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동포들, 홍범도 흉상 이전 "21세기에? 충격적"
"공산당·소련 없어진 지 30년…50만 동포도 적?"
카자흐 고려극장서 기자회견, 흉상 이전 철회 촉구
국방홍보원, 홍범도 장군 독립투쟁 조명 영상 삭제
민주당 "5년짜리 정권이 독립전쟁 영웅을 욕보여"
'흉상 평지 풍파' 핵 오염수 사태 물타기로 보기도
'홍범도 장군 공산당 이력이 문제면 내 가족과 고려인 동포 50만 명도 모국의 적인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1일(현지시간) 진행된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서 고려인 동포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에 적힌 글귀다.
'친일 본색' 윤 정부가 처음엔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했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 다섯 분의 육사 내 흉상 외부 이전을 검토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아 유독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이전하기로 방침을 정한 데 대한 고려인 동포들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드미트리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카자흐스탄 지회장과 리 류보피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 예술감독을 포함한 고려인 동포들이 참석해 윤 정부를 상대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외부 이전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고 연합뉴스가 알마티발로 전했다.
카자흐 고려인 동포들 회견, 흉상 이전 철회 촉구
윤 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 간 충돌 사건인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전력을 문제 삼아 흉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으나 극히 편협한 시각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6월 중국 왕청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한 '봉오동 전투'에 이어, 그해 10월 김좌진 장군 등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가해 일본군을 대파했다. 이들 전투는 당시까지 항일독립군이 이룩한 최대의 전과였다.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을 요구한 한민족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일제가 폭력적 유혈 탄압을 통해 진압하고 1년 남짓 흐른 시점에 민족의 항일 의지를 재점화했던 쾌거였다. 홍범도 장군은 항일무장투쟁사에서 좌우 모두 공인하는 영웅이다.
그 후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뒤 카자흐스탄 등지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다가 1943년 75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장군의 유해는 2021년 광복절을 계기로 봉환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앞서 정부는 2018년 홍범도 장군과 함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육사에 세웠다. 한국군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투쟁에 있음을 천명했다고 하겠다.
"공산당·소련 없어진 지 30년 넘어…50만 동포도 적?"
박 드미트리 지회장은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홍범도 장군이 아름다운 해방된 조국의 품에 안겨 영면하시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 뿌듯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느꼈다"며 "카자흐스탄 국민들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지회장은 처음엔 다섯 분 항일무장투쟁 지도자의 흉상 이전을 검토한 것도 그렇고, 나중엔 1920년대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아 홍 장군 흉상만 이전하기로 한 윤 정부의 결정에 커다란 실망을 드러냈다.
그는 "다섯 분의 독립전쟁 영웅 중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한다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렇다면 공산당원이었던 돌아가신 나의 부친도, 옛 소련에서 태어나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소련 체제 속에서 살았던 나도 제거 대상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 지회장은 이어 "공산당도 소련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는데, 21세기에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덧붙였다.
"체제·정권 바뀌어도 장군은 민족의 독립전쟁 영웅"
현장에 함께 있던 리 류보피 예술감독도 "체제와 정권이 바뀔지라도 홍범도 장군은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 영웅"이라며 "그가 8천만 겨레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극장은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마티 고려극장 안에 걸린 홍범도 장군의 대형 사진 앞에서 진행된 회견에서 이들 고려인 동포가 들었던 플래카드에는 또한 '항일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사태 물타기 하지 마라!'는 글귀도 눈길을 끌었다.
앞서 8월 31일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고, 홍 장군 외 5위의 흉상은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당 "5년짜리 정권이 독립전쟁 영웅을 욕보여"
또한 국방부의 공식 홍보기관인 국방홍보원은 1일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라는 제목으로 2018년 8월 29일 국방홍보원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국방TV'에 실었던 영상을 삭제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장군의 독립투쟁 행적을 조명한 28분가량의 이 영상은 소련 공산당 가입과 관련해선 자막으로 '고려인 보호를 위해 소련공산당에 가입했으나 효과는 없었던 듯'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변경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는 "해군에서 함명을 바꾸거나 하는 검토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2일 논평을 통해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일로, 겨우 5년짜리 정권이 수십 년 동안 본인과 가족의 목숨을 희생해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전쟁 영웅을 폄훼하고 욕보이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지금이라도 철회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