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들 막말·욕설이 '전투력'이고 '추진력'인가?

주요 언론들, '일베' 수준 인물을 '능력자'로 포장

대통령실 불러준 후보 평판 받아쓰고 비판엔 눈감아

전 정권 '코드인사' '회전문인사' 혹독한 잣대 어디로

윤 정권 뉴라이트·일베 인사 임명에 언론 계속 '조용'

2023-09-16     김성재 에디터

윤석열 정권이 13일 발표한 국방부·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 장관 개각은 이번에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과연 이런 인물들이 대한민국 주요 행정부처를 이끌 장관으로 적절한지, 이런 인물들을 장관으로 임명한 대통령의 전두엽에서는 어떤 전기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 폭언, 혐오 발언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역사를 짓밟는 언사를 일삼던 인물이다. 전직 대통령이 밉다고 ‘문재인 모가지를 따는 건 시간문제’ ‘노무현은 악마’라는, 증오로 가득하고 욕설에 가까운 주장을 했다. 전광훈씨가 주도한 극우 기독교 단체 주최 집회와 기도회에 수차례 참석해 무대에서 이런 말을 하며 춤을 췄다. ‘일베’ 회원들이 자주 하는 언동이다.

민주화운동을 모조리 부인하고 전두환의 12.12 쿠데타를 미화하기도 했다. 독립군이 육사의 뿌리가 아니라고도 했다. 정치적 중립과는 한참 거리가 먼 극우 성향도 문제지만 과연 이런 패륜적이고 몰이성적 사고를 하고 있는 인물이 행정부처의 수장이 된다는 것, 그것도 국방부 장관이 된다는 것은 적절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국민모독'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기자들 앞에서 흥분한 채 ‘찍지마 XX, 성질 뻗쳐서 XX’ 같은 상스런 욕설을 내뱉는 장면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마음에 안드는 문화예술인들의 생계를 끊었다. 

김행 여가부 장관 내정자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책임 논란 당시 ‘장관 파면 요구가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막말로 유가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여러 방송에 패널로 나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억지 옹호와 미화 발언을 해 시청자들의 헛웃음과 비난을 샀다. 내정자 3인의 평소 이런 발언과 태도만 봐도 이들은 장관은커녕 일반 공직자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앞으로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또 어떤 문제들이 드러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 개각 발표와 내정자 3인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다. 주요 언론들은 이번 개각을 윤 정권 내각에 ‘전투력을 보강했다’거나 ‘경험이 있는 실전형 내각’‘부처 장악력 강조’라며 추켜세웠다. 그동안 내정자 3인의 언동에서 드러난 패륜적이고 위험한 사고방식과 장관직 부적격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대통령실 발표자료를 또 그대로 받아쓰기하면서 대통령실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예컨대, 한국일보는 “내각에 ‘전투력’ 보강…면면을 보면 업무 추진력은 평가할 수 있겠으나”(14일자 사설)라고 했고, 서울신문은 “‘파이터’ 장관 전진 배치로 국정 고삐” 제목의 기사를, 세계일보는 “부처 장악력 강조한 개각”이라는 기사를 냈다. 그동안 내정자들이 보여준 막말·폭언·욕설·혐오발언을 ‘전투력’ ‘업무 추진력’ ‘파이터’ ‘부처 장악력’으로 포장하는 특별한 기술을 부린 것이다.

부처 장관에게 업무 추진력과 부처 장악력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업무 추진력·장악력은 정당하고 윤리적인 리더십에 의한 것이어야지 막말·폭언·욕설로 해서는 안된다. 막말·폭언·욕설을 잘하면 그것이 업무 추진력이고 장악력이고 전투력인가? 박근혜·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가 업무 추진력인가?

장관이 왜 ‘전투력’이 필요하고 ‘파이터’가 되어야하는지도 이 신문들에게 묻고 싶다. 장관이 된다면 도대체 누구와 싸우면서 ‘전투력’을 과시하고 누구를 상대하는 ‘파이터’가 되겠다는 것일까? 국정운영과 정책추진이 무슨 이종격투기인가?

장관은 부처 조직의 리더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책 서비스를 추진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야당·언론과도 타협하고 때로 승복해야 한다. ‘전투력’이란 정무직 공직자인 장관이 지양해야 할 태도인데도 언론은 오히려 이를 마치 대단한 능력이요 필요한 자질인 것처럼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군 안팎에선 신 후보자가 엄중한 안보위기 속에서 군 통수권을 확고히 보좌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동아일보), “업무 파악에 많은 시간 필요 없는 행정경험 전문성 갖춘 인사 낙점…실전형 인사로 교체”(조선일보) 등은 대통령실의 입장을 그대로 옮겨적은 보도다.

사설에서 “임무가 막중하다”(국민일보), “국민소통도 중시해야”(세계일보) 같은 하나마나한 주문을 제목에 내건 사설도 있다. 어느 장관의 임무가 막중하지 않고 국민소통을 중시하지 않아도 되겠는가. “쇄신이 필요한데 그런 기대에 부합하는 인사인지에는 아쉬움이 남는다”(중앙일보)며 ‘일베’ 수준 내정자 임명을 ‘아쉬움’ 정도로 축소한 언론도 있다. 윤 정권의 개각에 대해 비판하거나 쓴소리를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그저 ‘애완견’ 언론의 보도들이다. 

윤석열 정권의 신원식 유인촌 김행 장관 임명 발표 직후인 9월14일자 주요 신문 사설. 빅카인즈 검색 화면 갈무리 

언론은 과거 민주당 정부 시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과도할 만큼 날카로운 칼날과 사나운 잣대를 들이댔다. 후보자의 수십년 전 발언과 행적을 샅샅이 뒤져 공개하고 사적이거나 사소한 언행까지 대서특필하며 문제 삼았다. 언론의 과도한 사생활 공개 탓에 장관직 추천 과정에서 고사하는 인사들도 나왔다. 대통령의 장관 내정 원칙과 방식에 대해 ‘코드인사’ ‘회전문 인사’ ‘낙하산 인사’ '캠코더 인사'같은 이름을 붙여 혹독하게 비판했다.

정권 인사원칙, 인사방식에 대한 언론의 견제와 비판은 과도하거나 과소해서는 안된다. 민주당 정권 시절 장관에 대한 인사검증이 과도했다면, 윤석열 정권의 이번 내각 교체에 대해 주요 언론들의 비판과 감시는 '과도하게 과소'하다. 얼마전 뉴라이트 출신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하고, ‘일베’ 유튜버를 공무원 교육을 담당하는 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앉혔다. 이번에도 막말·폭언·망언 인물들을 장관에 임명한, 국민모독 수준의 내각 교체에 대해 주요 언론들은 그저 조용히 넘어가거나 포장하고 미화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윤 정권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경향·한겨레가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한겨레는 “싸움꾼 전면 내세운 돌려막기, 개악된 개각” 사설에서 “강경파 장관을 이념전쟁의 선봉장으로 삼겠다는 취지가 명백해 보인다”면서 “윤 대통령이 싸우라고 했고 싸우는 데 적합한 전사들을 골랐다. 도대체 누구와 싸우겠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오기·MB맨·꼬리자르기 개각, 이게 쇄신인가” 제목 사설에서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잼버리 파행 파문을 줄이려는 꼬리자르기 인사, 이명박 올드보이를 재기용한 회전문 인사, 국방부엔 더 강성인사를 내세운 오기 인사”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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