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307일 만에…이태원 특별법, 국힘 방해 뚫고 '성큼'
국회 행안위 통과, 본궤도 진입…연내 본회의 목표
윤 거부권 행사 명분 최대한 없애려 수정안으로
여당 의원들 거칠게 항의하다 표결 전 전원 퇴장
김교흥 위원장 "아, 진짜 해도 너무해" 의결 강행
이상민 장관, 끝까지 "진상 다 규명됐다"며 반대
유가족협의회 "큰 위로‧희망 얻어…야4당에 감사"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참사 발생 307일 만이다.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처리 과정이 남아 있지만 일단 소관 상임위에서 가결됨으로써 특별법은 본궤도에 올랐고 본회의 최종 통과는 시간 문제가 됐다. 유가족들도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회 행안위는 31일 전체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 등 야권 주도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앞서 안건조정위원회에 잇따라 불참했던 국민의힘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특별법의 문제점을 주장하고 고성을 지르기도 하다 표결 직전 퇴장했다. 방청을 위해 회의장을 찾은 유가족 5명이 이 과정을 지켜봤다.
이날 통과된 특별법은 지난 4월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등 야4당이 연대해 총 183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법안에는 이태원 참사의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해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해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초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원안에는 없던 조항도 상당수 담겼다. 피해자의 범위를 희생자의 직계존비속과 형제자매로 한정하고, 단순 현장 체류자와 해당 지역 거주자는 제외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기존 안은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 3촌 이내 혈족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피해자 구조 활동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은 피해구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피해자 여부를 판명받도록 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때는 추천위원회를 별도로 두지 않고 국회의장과 여야, 유가족 측이 직접 조사위원을 추천하도록 했다. 국회의장 추천 1인, 여당 추천 4인, 야당 추천 4인, 유가족 대표 측 추천 2인 등 11명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특별법에 피해 배상 및 보상 방법과 그 절차에 관한 근거 조항을 마련하고, 피해자 간 '연대할 권리'를 명시하라고 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반영되지 않았다. 야당 측은 전날 행안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원안의 일부 조항을 고쳐 이 같은 수정안을 마련했다. 향후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명분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 소속 김교흥 행안위원장이 회의 초반 특별법을 상정할 때부터 위원장석으로 접근해 이를 저지하려 하고 의사진행발언을 요구하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안건조정위원장인 민주당 송재호 의원의 심사보고가 끝나자마자 국민의힘 간사인 이만희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에 나섰다.
이 의원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안건조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많이 고쳤다고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 의도된 내용이 그대로 들어갔다"면서 "피해자 정의 규정 중 3촌 이내 혈족은 삭제했다고 하는데 내용을 보면 피해구제심의위원회를 만들어 거기에서 지정되는 사람은 모두 다 그냥 피해자로 인정하는 길을 만들어놨다. 조사위에서 추천위원회 규정도 삭제했다고 하지만 조사위는 11명으로 4대 7로 구성해놨다"고 항의했다. 나아가 "결국 이 특별법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거부를 계속 유도해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비난 프레임을 씌우고 이태원 참사마저 외면한다는 식으로 정부와 여당에 비정한 프레임을 씌워 총선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라고 특별법 취지를 오로지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한 뒤 "정략적 목적만 가진 민주당의 이태원 특별법은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국민은 이태원 참사 사고 원인을 다 아는데 특별법을 또 만들어 다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느냐"며 "원인은 좁은 골목 내 압사 사고다. 우리 국민은 사고 원인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 역시 "민주당은 위헌적 요소가 많음에도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국면을 이끌기 위해 강경 처리에 나서고 있다"면서 "사고 원인을 밝힐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적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국민의힘은 국민 아픔을 치유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과 달리 특별법 국회 논의에 생떼를 부리고 파행과 불참으로 일관했다"며 "국민의 죽음에 어떤 책임도 안 지고 철 지난 이념과 국민 갈라치기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모습이 이 자리에서 또 다시 재현됐다"고 쏘아붙였다.
