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백화사전] ㉘일본정부와 만화가들 OO 이유
아베 총리까지 나서 원전사고·방사능 '비판만화' 저격
'맛의 달인' 등 만화에…정부 '코믹 계몽 만화'로 맞불
"불편한 진실 싫어하고 거짓말 요구하는 일본 사회"
원자력발전소에 '작업원'으로 취업, 취재한 만화가도
후쿠시마 원전 핵물질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온갖 핵물질이 포함돼 있다. 어떤 물질은 생물학적 유전자 손상까지 가져온다. 백가지 화를 불러올 백화(百禍) 물질이 아닐 수 없다. 오염수 문제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약’일 수 없다. 오염수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알아야 대처할 힘이 나온다. [편집자주]
2011년 후쿠오카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몇년 뒤 일본 정부와 만화가들은 한동안 ‘갈등’을 빚었다.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만화를 저격했으니 ‘갈등’을 넘어 ‘전쟁’이라 할 만했다.
의식과 양심 있는 일부 만화가들은 작품을 통해 원전 사고와 방사능 오염 등의 문제를 제기했고, 정부는 이를 반박하는 홍보 만화로 맞섰다.
원로 만화가 가리야 데쓰는 2014년 <맛의 달인>에서,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주인공이 피폭으로 피로감을 느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코피를 흘리는 장면을 묘사했다.
작품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작가는 실존 인물인 후쿠시마 지역의 한 촌장의 입을 통해 “나도 코피가 난다. 코피는 피폭 때문이다” “사실 후쿠시마에 코피를 쏟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후쿠시마에는 같은 증상의 사람들이 많다. 말하지 않을 뿐이다” “더 이상 후쿠시마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 속 메시지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일본 정부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만화에 실린 대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물질에 직접 노출돼 건강에 문제가 생긴 확증 사례가 없다”며 “이런 근거 없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환경성은 “방사능 피폭과 코피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근거 없는 풍문으로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만화가를 비난했다. 후쿠시마현도 “잘못된 정보로 소문을 조장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언론은 이를 중계했고 시민들은 인터넷에서 격론을 벌였다. 학자와 전문가들도 논쟁에 가담했다.
가리야 데쓰는 정부의 공격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만화 내용은 후쿠시마 취재를 다녀온 뒤 코피가 멈추지 않았던 나와 스태프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며 “2년 동안 후쿠시마를 취재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 것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어이없어 했다. 그는 “지금 일본 사회는 불편한 진실을 싫어한다. 듣기 좋은 거짓말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며 일본인들의 ‘원전 불감증’을 한탄했다.
다쓰타 가즈토는 2013년 만화 주간지 ‘모닝’에 <1F>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1F>는 작가의 취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작가는 원전 사고 이듬해인 2012년 약 6개월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작업원’으로 일하며 현장을 취재했다.
<1F>는 ‘모닝’이 주관하는 ‘만화 오픈’ 대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제목의 ‘1F’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를 뜻한다.
원전 사고를 예언한 SF 만화도 있었다. 이노우에 토모노리가 2008년 ‘레이블’에 연재하기 시작한 <코펠리언>이다. 배경은 2036년의 미래 도쿄다. 작품 속에서는 대지진으로 민영 신토전력 원자력발전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노심 냉각장치가 파손되면서 급기야 도쿄 주민의 90%(1100만 명)가 사망한다. 작가는 <코펠리언> 연재중이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의 참상을 접했다. 이 작품은 2016년에 끝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년간 더 연재한 셈이다. <코펠리언>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TV로 방영됐다.
일본 정부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했다. 일본 부흥청은 2014년 홈페이지에 여러 편의 홍보 만화를 올렸다. ‘후쿠시마를 먹자’ ‘커뮤니티 카 셰어링을 확대하자’ ‘방아쇠는 바로 옆에 있습니다’ 등이었다.
작가들의 ‘우울한 만화’와는 달리 정부 제작 만화들은 ‘가벼운 코믹’이었다. 정부는 그 코믹 만화에 ‘희망과 재건’의 메시지를 담았다.
‘후쿠시마를 먹자’에는 세 여고생이 등장한다. 이들은 후쿠시마산 농산물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자 ‘먹거리 통신 편집부’라는 잡지사에 들어간다. 여고생들은 쿠시마현 농촌을 취재하며 그곳 농산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은 ‘오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의 취재기가 잡지에 실리고 독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키는 것으로 만화는 끝난다.
‘방아쇠는 바로 옆에 있습니다’는 ‘부흥 사업’에 무관심했던 주인공이 마음을 바꿔 뛰어드는 이야기, ‘커뮤니티 카 셰어링을 확대하자’는 지역 커뮤니티의 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 만화다.
한국에도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 등을 비판하는 그림 작가들이 다수 있다. ‘계몽 만화’도 일부 있다. 그러나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극화 형식의 본격 장편 만화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