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발표 불신 미국, 사망자수 줄면 죄책감도 줄어들까?

국권 탈취는 합법, 그에 대한 저항은 불법?

커비 조정관 “사망자, 발표의 절반 정도”

가자지구 보건부, 사망자 발표 구체적 근거 공개

유엔과 세계보건기구도 보건부 발표 인정

2023-10-29     한승동 에디터
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사람들이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하마스 보건부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숫자가 5000명이 넘는다고 이날 밝혔다. 2023.10.24. 신화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8일 “하마스를 괴멸시키기 위한 제2단계 전쟁”에 돌입했다고 밝힌 가운데,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이달 7일부터 28일까지 3천 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포함해서 7703명의 가자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의 회담 중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상의하고 있다. 이날 회담 후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가자지구 내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3.10.19. EPA 연합뉴스

네타냐후, ‘제2의 독립전쟁’ 선언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거국일치 전시내각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중도우파 야당 대표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길고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준비는 돼 있다. 이것은 우리에겐 두 번째의 독립전쟁이다”라며, “우리는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싸울 것이다. 적을 지상에서도 지하에서도 괴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방적인 이스라엘 건국으로 독립을 박탈당한 채 난민신세가 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을 위한 저항을 대상으로 자국 제2의 독립전쟁을 벌이겠다니 역설적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사흘간 연속으로 가자지구 경계를 넘어 들어가 공격을 계속했다. <AFP 통신>은 28일 대피권고에 따라 가자 남부지역으로 피난갔다가 북부로 돌아 온 가자 주민들이 이스라엘을 공격으로 폐허로 변한 집 주변을 보고 “튀르키예 지진보다 더 심각한 파괴”라며 탄식하는 기사를 전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하고 있다. 커비 조정관은 이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일시 정전하자는 요구에 대해 현시점에서의 정전은 하마스만 이롭게 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2023.10.25. EPA 연합뉴스

미국 “가자 보건부 발표 사망자 수 못 믿겠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공격을 공언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지지해 온 미국정부 고위관리들이 가자지구 보건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며 이스라엘군의 가자 주민 살상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들을 잇따라 내 놓아 비판을 받고 있다. 워싱턴과 예루살렘 주재 특파원들의 현지 취재를 종합한 <아사히신문> 29일 보도를 토대로 이를 정리한다.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담당 조정관은 지난 2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 보건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와 관련해 “우리는 모두 가자지구 보건부가 하마스의 은신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건부라 불리는 것을 포함해서 하마스에서 나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행정기능도 담당하고 있고, 보건부도 그 산하에 있다.

커비 조정관은 일시 휴전도 하마스 제거에 방해가 된다며 거부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총선거에서 압도적 다수표를 받아 집권한 정당조직이기도 한 하마스를, 미국정부 고위관리가 마치 불법 테러조직인양 불온시하면서 집권당 산하 기관인 보건부를 그 방패막이 위장기관으로 여기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극우정권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집권을 막기 위해 2006년 선거결과와 하마스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온건파 파타당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쪽 주도 아래 정부를 구성하게 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와 파타당이 지배하는 요르단강 서안으로 사실상 분할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군 F-15 전투기가 가자지구 국경을 따라 비행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지상군이 전투기와 무인기(UAV)를 동반해 가자지구 중심부에서 추가로 표적 공습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2023.10.27. AFP 연합뉴스

가자 병원 폭파. “이스라엘 소행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 17일에 일어난 가자 병원 폭파사건이다. 당시 가자 보건부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500명이 사망했다고 사건 직후 발표했고, 이에 따라 중동지역에서 항의시위가 확산됐다. 그 바람에 그날 이스라엘을 방문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예정돼 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 마무드 아바스 등과의 회담을 위해 요르단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나중에 병원 폭파로 인한 사망자를 471명으로 수정했으나, 미국 정보기관은 그 수를 100~3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미국 미디어들은 보도했다.

커비 조정관, “사망자, 발표된 수의 절반 정도”

커비 조정관은 “보건부가 사건발생 한 시간 안에 ‘이스라엘의 공습’이라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면서, “실제로는 적어도 200명이었다”는 말도 했다.

커비 조정관은 가자 병원 폭파가 이스라엘군 소행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사건 뒤 이스라엘 쪽은 하마스나 이슬람 무장단체의 오발이나 실수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 주장하며 전화 감청 자료 등을 공개하기도 했으나, 누구의 소행인지는 아직 규명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커비 조정관은 그것이 이스라엘군 공습 때문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데다, 보건부가 수정 발표한 사망자 수도 못 믿겠다며, 그 절반인 200명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도 밝히지 않았다.

