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활로 열어준 윤석열 친일‧이념 외교의 역설
북‧러 전면적 관계 복원은 '북방정책' 공식 파탄
과도한 우크라 전쟁 개입…'자유 전사' 윤석열 자초
정상회담서 위성‧군사협력 이어 경제협력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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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에 놓여 있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활로를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 방역을 위해 국경을 봉쇄하면서 칩거했던 김 위원장은 3년여 만에 러시아 방문에 나서 전격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결렬된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하노이 회담에 이어, 그해 4월 동방경제포럼(EEF)이 열린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과 만나고 4년 5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공식 만찬을 포함해 모두 4시간에 걸쳐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북한의 인공위성 등 첨단 기술 발전을 돕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인 러시아에 전폭적 지지를 표명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된 데다 기자회견도 없어 두 정상이 러시아의 북한 위성 기술 개발 협력과 북한의 재래식 무기 제공 등에 관한 실제 합의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상회담서 위성‧군사협력 이어 경제협력도 논의
그러나 회담 전 푸틴이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건가'란 질문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했고, '군사기술 협력 문제도 논의되느냐'는 질문에는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를 얘기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깊숙한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구 언론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보내고, 대신 위성 기술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술을 받으려 한다고 보고 있다.
푸틴은 또한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분명히 경제협력 문제, 인도주의 성격의 문제, 지역 상황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무역과 에너지‧식량‧의약품 지원, 북한 노동자송출 등의 문제도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양국은 다음 달 평양에서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번 회담은 핵·미사일 개발과 우크라 침공으로 국제사회 고립이란 동병상련을 겪는 두 정상이 타개책 마련이란 서로의 필요에서 두 손을 맞잡은 모양새다. 이로써 그동안 러시아가 한국을 의식해 일정한 거리를 뒀던 북한과의 관계가 전면 복원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국외 체류 중엔 처음으로 13일 오전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그 시점이 정상회담 개시 직전이어서 대북 압박의 강도를 급속도로 높이는 한‧미‧일 3국을 향한 그들 방식의 '북‧러 관계 전면 복원' 선언이란 인상을 줬다.
북‧러 전면적 관계 복원은 '북방정책' 공식 파탄
두 나라의 전면적 관계 복원은 사실상 한‧러 관계의 파탄을 의미한다. 구소련 해체 이후 노태우 정부를 시작으로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견지해온 '북방정책'의 파국을 뜻하기도 한다.
1990년 한‧소 수교와 1991년 소련 해체를 계기로 후신인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이와 반비례해 옛 사회주의 우방인 북한과는 갈수록 거리를 뒀다.
당시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북한은 외교적‧군사적 고립에 처하자 마침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게 정설이다. 현재진행형인 북한 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권과의 무역 축소, 그리고 러시아의 에너지‧식량 지원 중단, 농촌 황폐화 등으로 북한은 큰 고통을 겪었다. 수백만 명이 숨졌다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도 그때 얘기다.
소련 해체 이후 북‧러 관계는 10년 가까이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김일성 주석 사후이고 외교적‧안보적으로 가장 고립된 시기였던 1996년에 러시아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담겼던 1961년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우호조약)'을 폐기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2000년 7월 푸틴 대통령의 첫 평양 방문을 계기로 관계 복원의 물꼬를 텄다. 푸틴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러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앞서 그해 2월에 양국은 평양에서 '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여기엔 기존 우호조약 2조에 있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대체해 '위기 시 협의' 조항이 들어갔다. '제한된 복원'이었던 셈이다.
그런 와중에도 한‧러 관계는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무역협회보고서(2020년 9월)에 따르면 수교 30년을 앞둔 2019년 현재 한‧러 교역은 9억 달러에서 223억 달러로 증가했고,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국으로 떠올랐다. 또한 다 알다시피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를 포함해 우리 우주산업 발전에 러시아의 기술이 크게 기여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러시아는 한국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뭣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며 대북 제재 결의에 동참해왔다. 그러던 러시아의 태도가 냉랭해지기 시작한 것은 윤 정부 들어서다. 지금 한‧러 관계는 거의 파국 직전에 놓였다.
과도한 우크라 전쟁 개입…'자유 전사' 윤석열 자초
문제는 윤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 일'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유의 전사'를 자처하며 과도하게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불법적 침공을 규탄하고 국제사회 제재 가담이 불가피했지만, 33년의 한‧러 관계를 고려해 '일정한 선'을 지켰어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러시아의 거듭된 경고와 호소에도 구호품에서 군수 물자, 지뢰 제거 장비와 긴급 후송 차량 등 비살상 군사 장비 지원, 포탄과 탄약의 우회 지원에 이어, 우크라에 2025년 이후까지 최소 25.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 규모의 초특혜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를 직접 찾았다. 휴전 중인 분단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공동 언론발표 자리에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러시아를 자극하기도 했다.
그동안 내심 별러온 푸틴이 꺼낸 회심의 카드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한 전면적 관계 복원 움직임이다. 러시아 출신 학자 표도르 테르티츠키는 뉴욕타임스에 "많은 대화가 있었지만 진짜 교역은 없었다"며 "1990년 시작한 북러 관계의 시대는 정말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도 푸틴이지만, 러시아와 손을 맞잡으면서 그야말로 김정은의 살길이 열린 것이다.
한‧미‧일이 우려하는 북‧러 밀착을 촉발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한‧미‧일이란 점이 역설적이다. 군사동맹 수준의 한‧미‧일 결속도 그 직접적 배경 중 하나다. 그 정점은 '준 군사동맹'이라 불리는 한‧미‧일 안보협력체 창설에 합의한 8‧18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였다.
3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감안하면 앞으로 3국 안보협력체의 파괴력은 가공할 수준이 된다. 일차적 표적인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와 중국에도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정은에 활로 열어준 윤석열 친일‧이념 외교
윤 대통령은 작년 5월 출범 이후 이념을 중시하는 '가치 외교'를 내걸고 미‧일에 맹종하면서 반중국, 반러시아 정책에 매진해 왔다. 또한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며 한‧미,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을 확대하면서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해 왔다.
그 대책으로 북한이 찾은 게 대러 군사협력 강화 카드였다. 북한에겐 우크라 전쟁의 장기화로 전쟁 능력 보강이 필요한 러시아와 손잡는 것이 한‧미‧일 압박을 돌파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와의 관계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한 데서 보듯이 러시아와의 밀착은 중국을 자국으로 더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구소련 시절처럼 중‧러 사이를 오가며 실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꽃놀이 패'를 쥐었다는 견해도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화가 이번 북‧러 공동전선을 가져온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보면, 그 진원지는 윤 대통령의 '묻지마! 친일‧이념 외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3국 군사동맹화란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전략적 목표 달성에 꼭 필요했던 게 무조건적 한‧일 양국 결속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범기업에 면죄부를 준 강제동원(징용) 피해 '3자 변제'를 시작으로 올해 3‧1절 기념사와 8‧15 경축사를 통한 일제 과거사 지우기와 일본 군국주의 신분 세탁 등을 해주면서 윤 대통령은 일본의 재무장과 3국 군사동맹의 길을 열었다. "친일 매국 외교"란 거센 비난을 샀다.
반공 이념으로 포장한 윤 대통령의 '친일 날갯짓'이 일본과 미국을 거쳐 동북아로 돌아오면서 북‧러 관계의 전면 복원과 군사협력이란 '역풍'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자신이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던 김정은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자충수를 둔 모양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