 설립 후 효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하면 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적용되는 사익편취 규제 적용에서도 벗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조 부회장는 이미 사익편취와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지난 2022년 효성 계열사 더클래스효성이 배터리 소재 기업인 우전지앤에프의 지분 60.76%를 약 327억 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더클래스효성 외에 조 부회장의 자녀와 배우자가 우전지앤에프 지분의 19.14%, 조 부회장의 장인이 0.93%를 각각 취득한 사실이 확인됐다.
자동차와 관련 제품의 판매와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더클래스효성은 에이에스씨가 지분 93.04%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에이에스씨는 조 부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더클래스효성의 우전지앤에프 인수는 사업 연관성이 있는 효성첨단소재 또는 ㈜효성의 사업 기회 제공에 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효성신설지주가 분할 후 계열 분리하면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 적용 자체를 받지 않게 되는 사각지대가 형성될 우려가 있다고 경제개혁연대는 지적했다.
효성그룹이 회사 쪼개기를 통해 대주주 지배권을 강화한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6월 회사를 지주회사 효성(존속법인)과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 등 4개의 사업 자회사로 인적 분할하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효성은 기업 가치와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가장 큰 이익을 본 당사자는 조 회장 일가였다. 이들의 옛 효성 지분은 37.77%였으나 분할 과정에서 현물출자와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지주회사 전환 후 효성에 대한 지분율이 54.72%로 높아졌다. 지난해 말에는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56.10%로 더 늘었다.
김 소장은 “최근 논란이 됐던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과 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인적 분할이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사업상의 고려나 필요 없이 회사를 쪼개거나 붙이고 이것이 단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만일 효성 이사회가 기본적인 주주 설득도 하지 못하면서 회사분할을 결정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