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한동훈, 참을 수 없는 법무장관의 가벼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안중에도 없는 행보
유세 방불케 하는 요란한 지역 순회와 민심 구애
'여의도 사투리'보다 훨씬 난폭한 '서초동 사투리'
'정책 현장'서도 야당 공격…저렴한 피장파장 화법
조선제일검? 인사 참사에 야당만 수사 '녹슨 칼'
여권 구원투수 될까, 정권심판론 불쏘시개 될까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언행이 점입가경이다.
지지자와 취재진을 대거 몰고 다니며 선거 유세를 방불케 하는 지방 순회를 요란하게 벌이는가 하면 야당에 대한 적개심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말 폭탄을 가는 곳마다 투척하고 있다. 총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한 한 장관에 대해 친윤 보수언론마저 "정치 행보는 장관직 내려놓고 하라"고 강도 높게 비판할 정도다.
'여의도 사투리'보다 훨씬 저급하고 난폭한 한 장관의 '서초동 사투리'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장관 취임 이후 야당과의 드잡이와 표적 수사에만 몰두하고, 반면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아예 포기한 채 무수한 인사 검증 실패만 노정했을 뿐인 한 장관이 총선에서 여권에 구원투수가 될지, 아니면 거꾸로 정권심판론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될지 판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헌법과 법률이 엄명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대한민국 헌법 제7조
①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①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검사(군검사를 포함한다) 또는 경찰공무원(검찰수사관 및 군사법경찰관리를 포함한다)은 이 법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신속‧공정하게 단속‧수사를 하여야 한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
①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
②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처럼 우리 헌법과 법률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엄중하게 규정하고 있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국가의 공권력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부당한 개입, 즉 관권 개입을 차단하지 않으면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로 치러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무직 공무원의 대명사격인 국무위원은 그 직무의 권한과 기능을 이용해 선거에서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정당간의 경쟁 관계를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이 각별히 요구된다. 이는 법리를 떠나 국민적 상식에 속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그들의 직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비례 관계에 있다. 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신속‧공정하게 단속‧수사하도록 공직선거법 제9조 2항에 따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 세금으로 사전선거운동하나
그런데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대놓고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7일엔 대구, 21일엔 대전, 24일엔 울산을 방문했다. 일주일 사이 '정책 현장 방문'이라는 명목으로 영남·충청권 핵심 지역을 숨 가쁘게 찾은 것이다. 온라인에선 그가 방문한 곳을 지도에 표기한 '동훈여지도'(한동훈과 대동여지도의 합성어)가 등장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화제가 된 지 오래다.
한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이달 24일까지 19개월 동안 모두 12번의 '정책 현장 방문' 일정을 소화했는데 지난달까지만 해도 두 달에 한 번 꼴로 다녔고 방문 장소도 주로 교도소, 구치소, 보호관찰소 등 교정시설 아니면 지방검찰청이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총선 등판론'이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대구스마일센터, 달성 산업단지, 대전 한국어능력평가센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으로 보폭을 크게 확장했다. 현장 발언도 정치인 뺨칠 정도의 '민심 구애성' 화술을 구사하는데 가령 대구와 울산에서는 이렇게 공들여 준비한 멘트를 풀어놨다.
"저는 평소에 대구 시민들을 대단히 깊이 존경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우리 대구 시민들이 처참한 6·25 전쟁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적에게 이 도시를 내주지 않으셨구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서 이긴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전쟁의 폐허 이후에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화를 진정으로 처음 시작하셨고 다른 나라와의 산업화 경쟁에서 이긴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구의 굉장한 여름 더위를 늘 이기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존경합니다. 제가 오늘 두 번째로 왔는데요, 여기 오게 돼서 참 좋습니다."
