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는 국힘…책임자 처벌 쏙 뺀 이태원 특별법 발의

민주당 진상규명 특별법 처리 임시국회 앞두고

"사고원인 이미 규명됐다" 피해보상에만 초점

'재발방지' 유족 뜻과 달라 특별법 반대 명분 쌓기

2023-12-12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4일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이태원참사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2023.12.4.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12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에 반대해 온 국민의힘이 임시국회를 앞두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발의한 법안은 진상규명이 아닌 피해자 보상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유가족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멀다. 본회의를 앞두고 야당에 대한 반대 명분을 쌓고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1년 넘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에 목소리를 높여온 유가족에 대한 모욕과 다름 없다.

국민의힘 이만희 사무총장(경북 영천시청도군)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피해자 지원 심의위원회를 두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사무총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구자근·권명호·김희곤·박정하·양금희·유상범·유의동·이용호·이주환·이채익·조명희·조해진 의원 등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 사무총장은 "이태원 참사는 다시 발생해선 안 될 비극이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물론 고통받는 유가족과 부상자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야당은 진상규명에만 초점을 맞춘 대규모 특별조사위원회 발족 등을 중심으로 한 특별법 통과를 주장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선 이미 검·경 수사와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사고 원인 등이 규명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세월호 사례에서 경험했듯이 참사를 이용한 불필요한 정쟁이 유발되고 많은 소모적 논쟁이 있었지만,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건 없었다"며 "이제는 참사를 정쟁화하고자 하는 기도는 멈춰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적 비극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상처 회복과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들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별법 통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보고서 의결을 거부하며 퇴장하고 있다. 2023.1.17 연합뉴스

그러나 이 의원의 발언과는 반대로 경찰특별수사본부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윗선 수사는 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았고, 국회 국정조사는 국민의힘의 반발로 반쪽짜리로 끝났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졌지만, 아직까지 처벌받은 책임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태원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가 지난 1년여 동안 발굴한 진상규명 과제만 30개이고 세부의혹으로 따지면 173개에 이른다. 그럼에도 원인 규명이 됐다는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

특히 이 사무총장이 아직도 진상규명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면서 '불필요한 정쟁 유발' '소모적 논쟁'이라고 한 것은, 이 법안의 목적이 진상규명을 하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시도 자체를 막기 위한 뜻임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법안명에서부터 그러한 의도는 드러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한 이 사무총장이 발의한 법안명은 <10·29이태원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으로 이름에서부터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을 뺐다. 본회의 상정을 앞둔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과 비교하면 그 의도가 명확하다.

내용 역시 위로지원금이나 보상금, 생활지원금 등 금전적 지원에 관한 것들로, 국무총리 소속 피해지원 심의위원회를 두자는 내용도 이미 야당이 발의한 특별법에 포함돼 있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재단 설립 등 필요한 내용들도 모두 제외해서 있으나마나 한 법이다. 오히려 외국인 피해자에 대해 국내에서만 치료받도록 해 차별까지 강요하고 있다.

임시국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난데없이 유명무실하고 성의없는 법안을 들고나온 다분히 의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야당의 본회의 통과 예고에 반대를 위한 명분을 만들고, 총선 전 윤 대통령 등 정부 책임론을 최대한 회피하려는 의도가 그것이다. 한 야당 관계자는 "유가족이 '또 돈받으려고 한다'는 식으로 보수층에게 오해하게끔 여론 플레이를 할 목적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6일 국회 앞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농성장을 찾아 유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12.6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는 오는 20일 본회의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족들은 최근 10.29㎞ 거리 행진 등을 벌이며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지만, 정부와 여당 반대로 정기국회 내에 특별법이 처리되지도 못했다. 야 4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특별법안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지만, 예산안과 쌍특검, 3대 국정조사(해병대원, 서울~양평고속도로, 오송지하차도) 등이 맞물려 있어 여당의 반대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안건 상정까지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와 관련, 지난 8일 21대 마지막 정기국회 종료를 즈음해서 특별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특별법의 본회의 안건 상정이 언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속한 법안 통과를 확신하기는 여전히 힘들다"며 "국회는 더 이상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본회의를 열어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당리당략에 좌지우지되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며 "참사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는 일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국가적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5만명이 국민동의청원을 하고 10만인 입법청원에 서명을 했고, 심지어 21대 국회 최다 의원 183명이 공동으로 법안을 발의했는데 법안 상정에 반대하고 시간을 끌며 주저한다는 것은 시민들의 뜻을 외면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최대한 빨리 본회의에 특별법이 상정돼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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