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동 여론에도…탈원전 독일정부 “이미 끝난 일”
재생에너지로 전력수요 2030년에 80%
2035년까지는 100% 충당할 계획
원전 발전비용 높고 안전성에도 문제
‘탈원전’에서 ‘탈탈원전’으로 돌아선 한·일
전 정부 탈원전정책 범죄시하는 한국정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가동 중이던 마지막 원전 3기마저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탈원전’ 정책을 완료한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의 에너지난으로 원전 재가동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지난 2일 원자력 에너지 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못박고, 재생에너지 증대로 전력수요를 충당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 “원전문제 다 끝난 얘기”
미국 정치전문 일간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이날 독일 공영라디오 <도이칠란트푼크>와 인터뷰에서 원전 재가동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연립정권 내부의 주장에 대해 “원자력 에너지 (문제)는 종결됐다”면서, 그 문제는 독일에선 “다 끝난 이야기”(a dead horse)라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원자력 이용의 종료와 함께 가동 중단된 폐쇄 원전들의 해체도 시작됐다는 건 사실(fact)”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자력 이용을 재개하자는 주장은 새 원전을 짓자는 걸 의미하는 것”이라며, “새 원전을 짓는데는 1기당 15년 간 150~200억 유로가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부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폴리티코>는 집권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 당원들이 정부에게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원전 해체 중단”을 요구하는 정책성명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권 사민당의 연립정당인 자민당 의원단은 최근 마지막으로 가동을 멈춘 원자로 3기의 해체를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독일은 지난 4월 15일 가동 중이던 마지막 원자로 3기의 가동을 중단하고 송전을 차단함으로써 60여 년의 원전 가동 역사를 마감했다.
우크라 전쟁 이후 높아진 탈원전 재고 여론
그러나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 러사아에 대한 제재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수입이 중단되자 에너지 공급과 가격 급등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지난 4월의 여론조사에서는 원전 가동 중단에 대한 반대가 찬성보다 많은 것으로 나왔다.
비판자들은 원전 가동 중단 결정이 전기생산을 위한 화석연료 사용을 오히려 늘리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독일이 원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 ‘탈원전’ 정책은, 2011년 3월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 뒤의 쓰나미로 냉각장치 전원이 끊기면서 원자로 3기의 노심이 녹아내린 ‘멜트다운’과 수소폭발 등으로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 내의 원자로 4기가 파괴된 사태 뒤에 본격 추진됐다.
이후 독일정부는 원전 이용 기술을 청정 에너지 법제화(택소노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 등 원자력 에너지 활용 찬성국가들에 맞서 EU에서 일관되게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데에 앞장서 왔다.
한국과는 다른 독일의 원전 찬반 토론
독일정부의 이런 탈원전 전략은 이처럼 독일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며, 찬성과 반대 주장은 각각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한국정부의 원전 정책은 윤석열 정부 등장과 함께 정반대 방향인 ‘탈탈원전’ 쪽으로 급선회했다. 윤 정부는 문 정부 때의 탈원전 및 재생에너지 강화정책과 그것을 주도한 전문가 및 관리들을 반국가 내지 반사회적 형사범죄 사건을 취급하듯 조사하고 처벌하는 파행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 정권이 추진한 정책이나 국가전략을 충분한 검토를 토대로 평가한 뒤 새 정권 정책이나 전략 수립의 재료로 삼는 것이 아니라 범죄시하고 처벌하는 정치보복 내지 탄압 대상으로 삼는 듯한 모습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라 전체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4월 마지막 3기의 원전 가동이 중단됨으로써 ‘탈원전’이 완료된 뒤에도 독일사회에서는 찬반 토론이 이어졌다. 그때의 찬반 입장을 일본 <아사히신문>이 두 명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정리했는데, 독일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가속시킨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뒤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면서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시켰다가 원전폭발 사고의 충격이 잦아들면서 슬그머니 원전 가동을 재개하면서 탈탈원전 쪽으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는 일본 자민당 정부의 정책 전환이 안고 있는 문제를 염두에 둔 기사로 보인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정적에 대한 정치탄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독일의 원전정책을 둘러싼 찬번 토론의 일단을 소개한다.
에너지정책 전문가인 슈튜트가르트 대학의 안드레 테스 교수와 베를린 공대의 크리스티안 폰히르슈하우젠 교수의 인터뷰 (<아사히신문> 4월 17일) 내용을 정리했다.
가동중단 반대 “원전 재가동 필요하다”
- 15일에 가동을 끝낸 원전의 가동 연장을 지지하는 의견이 6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를 어떻게 보나.