"1973년 11월 비 오는 새벽에 정주영 회장이 이곳 울산조선소 공사를 독려하기 위해서 직접 지프차를 몰고 공사 장소로 가다가 바로 이 울산 바다에 추락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신 일화가, 제가 오늘 울산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열심히 읽은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에 나오더라구요. 정확하게 50년 전이고, 어린 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합니다. 그때 이 울산의 허허벌판 백사장에 조선소를 밀어붙인 정주영 같은 선각자들의 무모했던 용기, 그 용기를 알아보고 믿고 지원했던 정부의 결단, 무엇보다 이곳 울산조선소에서 젊음을 바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에선 '장관님 화법이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는 얘기가 있다"는 기자 질문이 있자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만 쓰는 고유의 어떤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요"라며 "저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언어를 쓰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을 두고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를 비롯해 다수 언론사가 '사실상 총선 출사표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게다가 한 장관이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이 몰려 환호성을 지르고 꽃다발을 건네며 "한동훈 파이팅" "장관님 사랑해요" "나중에 대선 때까지 쭉" "한동훈 대통령" 등을 외치는 광경은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유세장을 연상케 한다. 유튜버들의 생중계는 기본이다. 그러니 동아일보조차 <1주일 새 대구 대전 울산…'정치 행보'는 장관직 내려놓고 하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내고 "한 장관은 '국정감사로 미뤘던 통상 업무'라고 하지만 방문 횟수, 방문지, 발언 수위를 볼 때 총선 출마는 물론 전국 단위 선거 참여를 염두에 둔 것처럼 읽힌다. (중략) 대학, 조선소, 딸기 농가 등 민생 현장이 추가됐다. 이런 게 정치인의 일정 아닌가"라고 일갈했다.
한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아바타' '황태자'라고까지 불린다. '윤석열당'인 국민의힘에서는 한 장관의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함은 물론 비대위원장, 공동선대위원장 시나리오를 놓고 무성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한 장관 자신도 기자들이 총선 역할론에 관한 질문을 하면 "제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애매하게 눙칠 뿐 "출마하지 않겠다"는 식의 명확한 입장 표명은 결코 하지 않는다.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10분 넘게, 심지어 30분씩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 인물이 1주일 새 3차례나 지방 거점 도시를 찾고 방문지마다 지지자와 기자들에 잔뜩 둘러싸인 채 온갖 매체의 홍수 같은 보도를 유도하고 있으니 사실상 장관직을 이용해 국민 세금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대구에서 기차 시간 연장하면서 사진 찍는데 장관, 국무위원이 할 일이 아니다"라며 "사전선거운동 하는 것이다. 공무원법 위반"이라고 단언했다.
갈수록 거칠어지는 '서초동 사투리'
한 장관은 '여의도 문법'을 멸시하며 "5000만 명이 쓰는 언어를 쓰겠다"고 짐짓 상식과 예의를 갖춘 어법을 쓰는 양 둘러댔지만 그가 내뱉었던 말들은 '여의도 사투리' 중에서도 최악의 수준이었다. 국회 출석도 아닌 소위 '정책 현장 방문' 일정 중에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 등 야당을 겨눠 비방과 역공을 일삼는 건 평소 국무위원답지 않은 그의 거칠고 경박한 입을 감안하더라도 기이한 모습이었다. 총선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한 장관이 유세 다니듯 시끌벅적하게 지방을 누비는 의도가 더욱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얼마 전에 제가 TV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런 탄핵 남발에 관해서 언론의 질문을 받는 것을 봤습니다. '국토 균형 발전'이라고 답하시던데요. 저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이 질문을 그런 식으로 퉁치지 말고 제대로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어떤 고위 공직자가 공직생활 내내 세금 빼돌려서 일제 샴푸 사고, 가족이 초밥 먹고, 쇠고기 먹었습니다. 그거 탄핵 사유가 됩니까?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정도는 (탄핵 사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도 그 정도는 인용할 것 같아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같은 일부 운동권 정치인들이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NHK(새천년NHK룸가라오케) 다니고 대우 같은 재벌 뒷돈 받을 때, 저는 어떤 정권에서나 재벌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수사를 엄정하게 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공직생활 내내' '세금 빼돌려서' '일제 샴푸 사고 가족이 초밥 먹고 쇠고기 먹었다'는 전혀 입증되지 않은 일방적 의혹 또는 혐의를 공개석상에서 이토록 단정적으로 발언하는 법무부 장관의 화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송영길 전 대표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인신공격, 그와 대비시켜 한 장관 본인을 향해 늘어놓은 자화자찬도 '여의도 사투리'를 훨씬 뛰어넘는 폭력성과 오만함에서 '서초동 사투리'라고 할 만하다. 일부 검사들의 입에 밴 이런 '싸가지 없는' 어법은 상대편에게 모멸감을 안겨줌으로써 감정을 즉발시켜 악다구니판을 만들기 십상이다.
