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 중국 몸값 올려…한·미·일 '도움' 요청

북한에 러시아 위성 기술 전수, 미국의 진짜 걱정

대중 관계 악화 자초한 윤 정부, 메시지 오락가락

북·러 군사협력, 중국에도 부담…왕이 내주 방러

조선중앙통신 "조·러 역사에 새로운 전성기 열려"

2023-09-17     이유 에디터

 

16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극동 연해주 크네비치 군 비행장에 전시된 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미사일 시스템을 만져보고 있다. 2023.9.16.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있은 지 나흘이 지났지만, 중국 정부는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이 회담을 앞둔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은 북러 사이의 일"이라고 논평한 게 전부다.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의 관계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한 데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물어도 마 대변인은 13일 똑같은 논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는 북·러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추적하며 대응하는 미국의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은 북·러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며칠 전부터 선제적으로 관련 정보를 '언론'에 흘려 두 나라의 위험한 거래를 경고했고 개최 이후에도 지속해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그 대신 러시아는 위성 발사 로켓, 핵잠수함 관련 기술을 넘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들이 많았다. 두 정상의 회담 장소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던 점도 그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회담 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기간에 군사 관련을 포함한 어떤 협의에도 서명하지 않았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부인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진영의 잇따른 추가 제재 경고를 의식해 대외 발표 과정에서 일단 수위를 조절했음 직하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2023.9.14. 연합뉴스

러시아의 대북 위성 기술 전수가 미국의 진짜 걱정

당연히 미국은 믿지 않는다. 이런 러시아의 '설명'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5일 브리핑에서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방문 전이나 후나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공급 관련 대화가 진전돼 왔고 계속 진전되고 있다는 게 우리 관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만 보면 설리번은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제공을 뭣보다 경계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미국이 진짜 우려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위성 발사 로켓 기술 전수다.

북한은 군사 정찰위성을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 쏘아 올렸으나 실패했다. 아직은 로켓 운반 기술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다. 다음 달에 3차 발사를 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북한이 장차 러시아의 위성 발사 로켓 기술을 확보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군사 정찰위성을 갖추게 됨은 물론이고, 위성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는 ICBM을 갖출 수 있어서다. 그럴 경우 미국은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그런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하는 게 미국의 숙제다.

북한의 대러 무기 제공 여부도 신경 쓰이지만, 그것은 유럽에서 더 민감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유럽 국가들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약 없는' 장기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20개월 가까이 우크라에 대한 막대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하면서 나라마다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는 '전쟁 피로감'이 커지고 이것을 틈타 극우세력이 세를 확장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취임 이후 시 주석과의 5차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다. 2019.6.22.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러 밀착, 중국 몸값 올려…한·미·일 '도움' 요청

북·러의 밀착은 중국의 전략적 몸값을 높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이 △ 군사동맹을 향한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 방문과 쿼드(미·일·인도·호주 4자 안보협의체) 강화 △ 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 '일대일로'에 맞선 인도-중동-유럽 간 에너지 수송로와 디지털망을 잇는 '경제회랑' 구상 △ 바이든의 베트남 국빈 방문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등을 통해 중국 봉쇄망 강화에 여념이 없었으나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결의와 다수의 국제 제재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와 군사협력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북한과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와 위성 기술 교환 등 군사협력에 나설 경우 미국은 두 나라에 대해 더욱 가혹한 제재를 가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도움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북·러를 완전히 '고립'시킬 수 있어서다.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를 같은 범주로 보지 않는다. 러시아는 한 걸음 나아갔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는 안보리 결의안 이행과 관련해 중국이 책임을 다할 것을 기대한다고 중국 측에 계속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중국에겐 미국 등 서방 진영의 압박 속도와 강도가 완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발언 후 기시다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2023.8.20. 연합뉴스

정부, 한·중 관계 복원 물꼬…메시지 아직 오락가락

미국이 바뀌니 윤석열 정부의 대중 태도에도 변화가 느껴진다. 윤 대통령은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인 지난 10일 중국의 리창 총리와 회동했다.

작년 11월 프놈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10개월 만이다. 한·중 관계는 파국 직전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요청했다.

일단 중국은 올해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지지했다. 최근 윤 정부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굳이 찬물을 끼얹지는 않고 응하되 윤 정부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자세다. 특히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간섭'을 금지선으로 여기고 있다.

올해 서울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직접 참석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 "외교적으로 풀겠다. 올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 한·중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윤 정부는 중국에 일관된 관계 개선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쿼드 가담' 의사를 표명한 장재복 주인도 대사의 인도 현지 신문 인터뷰, 중국과 가까운 서해상에서 진행한 한미와 캐나다 해군의 연합 군사훈련, '한·일·중' 표현 등에 중국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당국을 대변하는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14일 논평을 통해 "한국은 한편으로는 중·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중국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중·한 관계 관리를 원한다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8일 사설을 통해선 윤 대통령의 '한·일·중' 표현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친화적인 태도를 표현하는 데 신경 쓰고 있지만 한국과 주변에서 의구심과 반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친일 본색' 윤 정부는 그동안 불러오던 한·중·일 3국의 '순서'를 '한·일·중'으로 공식화해 중국보다 일본을 중시한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12일 국무회의에선 윤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라고 표현해 혼선을 빚기도 했다.

 

북한이 전승절(정전기념일) 70주년을 맞아 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벌인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이 지나가고 있다. 2023.7.27.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러 군사협력, 중국에도 부담…왕이 내주 방러

북·러 밀착이 미국과 동맹국의 반중 전선을 다소 흔들어 놓고 있지만, 중국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두 나라의 밀착은 뭣보다 이들 나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위성 기술과 재래식 무기 '거래'로 압축되는 북·러 군사협력은 실행된다면 중국에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의 무기 제공은 우크라 전의 장기화로 이어지면서 조속한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는 중국의 정책 기조와 다르고, 러시아의 위성 기술 제공은 북한의 핵·미사일 무력 완성을 도와 한반도의 현상 유지와 비핵화라는 중국의 이익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존 덜레리 연세대 교수(중국학)는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모든 일이 베이징의 문간에서 벌어질 것"이라며 "그러나 중국의 통제나 영향력 밖에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덜레리 교수는 김정은과 푸틴은 양자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북·중·러) 3자 관계를 주도하는"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자율성과 지렛대를 찾을 만한 까닭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외교 수장인 왕이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다음 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북·러 정상회담 내용에 관해 설명을 들을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을 접견할 가능성도 크다. 중·러 간 무슨 대화가 오갈지 주목된다.

한편, 지난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김정은 위원장은 △ 15일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하바롭스크주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 △ 16일 크네비치 공군 비행장(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인근)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참관 △ 16일 전략핵잠수함 등을 태평양함대(블라디보스토크) 방문 등 핵심 군사 시설 시찰에 집중해왔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7일 김 위원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을 전하면서 "조·러(북·러) 두 나라 관계 발전의 역사에 친선 단결과 협조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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