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결은 불평등 해소와 함께 간다

[박태주 칼럼] 자연재해·산업전환의 짐은 사회적 약자에게

2023-09-23     박태주 칼럼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함께 온다. 동아프리카의 가뭄과 파키스탄의 대홍수, 스페인과 영국 등 유럽을 덮친 폭염, 캐나다의 산불은 물론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던 홍수’로 댐이 붕괴되고 1만 명이 넘게 숨진 리비아의 폭우가 기후재난이란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생태계 질서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코로나 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은 앞으로 더 세게, 그리고 더 자주 인간세계를 위협할 것이다.

기후재난은 아래로 흐른다.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폭우로 인한 가옥이나 농작물의 침수는 물론 온열질환에 노출된 노동자 등 기후재난은 겨냥이나 한 듯 빈곤층과 취약계층을 노린다. 재난은 플랫폼 노동자, 이주민, 고령층, 장애인, 청년과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그들은 기후재난에 노출될 위험이 불평등할 뿐 아니라 노출에 대비하는 수단도 불평등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후위기를 인권문제라고 선언하는 이유다.

기후위기는 자연재난과 같은 물리적 리스크뿐 아니라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물린다. 이른바 전환 리스크가 그것으로 이 역시 사회적 약자에게 화살을 돌리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노동자는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일자리 위협에 직면한다. 그것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보다는 여성 노동자, 그리고 하청 노동자에게 먼저 다가온다. 산업전환이 가져오는 지역 경제구조의 변화는 주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청년은 앞선 세대가 저지른 기후위기의 짐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 여성은 가부장제 속에서 기후위기를 맞는다.

 

12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가 홍수로 초토화가 된 모습. 지난 10일 열대성 폭풍 영향으로 댐 두 개가 잇따라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이 지역을 덮쳤다. 지금까지 약 5천300명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13일 압둘메남 알가이티 데르나 시장은 사망자 수가 1만8천명에서 최대 2만명이 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23.09.14. 로이터 연합뉴스

재난은 아래에서 연대로 만난다

사회적 약자는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희생자라는 점에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윤리적·도덕적 책무보다는 생활에서 느끼는 삶의 절실한 위험이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로 만든다. 하지만 개인의 목소리는 사회적인 공명을 얻지 못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공명을 얻으려면 집단적인 목소리, 즉 조직을 필요로 한다.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라 요구를 관철하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도 힘의 결집은 필수적이다. 결집된 힘의 물질적 표현이 조직이다. 조직은 다시 조직과 조직 사이의 긴밀한 연결과 동맹을 통해 시너지를 추구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가 기후운동과 손을 잡을 때 뉴딜 동맹이 형성된다. 가령 노동운동이 지역운동이나 여성운동과 동맹을 맺고 기후운동과 손을 잡는 것이 그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풀뿌리 이니셔티브가 형성되는 셈이다.

뉴딜 동맹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의 해소를 겨냥한다. 불평등의 해소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희생의 최소화와 희생의 사회적 부담을 포함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희생이 전가되는 것을 막고 나아가 이들을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로 세운다.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고 이행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탄소중립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불평등의 해소는 극적으로 만난다. 그것을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부르든, 기후정의라고 부르든 마찬가지다. 노동-기후연대는 그 중심에서도 중심이다. 노동과 환경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전환의 주체가 형성되고 전환을 위한 로드맵의 설계가 가능해진다. 사회적 대안의 실현가능성(achievability)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뉴딜 동맹의 당위성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다.

서로가 접점을 갖지 않으면 연대의 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일자리를 중시한다면 탄소중립 없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이를 국제노총(ICTU)은 ”죽은 행성에선 일자리도 없다“라고 표현한다. 기후운동도 일자리에 집착하는 노동자들의 실존적인 요구를 인정해야 한다. “일자리 없이는 생태적인 전환도 없다.” 노동운동이 인정하는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기후운동이 인정하는 일자리의 중요성을 교환하면서 두 운동 사이에서 접점이 만들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8.9. 연합뉴스

사회적 약자들의 그린뉴딜 동맹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이 이념적 접점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그린뉴딜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그린뉴딜의 철학은 녹색성장을 통해 임금노동자를 보호하면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재생에너지를 확충하고 공공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동원하는 일이기도 하다(“경제성장 없이 어떻게 야심 찬 계획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린뉴딜은 2019년, 미국의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과 마키 상원의원이 하원에 결의안 109호를 제출하면서 급진적인 그린뉴딜(그린뉴딜 2.0)로 진화한다.

그린뉴딜 2.0은 그린뉴딜 1.0과 달리 기술솔루션과 시장주의적 해법을 거부한다. 정부가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모니터링하는, 통제와 명령에 기반을 둔 환경규제를 강조한다. 위로부터의 개혁 못지않게 그린뉴딜 2.0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존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린뉴딜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일자리 창출 정책이 필요한 개혁의 초기단계에 적합한 전략이다(마스티니 등, 2021). “정치적으로 현실성 있고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인 탓이다(로버트 폴린). 하지만 그린뉴딜 전략은 성장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탄소배출을 절대적으로 줄이는데는 한계를 갖는다. 지구의 유한한 자원체계에서 무한한 성장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자체의 한계로 인해 그린뉴딜은 ’성장 없는 그린뉴딜‘(Green New Deal without Growth)로 수렴한다. GDP의 성장보다는 인간의 번영과 생태정의가 강조되는 전략이다. 이런 점에서 그린뉴딜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출발점이자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가교전략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린뉴딜과 ‘성장 없는 그린뉴딜’은 계기적으로 이어지지만 동시에 단기적인 대응에서 정책적 지향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의 확충과 에너지의 효율화, 공공서비스의 개선(공공교통체계, 의료, 교육 등)과 건물·주택의 에너지 효율화, 재생산과 돌봄노동의 가치화, 재산림화와 생태적 복원 등에서 탈성장과 그린뉴딜이 별개의 해법을 갖는 것은 아니다(탈성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너지 총사용량의 축소를 주장한다). 그린뉴딜은 각축적인 개념이지만 현실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성취가 가능한 미래의 조망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개혁’(revolutionary reforms, 앙드레 고르)이기도 하다.

‘성장 없는 그린뉴딜’이 어떤 체제로 진화하는가는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사회주의에 다다를지,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 개혁에 머물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가능성을 남겨둔 채 모색할 뿐이다. 사파티스타의 모토처럼 “우리는 물어가며 걷는다”. 어떻게 결말지어지든 그것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불평등의 해소를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불평등을 방치하거나 강화하는 탄소중립은 가능하지 않다.

연대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상호이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연대는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통의 가치와 함께 자신의 이해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또한 연대는 낮은 수준의 공동행동으로 초석을 다져 높은 수준의 상시적 조직을 지향하는 시간의 과정이다. 기후운동에서 그것은 녹색전환·생태전환과 불평등의 해소를 목표로 삼는 사회적 약자의 그린뉴딜 동맹이라는 형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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