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역내 경제 부활 속에 퇴조하는 미국 경제 영향력
아시아 역내 교역 30년만에 58%로 증가
역내 FDI도 아시아 국가들이 59% 차지
‘미국이 가장 영향력 큰 정치세력’ 32% 응답
‘미국이 가장 영향력 큰 경제세력’ 11%
미국 일본 편중의 유별난 한국정부 행보
수백년 전 동쪽으로 일본에서 서쪽으로 자바를 거쳐 아랍지역까지 해상교역으로 이어진 아시아의 거대한 역내 상업 네트워크는 새로 힘을 키운 유럽세의 도래와 함께 무너졌다. 21세기에 그 아시아 역내 상업 네트워크가 부활하면서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열고 있다.
역내 상업 부활로 아시아 경제 정치 재편
2차 세계대전 뒤인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 생산 공장으로서의 아시아 모델(‘Factory Asia’)은 일본과 한국, 대만, 중국의 번영에 놀라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1990년에는 아시아 지역 생산품의 절반 이상이 서방으로 흘러나가고 46%만이 역내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2021년에 아시아 역내교역은 58%로 커져, 역내교역이 69%인 유럽에 접근하고 있다. 이에따라 자본의 흐름도 증가하면서 역내 국가들을 더욱 긴밀하게 묶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코노미스트>는 19일 기사(‘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아시아 경제가 통합되고 있다’)에서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아시아 상업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면서, 이는 아시아 대륙의 경제적, 정치적 미래를 재편, 재창조하고 있다고 썼다.
아시아 국가들이 역내 FDI의 59% 차지
1990년대 일본 중심의 정교한 공급망 성장과 함께 시작됐고 지금은 중국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 제조업과 교역의 성장에 따라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뒤따랐다. 금융 허브인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역내 국가들이 역내 FDI의 59%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에서는 아시아 투자자들의 직접투자 비중이 10% 포인트 이상 늘어, 적게는 26%에서 많게는 61%를 차지한다.
2007~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역내의 은행업무도 더욱 아시아화됐다. 금융위기 전에 이 지역 은행들은 역내 해외대출의 3분의 1도 차지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서방 금융세의 퇴조와 함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국영은행들이 이를 주도했는데, 중국공상은행의 해외 대출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2배 이상 증가해 2030억 달러에 달했다. 일본의 대형은행들과 싱가포르의 은행들도 이윤폭이 작은 자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
서방의 존재감 약화
이에따라 이 지역에서 서방의 존재감도 감소했다. 최근 싱가포르 교육부 산하 연구기관( ISEAS-Yusof Ishak Institute)이 동남아시아의 연구자, 사업가, 정책입안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32%가 미국을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세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1%에 지나지 않았다. 일대일로를 앞세운 중국의 국가 주도 투자가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공적 지원과 정부 지원 투자도 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런 추세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중관계의 악화로 중국의 공장에 의존하던 역내 기업들이 인도와 동남아 쪽에서 대안을 찾고 있지만, 완전한 탈중국을 생각하는 기업가는 거의 없다. 2020년에 체결된 이 지역의 포괄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역내 투자를 증대시킬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해버린 미국 시장에 아시아 수출업체들이 접근할 여지는 줄었다.
바이든 정부가 최근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 인도, 중동지역 국가들, 그리고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관계 증진에 크게 신경 쓰고 있는 듯한 모습은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시장 확대와 함께 안정적인 수입을 바라는 투자자와 금융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민간신용(대출)회사들의 역내 사업 수익성이 좋아져, 동남아와 인도의 민간신용시장 규모는 2020년부터 2022년 중반까지 약 50%가 증가해 800억 달러에 달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와 같은 대형 투자자들도 새로운 공급망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동북아의 동남아 투자액 10년만에 2배로
이 지역의 저축 및 인구구조 변화도 경제통합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 한국, 대만은 역내 해외 투자자 순위가 올라가면서 세계 최대규모 투자국의 일원이 됐다. 아시아에서도 좀 더 부유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은 2011년부터 현재 가치로 3290억 달러를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더 젊고 상대적으로 빈한한 나라들에 투자했는데, 10년 뒤 그 수치는 698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인도와 동남아 지역에서는 아직도 도시화가 진행 중이어서 더 많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며, 도시생활에 더 적합한 새로운 기업이 번성할 토대가 조성되고 있다. 이에따라 유럽과 북미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의 국제적 기업 인수합병(M&A)이 일반화하고 있다. 특히 낮은 금리와 국내경제 성장 둔화에 직면한 일본의 은행들이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미쓰이 스미토모 금융그룹과 미쓰비시 UFJ급융그룹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 금융회사들을 인수했다.
신규 진입 글로벌 소비자 계층 대다수가 아시아인
소비증가도 이 지역 경제를 더욱 매력적인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고 있다. 유럽의 경우 소비재의 70% 정도가 역내에서 수입되지만, 아시아에서는 역내 수입이 44%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것이 빠른 속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 회사인 월드 데이터 랩에 따르면, 내년에 ‘글로벌 소비자 계층’(global consumer class. 2017년 구매력 기준으로 하루 12달러 이상 지출)에 새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1억 1300만 명 가운데 약 9100만 명이 아시아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십년 간 높은 소득 증가율을 보여 온 중국의 최근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5대 경제권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의 지역블록에서는 2023년부터 2028년까지 매년 5.7%씩 수입이 늘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줄어드는 미국의 역내 경제적 중요성
더 긴밀해진 역내의 상업적 연결망은 아시아 경제의 비즈니스 순환(사이클)을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가간 거래에서 여전히 달러가 사용되고 아시아 투자자들의 서구 상장시장 선호가 계속되고 있지만, 2021년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경제는 이제 미국보다 중국의 변화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 경제의 부진이 한국과 대만의 수출업체들에 타격을 준 최근의 변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또 정치적인 영향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올인'하는 최근 한국정부의 과도하게 편향적인 행보는 아시아 역내에서 유별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 안보에 대한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하겠지만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중요성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아시아 역내 사업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고객이나 국가들보다는 이웃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많은 이 지역 통합에는 더 많은 공장과 소비 증가, 자금 조달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상업의 새로운 시대는 더욱 지역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고, 서구 지향성은 점차 약화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