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공언한 전면적 지상침공 망설이는 이유

인질 구출·미국 압력·정권 내분이 문제

2개의 싸움…전투와 정보전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서 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전면전 고집 네타냐후의 속내

2023-10-28     한승동 에디터
팔레스타인인들이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 밖에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망한 가족의 시신을 인계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교전이 벌어져 양측에서 수천 명이 숨졌다. 2023.10.27.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27일 밤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면서 “모든 전선에서 강력한 작전을 전개했다”고 발표했다. 하마스 쪽도 이스라엘군의 침입으로 격전이 벌어졌다는 글을 텔레그램에 올렸다. 26~27일 공격 때는 가자지구 북동부와 중부 쪽 경계를 넘어 들어가 제한적인 지상침공까지 시도했다. <비비씨>(BBC) 등 외신은 27일 밤 가자지구 전역에서 통신수단과 인터넷 작동이 완전히 멈췄다고 전했다.

하지 않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27일 가자 주민 7326명이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숨졌다고 가자 자치지구 보건부는 발표했다. 전날 발표한 7023명에서 3백명 이상 늘었다.

이처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날로 더 거세지고, 이젠 제한적인 월경 침투작전까지 벌이면서 작전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나, 3주 전 하마스의 기습공격 직후부터 공언해 온 본격적인 전면 지상침공은 여전히 머뭇거리며 미루고 있다. 하지 않는 것인가, 하지 못하는 것인가?

 

2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주위에 모여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교전이 벌어진 뒤 양측에서 7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2023.10.27. AFP 연합뉴스

인질, 미국, 정권 내분이 문제

<이코노미스트>는 26일 기사에서 이스라엘이 전면적인 지상침공을 공언하며 머뭇거릴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 들었다. 인질 구출 문제, 대규모 지상공격이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미국의 압력, 그리고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책임문제와 내부 분열 등이다.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프랑스의 중동정치 전문가 피에르 라주 지중해전략재단 학술담당국장은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목적을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지워버릴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정상화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서, 기습공격을 막지 못한 네타냐후가 정권 안보 차원에서라도 결국 전면적인 지상침공을 감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아사히신문> 10월 26일)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앞서 얘기한 요소들을 근거로 계획했던 전면적인 대규모 지상침공보다는 단계적인 소규모 공격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듯하다. 이 잡지는 이스라엘군 침공이 야기할 대규모 인명피해, 특히 가자지구 민간인들 피해로 인한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거세질 경우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개입으로 작전을 중단한 과거 사례들을 들면서, 네타냐후와 그의 극우 집권세력이 공언한 전면적인 지상공격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가자지구 지배세력 하마스를 철저히 분쇄하고 제거하려는 계획과 작전명령은 여전히 살아 있으나, 정부는 머뭇거리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실행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다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7일 개전 이후 누적 사망자가 7천28명이라고 밝혔다. 2023.10.27. EPA 연합뉴스

2개의 싸움, 전투와 정보전

피에르 라주는 이번 싸움을 2개의 싸움으로 본다. 하나는 전장에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가 벌일 전투다. 다른 하나는 정보전이다. 피에르는 이스라엘이 전면적 지상침공에 나설 경우 군사 차원에서는 승리하겠지만, 정보전에서는 곤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 국가들은 하마스의 기습공격 직후에는 이스라엘을 동정하면서 일치된 지지를 보냈으나, 가자지구를 ‘완전 포위’하고 물자 반입을 중단한 채 공습과 포격을 가하면서 주민들에게 대피 권고(소개령)를 한 것을 계기로 일부 국가들에서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여론 풍향이 바뀌었다. 특히 무참한 인명피해를 낸 가자 병원 폭격 이후 확연해졌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항공우주산업(IAI) 정찰기가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국경 너머로 비행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내에 진입해 심야 공격을 가한 뒤 철수했다고 밝혔다. 2023.10.26. AFP 연합뉴스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서 질 수 있다

피에르는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정보전에서 지고 있다고 본다. 만일 네타냐후와 극우 집권세력이 공언한 대로 대규모 지상침공이 시작되고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 이스라엘의 정보전 패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이스라엘은 고립될 것이라고 피에르는 내다봤다.

피에르가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 정권이 전면적인 지상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 전면전에서 승리가 보장돼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네타냐후 정권이 국내정치에서 취약점을 내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전투에서는 이긴다 할지라도 정보전에서 지고 전쟁에서도 질 수 있다.