한 장관이 성찰 능력이 없어서, 또는 의도적으로 논점을 일탈하며 애용하는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 '피장파장의 오류'는 논리학에서도 워낙 저급한 비형식적 오류라 언제든 똑같은 방식으로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한 장관이 언변이 뛰어난 것처럼 어용 언론들에 의해 잔뜩 포장돼 있지만 그런 수다스럽고 잔망스러운 말꼬리 잡기식 화법은 누구든 낯만 두껍다면 금세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고위 검사가 공직생활 내내 특활비와 업무추진비 등 세금 빼돌려서 폭탄주 먹고 쇠고기 먹었습니다. 그거 탄핵 사유가 됩니까? 헌법재판소도 그 정도는 인용할 것 같아요."
"OOO 검찰총장과 검사장 같은 일부 정치 검사들이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강남 룸살롱 다니고 삼성 같은 재벌 떡값 받고 시세보다 싸게 아파트 계약할 때, 그리고 재벌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봐주기 수사나 할 때, 저(이재명 대표나 송영길 전 대표)는 어떤 정권에서나 중소기업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엄정하게 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한 장관의 노골적인 민주당 공격은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언행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 장관이 머지않아 국민의힘에 입당해 총선에 출마하거나 선대위원장 등을 맡게 되면 최근 지방 순회 중에 쏟아냈던 말들이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로 소급해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제일검? 어떤 실력도 보여준 바 없는 무딘 칼
한 장관이 온갖 뉴스거리를 만들어내며 울산을 다녀온 다음날, 김명수 신임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취임식을 가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도 평일에 태평하게 골프를 치고 주식 거래를 일삼은 데다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까지 있었던 인물을 윤석열 대통령이 기어이 임명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인사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취임 1년 6개월 만에 벌써 20명째인데 한 장관 산하의 인사정보관리단이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길래 인사 참사가 거의 매번 벌어지는지 그간 무수한 비판이 제기돼 왔다. 윤석열 정부에서 자녀의 학폭 문제가 드러난 사례만 해도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김승희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에 이어 네 번째였다.
수많은 인사 검증 실패에도 한 장관은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을 당연시하곤 했다. 이에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인사 검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 검증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보위 조직인가?"라며 "한동훈 장관은 정치적 행보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하는 책무부터 제대로 하라"고 질타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빈껍데기 인사 검증 시스템의 오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서 "정말 황당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재명 대표와 가족에 대해 장기간 먼지떨이 수사를 하고 그 주변까지 수 백회 압수수색을 벌이며 천하의 중범죄자로 여론몰이를 해온 행태는 한 장관이 애초에 '조선제일검'으로 회자됐던 명성의 본질을 의심케 한다. 극단적인 편파수사와 언론플레이를 통한 피의사실 흘리기는 특수통을 비롯한 정치검찰의 전형적 특징이다.
심지어 그는 구속영장 청구 때는 "이재명 대표님 말씀처럼 다 조작이고 증거가 하나도 없다면 대한민국 판사 누구라도 100%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빈정거리더니 막상 영장이 기각되자 "구속영장 결정은 범죄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이고 이번 이 대표에 대한 결정도 죄가 없다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곧바로 태세 전환을 시도했다. 언행의 가볍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민주당 비명계에 검사 출신인 조응천 의원조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여권이나 용산이 잘못한 것에 대해 한 번이라도 수사를 했느냐. 한 장관은 항상 야당만 조지고 민주당 의원들과 쌈박질만 했다"며 "자기 진영 강성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중도층이 보기에 한 장관은 '법 기술자'로서, 그것만 굉장히 열심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장관의 행보가) 무슨 감동이 있느냐"면서 "세 치 혀로 말장난하고 그때그때 팍팍팍 쏴 가지고 밉상들 주저앉히고 두드려 팬 것 외에 뭐가 있느냐"고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