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청춘 바친 정대협 활동가들"…통곡의 최후진술
2심 결심공판서 사무친 토로, 방청석 눈물바다
검찰, 1심 때처럼 징역 5년 구형…"죄질 불량"
윤미향 "할머니들과 30년, 너무나 참담한 결과"
"일본군 위안부 주체적 인권회복 운동 큰 상처"
"활동가들 3년간 온갖 공격받으며 삶 부정당해"
1심은 벌금 1500만 원 선고…사실상 무죄 판결
"이번 사건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법정에 증인으로 서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대협 활동가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 후 10년, 20년, 30년 긴 세월 동안 피해자들과 울고 웃으며, 피해자들에게 험한 욕과 의심을 받아가면서도 다 감내하며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피해자들의 피해의식 또한 활동가들이 함께 극복해 가야 할 책임이라며 청춘의 시간을 정대협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런 활동가들이 지난 3년 동안 '다른 정치적인 의도로' '사적인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할머니들을 이용했다는 공격을 받으며 견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힘겨운 3년을 지내느라 제 동료들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인사를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습니다."
윤미향 의원의 항소심 최후진술은 시종 처절했다. 윤 의원은 지난 3년간 뼈에 사무친 고통과 회한을 되새기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방청석 곳곳에서도 흐느낌이 수시로 터져나왔다.
검찰은 23일 서울고법 형사1-3부(마용주 한창훈 김우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 의원 결심공판에서 또다시 징역 5년을 선고해 달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 1월 6일 윤 의원의 1심 결심공판에서도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문병찬)는 2월 10일 선고공판에서 벌금 1500만 원으로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이날 2심 결심공판에서 "원심은 일부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하고,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하면서도 위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벌금형을 선고했다"며 "하지만 피고인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이뤄진 자금을 횡령해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했다.
또 "횡령 규모가 상당하고 장기간 (범행이) 이뤄진 점, 정대협 측에 변제하지 않아 피해 회복이 되지 않은 점, 범행으로 인해 사회적인 신뢰가 훼손된 점과 정상참작 사유가 있더라도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점을 고려하면 원심은 과하게 가벼워 양형부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심 구형과 같은 선고를 내려주기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윤 의원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검찰이 주장하는 각 혐의별로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보조금관리법 위반 혐의에 관해 "피고인 측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 거짓 서류를 제출할 어떠한 고의성과 동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사의 항소 이유가 없으므로 이를 기각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최후진술에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던 날을 떠올리며 "법정 입구에서 맞닥뜨린 보수 유튜버들은 제가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저를 막고 서서 욕을 쏟아냈다. '윤미향을 사형시켜라' '국회의원 사퇴하라'고 소리치고, 그 장면을 그대로 유튜브로 송출하며 저를 희롱하고 있었다"면서 "가슴에 달고 있지도 않은 국회의원 배지를 떼라고 힘으로 밀치며 저를 위협했다. 30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했던 제 삶의 결과가 이런 현실이라는 것이 너무나 참담하고 슬펐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는 만 27세였던 1992년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간사로 참여하기 시작해 30년 동안 김학순 할머니를 만나고,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고, 240명의 우리나라 피해자들을 만났다"면서 "피해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후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더러운' '수치스러운' 여자들이라는 손가락질과 낙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으며, 당당하게 인권회복 운동의 주체가 됐다. 피해자들과 정대협은 함께 힘을 합해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와 결의들을 이끌어 냈고 미국 하원 의회와 유럽연합 의회, 캐나다와 네덜란드 의회 등 세계 여러 나라 의회의 결의도 이끌어 냈다"고 소개했다.
윤 의원은 "그런데 3년 전,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해 피해자들의 주체적인 인권회복 운동은 언론의 보도에 의해 저에게 끌려다닌 비주체적이고 수동적인 피해자로 폄훼됐다"면서 "어렵게 회복해 가고 있던 피해자들의 존엄은 다시 '매춘부' '가짜 위안부' 등의 공격 속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이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죄스럽다"고 비통해했다.
그러면서 "항소심 판결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가해자가 역사적 사실 인정과 공식 사죄, 배상 등 법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이루어내고, 이러한 노력이 세계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 재발을 막아내는 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재판부에 간곡히 호소했다.