 

2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주위에 모여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교전이 벌어진 뒤 양측에서 7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2023.10.27. AFP 연합뉴스

죄책감이 사망자수에 비례하나?

사망자가 적으면 죄책감도 줄어들까? 200명이든 500명이든 엄청난 인명피해다. 26일에만 하마스 근거지라 주장하는 250곳을 겨냥해 포탄을 쏟아붓고 탱크까지 동원해 최근에만 사흘 연속 포격을 가하는 거의 일방적인 이스라엘군의 무력공격 속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보도를 보면 매일 300명 이상 사망자가 늘고 있다.

전면적인 지상공격 전에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주민들에게 권고했지만 가자지구는 전체 면적이 일개 군 정도밖에 되지 않는 365평방킬로미터에 230만 명이 살고 있는 협소한 땅이다. 대피할 곳도 없는 상황에서 중무장한 지상군과 폭격기들이 인구 밀집지역을 공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기자가 수천명의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습 등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추궁하자, 커비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몇 명이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해 팔레스타인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의 생각은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미국정부 전체의 공통인식임을 알 수 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안보리는 이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과 관련해 확전을 막고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채택이 잇따라 무산됐다. 2023.10.26. 로이터 연합뉴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도 보건부 발표 인정

사상자나 피해 호수, 피난민 수, 생활상황 등을 매일 집계하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도 사망자 수는 가자 보건부가 발표한 숫자를 인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마찬가지인데, 긴급대응 책임자 마이크 라이언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WHO는 가자지구 보건부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분 단위로 보면 완벽하게 정의되진 않을지 모르겠으나 분쟁 사상자 수준을 대체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전투에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는 가자 보건부와 유엔의 독립조사가 대체로 서로 근접한다. 2014년의 분쟁 때는 보건부가 2310명이라 집계했고, 유엔은 2251명으로 발표했다. 2021년 분쟁 때는 보건부가 260명, 유엔은 256명으로 발표했다.

보건부, 사망자 발표 구체적 근거 공개

가자 보건부는 26일 SNS에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범죄적인 점령자(이스라엘)를 위해 (보건부가 발표한) 사망자와 부상자 수의 정당성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의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212쪽에 이르는 ‘상세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이스라앨군의 공습 등으로 희생당한 6467명의 이름, ID번호(개인식별 번호), 연령, 성별이 기재돼 있어서 (빌표의 정확성을 입증하는) “완벽한 기록”이라고 했다. 하루 사망자 수도 있는데, 그 중에는 ‘한 살 이하’의 아기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이들 이름도 많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이름들도 들어 있다.

기재된 정보는 사신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기록한 ID번호와 개인정보를 토대로 작성했다고 보건부는 밝혔다. 26일 시점의 사망자 수 중에서 신원불명의 281명은 보고서에 넣지 않았다. 파편 더미에 매몰되고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과 병원에 실려 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매장한 사람들의 수도 기재되지 않았다며 “실제 사망자 수는 수백 명이나 더 많다”고 보건부는 주장했다.

27일에는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이 모두 두절돼 사망자 집계와 발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노린 이스라엘군의 소행인가.

 

이스라엘군 공습에 25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의 보건부는 이날 팔레스타인 측 누적 사망자가 6546명이라고 밝혔다. 2023.10.26. 신화 연합뉴스

국권 탈취는 합법, 거기에 대한 저항은 불법

미국정부는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고 있다.

2014년 1월 중국 하얼빈역에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했을 때, 당시 아베 신조 정권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며 심히 불쾌하다는 논평을 했다. 이후에도 일본 역대 자민당 정권은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의 독립지사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적반하장식 대응으로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1907년 이른바 헤이그 밀사 사건 때도 미국 등 구미 열강들은 일제의 국권탈취는 국제법적으로 합법이며 거기에 대한 저항이 불법 테러라며 모두 침략자 일본편을 들었다.

민간인들을 겨냥해 집단살육 만행을 저지른 하마스의 전쟁범죄 행위를 조선의 독립운동과 단순비교할 수는 없으나,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저항을 테러리즘이나 테러리스트로 매도함으로써 자신들의 가해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닮았다.

하마스의 저항을 낳은 이스라엘 자체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교정함으로써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도모하려 하지 않고 저항을 테러로 몰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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