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점수 후했던 IMF도 "가계부채 우려 수준"

10월중 5대 은행 가계대출 2.5조↑…2년 만에 최대

주담대 2.3조 늘어 520조…줄었던 신용대출도 반등

은행들 가계대출 수요억제 위해 가산금리↑ 우대금리↓

"내집 마련 막차" 무리하게 대출받은 '영끌족' 난감

"국가채무 적정, 재정 건전화 훌륭" 찬사보낸 IMF도

"가계부채 가처분 소득의 160%, 위험성 관리해야"

2023-10-29     유상규 에디터

10월 들어 가계대출이 월간으로는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한국 경제 전망을 놓고 지나친 낙관론을 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국제통화기금(IMF)까지 이같은 가계부채 급등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50년 만기 대출과 특례보금자리론을 폐지 또는 축소했는데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힐 기미가 없자, 결국 은행들의 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내집 마련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대출을 받아 주택을 매입한 이른바 '영끌족'은 더 이상 오갈 데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6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4조 8018억 원으로 9월 말(682조 3294억 원)보다 2조 4723억원 늘었다. 월간으로는 2021년 10월(+3조 4380억 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517조 8588억 원에서 520조 1093억 원으로 2조 2504억 원으로 늘어났고, 지난달 1조 762억원 줄었던 신용대출도 이달에는 5307억원 반등했다. 월말까지 큰 이변이 없는 한 5대 은행의 신용대출도 2021년 11월(+3059억원)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오름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주택담보대출 추이

한국의 가계대출이 이처럼 폭등세를 보이자 IMF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가처분 소득 대비 평균 160%에 달하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정 기준이나 비율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그룹 가운데 아주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IMF는 한국이 가계부채 증가에 따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가계 자산의 질을 보장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연장할 때 수입과 비용의 시나리오별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를 권고했다.

IMF의 이같은 평가와 권고는 한국 경제의 현 국가채무 수준이 전반적으로 적정하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의 재정 준칙 등 재정 건전화 정책에 대해 찬사를 보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유지해 국내외 다른 평가기관이나 전문가들과 다른 전망을 하고 있다. 이런 IMF의 시각에도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는 말이다. IMF는 다만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2%로 낮춰 잡았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 추이

국내 시중은행들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쉽게 진정되지 않자 앞다퉈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은행 자금 조달 경쟁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뚜렷하게 꺾이지 않을 경우, 금융 당국이 가산금리를 적용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에 더해 'DSR 예외 축소' 등의 추가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1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3%p 올렸고, 우리은행도 13일부터 같은 상품군의 금리를 최대 0.3%p 높였다. NH농협은행은 17일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우대금리를 최대 0.3%p 축소해 사실상 대출금리를 인상했다.

신한은행은 최근 내부 회의를 거쳐 다음 달 1일부터 가계대출 일부 상품의 금리를 소폭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신규코픽스·신잔액코픽스(6개월 주기) 기준 변동금리의 가산금리를 0.05%p 올리고,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 가운데 지표 금리가 1년물 이하인 상품의 가산금리도 0.05%p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이 같은 시중은행들의 잇따른 가계대출 금리 인상 폭은 지표금리인 은행채나 코픽스 상승 폭을 웃돌고 있다.

 

시중은행 대출 금리, 채권 금리 추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27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360∼6.760% 수준이다. 지난 9월 22일(연 3.900∼6.490%)과 비교하면 하단이 한 달도 안돼 0.460%p 뛰면서 4%대로 올라섰다. 이는 같은 기간 혼합형 금리의 주요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0.268%p·4.471→4.739%)보다 0.192%p나 높다.

가계대출 수요를 줄이고 대출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권뿐 아니라 금융 당국도 '스트레스 금리 적용 DSR' 연내 도입 등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5일 열린 금융감독원과 10개 은행 자금 담당 부행장 간 '은행자금 운용·조달 현황 점검 회의'에서 당국 관계자는 "스트레스 DSR 도입을 준비 중으로, 은행별로 사전에 관련 내규와 전산 시스템 등을 갖춰달라"고 요청했다.

DSR은 대출받는 사람의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부담이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해당 대출자가 한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DSR 산정 과정에서 향후 금리 인상 위험 등을 반영해 실제 대출금리에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까지 더한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하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 대출 한도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금융권에서는 만약 가계대출이 계속 급증하면, 결국 전세자금대출 등 현재 DSR 산정 대상에서 빠져 있는 '적용 예외' 대출들이 추가로 DSR 적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지역경제전망 기자 브리핑에서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아·태국장(왼쪽 두 번째), 토마스 헬블링 아·태국 부국장(세번째), 샤나카 페이리스 지역연구과장(오른쪽) 등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10.18.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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