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다시 이상민 장관의 '죄'를 묻는다

재난 책임기관 조정할 '중대본' 즉각설치 의무 방기

다음날 새벽 돼서야 가동…4시간15분 공백상태

중앙수습본부장 책임도 모르쇠, 두 달 지나 인정

초기 컨트롤타워 상황실 최종 책임자 역할도 해태

유족들이 오늘도 이상민 파면·처벌 외치는 이유

2023-10-29     이승호 에디터

재난안전법 지키지 않은 ‘죄’

이태원 참사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윤석열 정부가 ‘국민 안전보호’를 위해 만든 재난안전법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이도 하다. 그 맨앞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있었다. 이 장관이 재난안전법에 따라 성실하게 제 역할을 했다면 참사는 규모가 훨씬 작아질 수도 있었다.

이 장관은 이태원의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파악하자마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해 경찰청과 소방청, 서울시와 용산구청 등 관련기관 등을 총괄조정하는 임무를 수행했어야 마땅했다. 또 중앙사고수습본부장,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설치 및 운영 책임자, 중앙사고수습본부장으로서 맡은 바 의무를 다해야 옳았다.

이런 임무와 책무는 모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명시된 행안부 장관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모든 것을 외면하다시피하며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2023.1.6. 연합뉴스

4시간 15분이나 중대본 설치하지 않은 ‘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대규모 재난 발생시 즉각 설치해 기능별 책임기관을 지정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상민 장관은 참사가 발생했는데 중대본을 설치하지 않았다. 중대본 가동이 결정된 시점은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 30일 새벽에 열린 대통령 주재 회의 때다.

뒤늦은 결정으로 중대본은 참사 발생 후 약 4시간 15분 동안이나 부재한 상태였다. 재난과 관련한 여러 기관들을 조정할 책임자와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얘기다. 중대본 본부장이 이 장관이 아닌 한덕수 국무총리로 조정된 것도 대통령 주재 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도 참사를 그만큼 심각하게 봤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장관의 인식은 참사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난 1월 4일 열린 청문회에서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사 당시 현장에 최초로 출동했던 유해진 용산소방서 현장대응단 팀원에게 물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으로서 도움이 가장 필요했던 그 시간에 경찰 혹은 지방자치단체 혹은 상급기관 등에서, 꼭 필요한 시간에 다른 기관들의 지원이나 대응들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느꼈습니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행정안전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눈가를 만지고 있다. 2022.10.10. 연합뉴스

유 소방관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외로웠다’는 심경까지 토로할 정도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소방관들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없었고, 구조한 사람들을 놓을 장소조차도 마련되지 않을 정도로 인파들이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장관은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현장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재해 등이 예상되거나 재난이 진행 중이라면 신속하게 중대본을 꾸리는 게 중요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같이 이례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중대본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닙니다. (중대본 구성보다) 긴급구조통제단장인 용산소방서장이 현장을 지휘하면서 응급 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상 국가·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책임자는 행안부 장관이다. 그런데도 이 장관의 왜곡된 인식을 보여주는 문제 발언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골든 타임을 지난 시간이었다. 내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나” 등의 발언이었다.

이 장관은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즉각적으로 중대본을 설치하고 본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이 장관은 본부장으로서 소방청의 응급구조, 보건복지부의 환자후송, 경찰청의 통로확보 및 현장통제 활동 등을 독려하고 지휘했어야 했다.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 용산구 등 기관들 간의 역할과 업무 조정도 이 장관의 의무였다. 그러나 이 장관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지난해 11월 3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2022.11.3. 연합뉴스

사고수습본부 설치하지 않은 ‘죄’

이 장관은 참사 이후 한동안 행안부는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아니라는 취지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참사가 ‘신종 재해’인 ‘압사 사고’이기 때문에 주관기관을 확정할 수 없었다는, 변명에 가까운 논리였다.

백 보 양보해 이 주장을 인정한다 해도, 재난관리 주관기관을 정해야 할 책임자는 행안부 장관이었다. 재난안전법에는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지정되지 않았거나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부조직법」에 따른 관장 사무와 피해 시설의 기능 또는 재난 및 사고 유형 등을 고려하여 재난관리 주관기관을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장관이 ‘행안부가 재난관리 주관기관’이라고 인정한 것은 참사 발생 2개월도 더 지난 2023년 1월 6일 열린 국회 국정조사 제2차 청문회 때였다.