= 에너지 시스템은 3개의 기준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공급을) 신뢰할 수 있는가, 둘째 적절한 가격으로 입수할 수 있는가, 셋째 환경에 문제 없는가, 라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동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독일의 현재 에너지 정책이 이 3개 조건 어느것도 충족시킬 수 없는 리스크(위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 독일정부는 지난해 겨울의 에너지 대책에서 공공시설의 난방 온도를 내리고, 조명에서도 절전할 것 등을 요구했다. 첫째 기준인 공급에 대해 정말 자신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가격과 관련해서는, 독일의 가계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기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에너지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환경면에서, 전기요금에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보조하는 부과금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는 약 200억 유로에 달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커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과금을 주는 방식은 지난해로 끝내고 정부가 직접 보조하는 형태로 바꿨다. 부담자가 전기 이용자에서 국민으로 바뀌었을 뿐 보조금이라는 형태로 거액의 자금이 지출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2030년 재생에너지로 전력 80% 충당목표, 불가능
- 정부는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로 국내 전력소비의 80%를 충당할 방침인데, 가능할까.
=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코스트(비용)면에서 실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풍력과 태양광으로 발전한 전력을 축전지 등의 에너지 저장기술을 활용해 독일 국내에 공급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일이다. 나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태양광, 풍력, 원자력에 들어가는 것보다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을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업계에서도 원전 가동 중단에 대해 불안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력공급이 줄어 전력요금이 올라가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쟁력은 많은 기둥들로 떠받쳐지고 있는데, 에너지 가격도 그 중의 하나다. 에너지 가격이 계속 올라가면 독일의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인 화학산업 등에서의 투자는 타국으로 옮겨갈 것이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보이기도 한다.
원전에도 문을 열어둬야
- 교수님 자신도 가동연장을 지지한다. 정부는 원전 리스크를 지적하는데, 가동연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 기후변동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에 대처하려면 모든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연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독일은 프랑스의 거의 2배다. 독일에서는 원전을 줄이고 석탄화력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를 회수해 지하에 묻는 이산화탄소 회수 저장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탓도 있다.
나는 재생에너지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풍력, 태양광, 지열 등 원자력을 포함해서 어떤 기술이든 제외해서는 안 된다. 기후 보호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동중단 찬성 “방사성 물질 처리가 최우선 과제”
에너지 경제 전문가인 베를린 공대 크리스티안 폰히르슈하우젠 교수는 조건만 갖춰지면 “재생에너지로 독일 국내 소비전력의 100%를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보나.
= 전원 중에서 건설에서 운전, 유지관리까지 포함한 발전량의 단위당 코스트를 보면, 원자력이 높고 원자로의 안전성 등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폐기된 원자로와 방사성 폐기물 처리 코스트도 들어 간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원전 가동을 끝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여론조사는 원전 가동중단에 대한 우려가 뿌리깊다는 걸 보여준다.
= 전력 공급에서 차지하는 원전의 비율은 지난해에 겨우 6% 정도였다. 마지막 3기의 원전을 정지시킨 뒤 당분간 석탄화력발전 가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전력 공급과 전력 요금에 끼칠 영향은 한정적이라고 본다. 석탄화력발전의 가동 등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도 일시적인 것으로,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만회할 수 있다고 본다.
- 가동 중단한 뒤의 과제도 많다.
= 독일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능력은 2020년대 말 시점에도 실제 폐기물 양의 절반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해서는 중간저장소와 최종처분장을 마련해야 한다. 매우 오랜 기간 돈도 들어가는 과정이어서, 정책 담당자는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2035년까지 전력소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
- 독일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국내 소비전력의 80%를 충당할 방침인데, 가능할까.
= 정부는 2035년까지 국내 전력소비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생각인데,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지면 100% 달성할 수도 있다고 본다. 풍력발전의 경우 바람이 불지 않을 때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컨대 지역간에 서로 전력을 융통할 수 있도록 송전 네트워크를 더욱 정비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매스나 수소를 활용한 발전도 백업 전원으로 마련하면 유연한 공급체제를 갖추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지금은 전기자동차를 전력이 남아도는 야간에 충전하고 있는데, 전력 저장 방식에 대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대응은 뭔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술로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민들 에너지 선택 전력공급구조 만들어야
- 일본 등 다른 나라가 ‘탈원전’을 추진할 때 독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은?
= 탈원전으로 이어진 독일의 에너지 시스템 변화는 풀뿌리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독일에서는 지역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에너지 회사의 독점이 아니라 지역에서 시민들 자신이 요구하는 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는 전력 공급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시험 플랜트를 만들어 전력 공급역량을 키우면서 동시에 원전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