네타냐후가 전면전을 공언해 놓고도 머뭇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질 수 있다는 것을 네타냐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동원 예비군 일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36만에 이르는 사상최대의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으나, 이스라엘군은 소규모 습격을 계속할 뿐 전면전은 머뭇거리고 있고 동원된 예비군들 중 일부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가자지구 인근에서 계속 지연되는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군은 수만명 수준이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가자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 동부 상공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전쟁으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7천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2023.10.27. AP 연합뉴스

머뭇거리게 만드는 최대 요인 ‘인질’

이스라엘군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최대 요인은 인질이다. 하마스가 납치해 간 인질은 적어도 220명에 이르며 거기에는 노인과 어린이들, 그리고 적어도 12개국에 이르는 외국인들도 포함돼 있다. 인질들은 네타냐후 정권이 전면전에 쉬 나설 수 없게 만드는 압력의 원천이다. 피랍자들의 가족은 안전 구출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외국인 피납자의 정부들은 자국 시민들의 석방을 우선하도록 네타냐후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집회를 열고, 피랍자 친인척들은 텔레레비전과 라디오 등의 미디어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일부는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거기에는 사태를 사전에 인지하지도, 그것을 막지도 못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비난과 비판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전면전을 강행할 경우 이스라엘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고립될 가능성이 짙다.

“인질 구출이 최우선 과제” 선언

원래 인질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가자지구로 돌진하겠다는 기세를 보였던 네타냐후 정권은 결국 인질 구출이 ‘최우선 과제’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하마스 간부들이 거주하는 카타르의 인질구출 노력도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압력을 의식한 카타르는 하마스와 인질 구출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지난 며칠 동안 인질 일부가 무사히 석방된 것은 그런 협상의 결과일 수 있다.

남쪽 라파 쪽으로 20대의 트럭으로 물과 식품, 의약품 등 구호품이 가자지구로 들어간 뒤 몇 차례 더 보급품이 국경을 넘었지만, 유엔은 가자지구에는 하루에 적어도 100대 트럭 분의 구호품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인질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물자 반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여론전, 정보전에서는 패배 요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지하터널

인질로 잡혔다가 석방된 요체베드 리프시츠(85)라는 고령의 여성은 가자지구에서 터널의 ‘거미줄’로 끌려 들어가 몇 시간 걸어가 20여명의 인질들이 갇혀 있는 방으로 갔고, 납치자들과 같은 식사를 하면서 정중하고 “섬세한”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아직 석방되지 않았기에 하마스를 공개적으로 적대하거나 비난하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얘기는 협상을 통한 인질의 안전한 구출 가능성, 그리고 가자지구 내 지하통로의 엄청난 규모와 이스라엘군이 진입할 경우 예상 이상으로 고전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베트남전 때 저항군이 판 끝없는 지하터널은 꺾이지 않은 항전의 거점이었다.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라이더 대변인은 이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2개 포대가 운영할 수 있는 아이언돔 시스템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3.10.27. AP 연합뉴스

확전 가능성을 경계하는 미국

<이코노미스트>의 지적대로 아랍 국가들은 즉각적인 휴전을 원한다. 유럽연합(EU)은 분열됐지만 최고위 외교관인 호세프 보렐은 가자지구에 더 많은 물품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전쟁의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를 촉구했다. 영국 리시 수낵 총리도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 내 친이스라엘 여론과 내년 대선을 의식한 바이든 정권은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확고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무한정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지상침공을 감행할 경우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고 국제적인 여론이 악화되면서 북부의 헤즈볼라와 이란까지 말려들게 되는 확전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중동정책은 파산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강력한 경쟁국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격퇴하기 위해 국제 연합군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2023.10.25. 로이터 연합뉴스

그럼에도 전면전 고집하는 네타냐후 속내

그럼에도 하마스를 두들겨 패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극우파의 거센 압력에 직면한 네타냐후는 미국이나 피납 인질 가족들의 압력에 순순히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을 것이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사전에 감지하지도 막지도 못했다는 ‘원죄’와 정권안보 차원의 ‘사법 개혁’을 강행했다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과도 갈라선 정권 내부의 분열과 여론 악화 때문에 그럴수록 오히려 더욱 완강한 자세를 고수하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타냐후 정권은 이미 머뭇거리고 있고, 전면전인 대규모 지상침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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