사고수습본부장 역할 폐기한 ‘죄’

이 장관의 ‘행안부가 재난관리 주관기관’ 인정은 청문회장의 한낱 장면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행안부가 재난관리 주관기관’이 되었으니, 행안부는 자동으로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부) 역할을 해야 한다. 그에 따라 이 장관은 행안부 장관으로서 중수본부장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중대본과 중수부의 역할은 많이 다르다. 중대본의 업무가 조정에 집중돼 있다면, 중수부는 재난 상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재난 수습을 위해 구체적 지시를 내리거나 조치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중수부는 재난정보의 수집전파, 상황관리, 재난발생시 초동조치 및 지휘 등을 위한 수습본부 상황실을 지체없이 설치해야 한다. 재난 수습을 위해 필요한 여러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장에게 신속하게 행정상 및 재정상의 조치, 소속 직원 파견, 기타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일들도 수행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0일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3.10.26. 연합뉴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피해상황 종합관리 및 상황보고 △재난 및 사고의 조기 수습을 위한 조정 통제 등 수습업무 총괄 △재난 위험수준 상황 판단과 예보 또는 경보 발령 및 전파 △사상자 긴급구조 및 구급활동 현황파악 협력, 피해자 신원파악 및 관리 등 상황관리 △지역대책본부 지휘 및 지역사고수습본부 지휘 운영 △피해상황 조사, 피해지원 대책 마련 △피해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 △시도 대책본부 또는 시군구 대책본부가 조사한 피해지역 검토 확인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장에게 재난수습에 필요한 행정상 및 재정상 조치 요구 △재난 및 사고 상황 대국민 브리핑 및 언론 대응 등이다.

이 장관은 이 모든 역할을 거의 외면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 이 장관은 2022년 11월 16일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회에서 “유족 명단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이 장관은 “국무위원 말 좀 믿어달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미 참사 이틀 후인 10월 31일부터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연락처가 포함된 명단을 행안부에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장관의 답변은 ‘거짓말 의혹’으로 비화됐다. 유족 명단이 없다면 피해지원업무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족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유족을 어떻게 지원해준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실제 시간이 흐르면서 유족들은 ‘지원받은 거 하나도 없다’는 취지의 증언을 이어갔다. 당시 윤석열 정부는 ‘유족 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뇌까리고 있었다.

 

연합뉴스티비

재난상황실 지휘 실패한 ‘죄’

재난이 발생하면 행안부 안에 초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한다. 그런데 이 장관의 상황실은 제 역할을 하지 못 했다. 예를 들자.

상황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이태원의 ‘재난 상황’을 처음 통보받은 것은 참사 당일 오후 10시 48분이었다. 그러나 이 장관이 첫보고를 받은 것은 31분 뒤인 오후 11시 19분이었다. 그마저 이 장관에게 보고한 것은 상황실이 아닌 재난안전 비서관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상황실은 소방청 통보 9분 뒤인 10시 57분 ‘상황 1단계’를 발령하고 ‘내부 긴급문자’를 발송했다. 상황실은 재난상황을 4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로 구분해 수신대상을 설정하는데, 장차관 보고는 3단계(경계) 이상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상황실은 처음 이태원 참사를 2단계(주의)로 판단했다. 2단계 수신대상은 소관 국과장급이다. 이 장관이 못 받은 이유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낸 상황실의 최종 책임자는 이 장관이다. 상황실 설치와 운영의 최종 책임자는 행안부 장관이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관련 탄핵 재판이 시작된 지난 4월 4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상민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4.4. 연합뉴스

유족들의 ‘이상민 처벌’ 요구는 ‘죄’를 묻는 것

모든 재난에는 원인이 있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그날 놀러 갔던 젊은이들도 아니고,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도 아니다. ‘이태원 참사 원인 보고서’의 제목에는 국가가 들어가야 한다. 또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그 보고서의 첫 문장에 나와야 한다.

159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 1년 내내, 오늘도 “이상민 책임, 이상민 처벌, 이상민 파면”을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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