같은 당 이해식 의원은 "권성동 의원의 발언을 들으면서 참 어떻게 저렇게 전도된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 정말 가슴이 무너진다"며 "원인이 간단하다고? 그렇게 간단한 사건인데 왜 못 막았느냐. 용산에 10만이 넘는 인파가 운집할 거라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참사 당일 오후 6시 반부터 112에 (신고가) 빗발쳤는데 왜 못 막았느냐"고 되물었다. 또 "159명의 국민이 숨졌는데 무슨 책임을 졌나. 대통령은 지금 공식적으로 사과 한 번 안 했다"면서 "조사위 4대 7 구성을 말했는데 어떻게 유가족이 추천한 2명도 야당 측으로 해석하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어떻게든 감춰보려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억지스러운 모습이 참 안타깝고 딱하다"며 "직전 행안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은 '오송 참사'의 진상 규명을 가로막기 위해 여야 합의를 번복하고 회의장 바깥에서 언론플레이만 했다. 여가위 잼버리 질의도 똑같이 파행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이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국회 파행을 유도하고 있음을 지적한 용 의원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대하는 여당의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법안이 문제라면 심사 과정에서 수정 의견을 내든지, 여당안을 발의해서 대안을 논의하면 될 일인데 여당은 무엇도 하지 않는다"면서 "입법기관이 법안 심사조차 안 할 거면 도대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뭔가? 여당 의원들에겐 이제 더 이상 어떠한 명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가 벌써 300일이 지났다"고 역설했다.
양 측의 의사진행발언이 끝나고 김교흥 위원장이 의결 절차를 시작하려 하자 국민의힘 측은 추가 발언 기회를 달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김 위원장은 "충분히 시간을 드렸다. 아, 진짜 해도 너무하는 것 같다"면서 법률안의 축조 심사에 들어갔다. 고성을 내지르며 소란을 피우던 여당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고, 야당 의원들만 남아 법안을 의결했다.
가결을 선포한 김교흥 위원장이 "이상민 장관 뭐 하실 말씀 있냐"고 묻자 회의장에 대기하고 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발언대로 나왔다. 그는 유가족들의 무수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이미 다 규명됐다며 특별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정부는 그간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 등을 통해 규명이 됐고,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은 특별법이 없어도 현재 진행되고 있으므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지 않음을 말씀드렸고 현재도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향후 법사위, 본회의 등 남은 입법 과정에서 법률안이 합리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전 유가족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소명'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각별한 의지를 밝혀왔던 김교흥 위원장은 의사 일정을 모두 마치면서 "작년 10월 29일 이후 참사 현장에서, 또 분향소에서, 국정조사 회의장에서, 국회 앞에서, 거리에서 유가족이 흘린 눈물을 기억한다"며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 하고 또 국민이 눈물을 흘린다면 닦아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라도 이 법이 통과하게 돼서 행안위를 대표해 유가족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아무쪼록 특별법이 법사의의 체계 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신속하게 의결되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상민 장관도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끝으로 "회의에 참석해준 여야 의원님…. 아, 여당은 안 계시네요"라며 "야당 의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앞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 4당은 지난 6월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면 법사위에서 최장 90일간 논의되며 이후 본회의에 회부되면 60일 이내 상정돼야 한다. 앞으로 최대 150일이 더 소요될 수 있는데, 민주당은 늦어도 12월에는 본회의 통과를 완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행안위 의결 과정을 지켜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및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국회 본청 계단 앞으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향후 국민의힘도 법사위 심의와 본회의 표결에 동참해 참사 1주기가 되기 전에 특별법을 통과시켜줄 것을 거듭 호소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행안위에서 특별법이 참사 발생 307일 만에 의결된 것을 환영한다"며 "여전히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라는 큰 산이 남아 있지만, 특별법 제정을 통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가족들은 물론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을 바라는 시민들은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어 "특별법은 그 1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10‧29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 수습 과정, 후속 조치 등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피해자의 권리 보장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함으로써 공동체 회복을 도모하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이 문장 어디에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나? 이 법률안 어느 조문이 여당에게 불리하고 야당에게 유리한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법률안임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이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할 때까지 집권여당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 한 명, 단 한 차례도 법률안 심의에 참여하지 않고 반대만 했다"고 성토했다.
아울러 "오늘 통과된 수정안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범위를 축소한 것은 피해자의 권리를 축소한 것과 같다"며 "조사기구의 위원 수를 줄이고, 조사를 방해하거나 자료 제출 등을 거부한 사람에게 형사적 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수정한 것은 자칫 조사기구의 원활한 조사 활동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늘의 별이 된 가족들과 시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특별법을 제정해 조사 기구를 설립하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사회의 근간을 만드는 일에 망설임 없이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도 발언에 나서 "참으로 길고 힘든 싸움"이라며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수본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의 한계를 거론하며 "(정부‧여당이) 기존의 법을 권력으로 억누르고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특별법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특별법에 영혼을 갈아 넣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정민 위원장은 "애타는 심정으로 행안위에 계류된 특별법을 상정하기 위해 국민의힘 소속 행안위원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했고 논의를 해달라고 사정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한 엽서를 행안위원들에게 전달했고, 삼보일배라는 고난의 행진도 했다"며 "그러나 결국 국힘당 소속 위원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외면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진심을 다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대변해주려 노력해준 야4당 의원들과 당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