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에 쫓겨 변신하는 초원 갈색나비들
장소 이동이 아닌 자체 변신을 통해 적응
나비 날개 반점 변이에 대한 새로운 사실
같은 자리 머물며 눈 모양 날개 반점 수 줄여
인간도 마찬가지?…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생물 종들은 기온이 더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산의 초목들은 기온이 낮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육지의 생물들은 북쪽(고위도)으로 옮겨 간다. 바다 생물들 역시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한반도 근해에 아열대 해양생물 종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것도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 행위다.
장소 이동이 아닌 자체 변신으로 적응
그런데 이렇게 서식하기에 좀 더 쾌적한 온도를 찾아 이동하는 것과는 다른 적응 형태를 보이는 생물 종들도 있다. 그들은 기후조건이 더 나은 곳으로 서식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형태나 색깔을 바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한다.
영국 엑서터 대학 과학자들은 유럽 전역의 풀밭에서 볼 수 있는 초원 갈색나비들이 지구 온난화에 눈처럼 보이는 날개의 반점(eyespot) 수를 줄이는 쪽으로 적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 높은 온도에서 자라는 갈색나비 번데기들은 말라서 갈색으로 변하기 쉬운 풀밭에서 그들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도록 날개의 반점들 수를 줄였다.
나비 날개 반점 변이에 대한 새로운 가설
18일 <가디언>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섭씨 11도의 온도에서 자란 초원 갈색나비 암컷 번데기들은 나비로 우화했을 때 평균 6개의 날개 반점을 갖게 되지만, 섭씨 15도의 온도에서 자란 번데기들은 성체가 됐을 때 3개의 반점을 갖게 된다는 걸 발견했다.
이 발견은 나비들의 반점 변이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나비 연구자들이 지녀 온 견해들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보통 한여름 유럽 전역의 풀밭에서 볼 수 있는 갈색나비는 앞날개에 큰 반점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들을 노리는 약탈자들을 놀라게 하거나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점들은 또 약탈자들이 공격해 오더라도 날개 끝에 형성돼 있는 그 반점들에 주목해 달려들도록 유인함으로써 날개 일부만 손상당하고 취약한 나비 본체는 무사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도 한다.
초원 갈색나비들은 뒷날개에도 더 작은 반점들을 갖고 있는데, 이는 나비들이 풀밭에서 쉬고 있을 때 잘 보이지 않게 만들어 주는 위장용일 가능성이 있다.
엑서터 대학 생태보존센터 교수이자 이 연구의 공동저자인 리처드 프렌치-콘스탄트 교수는 “우리는 나비 암컷들이 우화하기 전 번데기 단계에서 더 높은 온도를 체험할 경우 이 뒷날개의 반점들 수가 더 적어진다는 걸 알아냈다”며 “이는 나비들이 환경변화에 맞춰 자신들을 더 잘 위장하는 쪽으로 적응한다는 걸 시사한다. 예컨대 더 적은 반점들을 가진 나비들은 더운 날씨에 말라서 갈색으로 변하기 쉬운 풀밭에서 발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렌치-콘스탄트 교수는 “우리는 수컷 나비들에서는 그런 뚜렷한 변화를 관찰하지 못했는데, 이는 아마도 반점들이 성 선택(sexual selection)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 머물면서 날개 반점 수 줄여 적응
초원 갈색나비 반점의 변이는 단일 개체군 안에서 다양한 유전적 변이체들이 살아가는 유전적 다형성(genetic polymorphism)의 예로 활용돼 왔다. 이는 1948년에 베스트 셀러 <뉴 내추럴리스트> 안내서를 쓴 생물학자 E.B. 포드의 고전적 나비연구 이후 수십년 간 그러했다.
그러나 학회지 <생태학과 진화>에 게재된 이번 논문은 이런 반점 변이가 기온변화에 대한 나비들의 대응능력의 소산임을 보여 준다.
프렌치-콘스탄트는 콘월 지방의 동일한 지역에서 초원 갈색나비 성체 수컷과 암컷들을 매일 조사했을 뿐만 아니라, 이튼과 버킹엄에서 채집한 박제 나비들의 역사적인 컬렉션도 연구했다. 프렌치-콘스탄트의 부친은 콘월의 유전학자 E.B. 포드를 위해 나비들을 채집했다.
인간도 마찬가지?
연구자들은 영국의 기후가 더 더워지면 초원 갈색나비들의 반점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프렌치-콘스탄트는 “이는 기후변화가 야기한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우리는 생물종들이 (기온이 올라가면) 모습을 바꾸기보다는 (기온이 더 낮은)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온도 상승)에 대한 생물 종들의 적응은 온도가 더 낮은 곳(높은 곳 또는 고위도)으로 이동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기도 한다. 즉 같은 자리에 머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쪽으로도 진행된다는 얘기다.
인간의 피부색 변이도 기후변동에 적응하기 위한 자체 변신의 결과가 아닐까.
기후변동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 또한 더 나은 기후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자신의 몸을 변화시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남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