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하했는데 기업 투자·채용 늘기는커녕~

정부, 감세 낙수효과 기대했지만 웬걸

대기업 65% 신규 채용계획 없어

파견·용역·기간제만 뽑으면서

일자리의 질도 점점 나빠져

투자·고용 효과 없고 세수 펑크만

2023-09-11     장박원 에디터

“법인세 인하가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법인세 인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줄기차게 했던 말이다. 기업이 내야 하는 세금을 감면해 주면 여유 자금이 생기고 이 돈이 투자와 고용에 투입되며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전체 국민의 수입이 증가하는 ‘낙수효과’가 생긴다는 뜻이다.

청년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현황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은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2년 세종특별자치시 청년취업박람회.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들이 부자 감세일 뿐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결국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세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세법 개정안’도 법인세 인하와 상속·증여세 부담 경감 등 부자 감세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감세로 기업 투자와 고용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낙수효과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3년 하반기 대졸 신규 채용계획’을 조사해 보니 48.0%가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채용계획이 아예 없다는 기업 비율도 16.6%도 달했다. 대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이 신규 채용을 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법인세 인하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산업 현장에서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말해주는 조사 결과다. 

채용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악화와 경영 불확실성 대응을 위한 긴축 경영 돌입’(25.3%)이었다. 그 뒤를 이어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와 고금리·고환율에 따른 경기 악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증가 대비한 원가 절감 순이었다. 대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면 청년 취업난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고용 방식도 낙수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일 발표한 ‘2023년 고용 형태 공시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5000인 이상 대기업의 소속 외 근로자 비중은 지난해보다 0.6%포인트 오른 24.9%에 달했다. 4명 중 1명은 파견·용역 등 불안정한 지위로 일할 만큼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는 것을 뜻한다. 조사 대상을 확대해 300인 이상 기업을 보면 전체 근로자 10명 중 4명(39.1%)이 파견·용역 또는 기간제 근로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0.8%포인트 오른 수치다. 조선업은 61.9%가 소속 외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투자도 법인세 인하 효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 말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7월 설비투자는 8.9% 줄어 2012년 3월(-12.6%) 이후 11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실적 악화와 감세의 역효과가 맞물리면서 올해 약 60조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 등 재정 운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에도 중국 경제 침체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초래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여건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세수 감소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내년 법인세 감세액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조세지출 예산서’를 보면 내년 국세 감면액은 77조1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7조6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인데 대기업 감면액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감면액은 6조6005억 원으로 올해 4조3727억 원 대비 2조2000억 원 이상 늘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발표를 하기 위해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3.8.29. 연합뉴스

감세의 낙수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은 지난해 법인세 인하를 둘러싼 공방이 있을 때부터 제기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법인세 과표구간 및 세율체계 개선방안을 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인세가 인하되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33%만 그렇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감세와 투자·고용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낙수효과 이론이 잘못됐다는 실증 보고서를 발표했다.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159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성장률이 0.08% 감소하는 반면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5년 동안 성장률이 0.38% 올랐다는 내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이 내수와 고용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며 “낙수효과는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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