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기업 급식 이어 학교 급식까지?…엄마들 시름

정부가 학교 급식 통해 해산물 소비 촉진 가능성

학부모들, 맘카페·SNS 등에서 "무섭다" 하소연

"애 먹이려 미역·소금 사뒀지만…자포자기 심정"

학교 영양 교사에게 "해산물 메뉴 빼라" 요구도

2023-08-29     이승호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학교 급식을 통해 해산물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아직 없다. 하지만 초중고 각급 학교가 개학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이 지난 24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를 시작하자마자,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기업 구내식당 메뉴에 해산물 확대 포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산물 기업 급식 소비를 내세우면서 ‘학교 급식은 제외’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학교 급식도 언제 포함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불똥’이 학교 급식으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식판에 담은 학교 급식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방사능 먹거리 걱정에…애 괜히 낳았다”

학부모들은 맘카페, SNS 등을 통해 ‘무섭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급식에 해산물 나오면 먹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해뒀다” “급식 식단표를 미리 보고 해산물이 나오는 날은 도시락을 싸줄 생각이다” 등의 내용이다.

일곱살 난 유치원생 자녀를 둔 경기 화성시의 학부모 이 아무개 씨는 29일 시민언론 민들레와의 통화에서 “요즘 애를 괜히 낳았다는 후회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최근 애 걱정 때문에 소금과 미역 1년치를 사뒀다”며 “3년치를 사두려고 했지만 유통기한 때문에 그나마 조금만 산 것”이라고 전했다. 이 씨는 그러면서도 “이런 짓을 해본들 어떻게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자포자기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학부모들은 이 씨처럼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29일 오전 네이버 쇼핑몰에서는 소금과 미역이 검색 순위 2, 3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는 방사능 측정기였다.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내 손으로 직접 방사능 오염을 측정하겠다’는 학부모 등 소비자들의 심정이 읽히는 대목이다.

교육부 “관리하겠다”지만 주무 부처 아냐

학부모들의 우려를 감지한 교육부는 핵오염수 투기가 시작된 다음날인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학생 건강과 안전에 집중해 관계 부처와 협력해 질 좋은 식재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는 애시당초 안전 보증을 할 수 있는 주무 부처가 아니다. 업무분장상 수산물 관리, 수입, 유통 등은 해양수산부와 식약처 소관이다. 결국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별로 없다는 얘기다.

특히 식재료 원산지 심의는 각 학교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한다. 교육부는 “앞으로 학교급식 점검 시 학운위가 원산지 표기 심의와 관련 수칙을 잘 지켰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정도의 입장만 내놓고 있다.

각 교육청 대책 ‘보여주기’로 끝날 수도

각 시도 교육청은 학부모들의 민원 등에 반응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충남도교육청은 25일 조리실이 설치된 급식 학교를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식재료의 방사능 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정밀검사도 연 220회에서 300회 이상 실시할 계획이다.

제주도교육청은 24일 도내 학교급식 수산물 공급업체 4곳에 대해 분기별 1회 실시하던 방사능 검사를 월 1회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울산시교육청은 조리사 대상의 관련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보여주기’로 그칠 공산이 크다. 우선 전수 검사가 아닌 견본 검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검사 주기도 분기 단위로 하든 월 단위로 하든 학부모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멀다.

결정적으로는, 사후 검사이기 때문에 방사능이 검출돼도 약방문조차 없는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사전 검사는 매일 종류가 다른 식재료가 대량으로 학교로 납품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수산물 방사능에 대한 전수 검사를 진행하려고 해도 무조건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사 인력이나 장비의 한계가 있다”며 전수 검사를 하기 위한 예산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검사 횟수를 늘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경기교육청의 관계자는 “현재 도청·교육청이 함께 진행하는 검사의 경우 농산물은 생산·출하·유통 단계에서 사전 검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수산물은 납품 단계에서 이뤄진다”며 “섭취 이후에나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 둘째 날인 지난 25일 중국 베이징 징선수산시장에서 시민들이 수산물을 고르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투기에 항의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선언했다. 2023.8.25 베이징=연합뉴스

학교 영양교사들, 학부모 민원으로 고충

학교 영양 교사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의 민원 때문이다. 서울의 모 초등학교 영양 교사는 “급식 메뉴에서 해산물은 무조건 빼달라는 학부모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 아이들은 벌써 급식으로 나온 해산물을 피하기도 한다. 강원도 내에 근무 중인 한 영양 교사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가 시작된 지난 24일 학생으로부터 “엄마가 생선은 먹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국내산은 핵오염수 방류 전에 잡은 것이니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영양 교사들은 학부모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학부모 요구대로 해산물을 뺀 식재료로만 식단을 구성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일부 학교는 식단에 해산물 식재료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산물 식재료를 쓰더라도 냉동 가공품만 쓸 계획이다.

내일 정부와 여당, 대형 단체급식 기업과 간담회

해양수산부와 국민의힘은 30일 수협중앙회와 대형 단체급식 업체들을 불러 수산물 활용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호출’을 받은 기업들은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CJ프레시웨이, 풀무원푸드머스 등 대형 단체급식 업체들로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간담회에서 학교 급식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막은 일본산, 앞으로 어떻게 될까?

교육부는 25일 보도자료에서 “2021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초중고 및 특수학교 1만 1843곳을 조사한 결과 일본산 수산물을 사용한 현황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현 정부의 ‘공’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3월 이후 학교 급식에 일본산 수산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상황은 어땠을까. 2013년 9월 29일 교육부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에 제출한 ‘2011~2013년 전국 학교급식 일본산 수산물 사용량 현황’ 자료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전국 초중고교에서 급식으로 사용된 일본산 수산물은 432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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