윤 의원은 특히 정대협 활동가들이 오랜 세월 열정적으로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 동안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돌팔매를 맞았던 아픔을 거론하며 "피해자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혐오와 폄훼, 증오 발언들이 평화와 연대, 희망의 언어로 바뀔 수 있는 길이 이곳 법정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국가도 사회도 관심 갖지 않을 때 피해자들과 함께한 활동가들의 수고가 비난과 공격에서 격려와 연대로 변할 수 있도록 따스한 위로의 판결을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또 "지난 2월 10일 1심 판결이 있은 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저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감회도 컸지만 회한이 더 깊었다"며 "제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할머니들이 원하셨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렸는데, 국회의원이 된 후 지난 3년 동안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큰 상처를 남긴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할머니들께 너무나 죄송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지난 3년 동안 언론과 SNS를 통해 유포되고 확산된 갖가지 혐의는 검찰수사 단계에서부터 많은 부분이 무혐의‧불기소 되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위안부 앵벌이, 제 친정어머니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말 등으로 국회의원 윤미향 후원회 통장에 18원을 보내며 저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일들은 지금까지도 계속됐다"면서 "저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제 보좌진들에게도 감정적으로 괴롭힘을 주는 일이었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윤 의원은 부모님을 비롯해 자신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참담했던 순간들도 절절하게 회상한 뒤 "저는 이제 불과 8개월여 시간 후면 국회의원에서 시민으로 돌아간다. 시민운동가가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저와 제 가족, 제 동료들이 입은 상처는 너무 깊고 제가 치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제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오열했다. 마용주 부장판사는 윤 의원을 향해 "괜찮냐, 힘들면 잠시 쉬었다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마지막으로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콩고와 우간다, 코소보 내전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했던 다짐을 지킬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우리 말과 역사를 배우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겠다고 김복동 할머니과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님의 따스한 위로의 판결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20년 9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인 윤 의원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지방재정법 위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했던 핵심 의혹 대다수가 이미 검찰 단계에서 무혐의로 결론 나 애초에 언론 보도가 무리하고 의도적인 여론몰이였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당시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던 혐의는 모두 11개로 ▲정의연 등 단체 자금을 유용해 딸의 유학비를 지출하고 아파트를 사들였다는 의혹 ▲선관위에 신고한 예금 3억여 원에 기부금이 포함됐다는 의혹 ▲남편이 운영하는 신문사에 정의연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 ▲부친을 쉼터 관리자로 등재해 6년여 동안 7580만 원을 지급한 의혹 ▲맥줏집에서 3300만 원을 지출했다는 의혹 ▲보조금을 중복·과다 지급받았다는 의혹 ▲국세청 홈페이지(홈택스) 허위 공시 및 누락 의혹 ▲외교부 및 인권위에 기부금 및 보조금 수입 및 지출 내역을 허위 보고했다는 의혹 ▲안성 쉼터 헐값 매각 의혹 ▲안성 쉼터 불법 증축 의혹 등이다.
모두 윤 의원과 정의연(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파렴치하게 이용해 제 잇속만 차렸다며 언론이 대대적으로 매도했던 주요 의혹들이다. 정의연 활동가들이 극단적인 존재 부정을 당하게 된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던 이용수 할머니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정의연 회계 문제에 관해 "전혀 모른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윤 의원에 대해 다른 혐의점들을 찾아 기소했으며 정의연 측은 "끼워 맞추기식 기소" "억지 기소"라고 반발했다.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했던 혐의는 ▲문화관광부와 서울시 보조금 3억 원을 허위 사실로 수령한 국고·지방 보조금 부정 교부·편취 ▲2015∼2019년 관할관청 등록 없이 단체계좌로 41억 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하고 1억 7000만 원의 기부금품을 개인 계좌로 모집한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개인 계좌로 모금한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업무상 횡령 ▲안성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시세보다 고가에 매입 ▲안성 쉼터의 미신고 숙박업 운영 ▲치매를 앓는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 중 5000만 원을 포함해 7920만 원을 재단에 기부·증여하게 한 준사기 등 8개 혐의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 8개 혐의 가운데 7개를 무죄로 판단했고, 다만 정대협 법인 계좌와 개인 계좌에 보관하던 자금 중 1700여만 원을 개인적으로 횡령했다며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후원금을 목적에 맞게 쓰지 않았더라도 (위안부 문제 해결) 관련 활동에 썼다면 횡령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윤 의원이 계획적으로 횡령하려고 개인 계좌로 송금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지금까지 형사처벌 전력도 없다. 유죄로 인정된 액수보다 많은 금액을 기부하기도 했고, 국내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고 양형 근거를 설명했다.
윤 의원과 함께 기소된 정의연 전 이사이자 정대협 전 상임이사 김모 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윤 의원은 당시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나 "검찰이 무리하게 1억 원 이상 횡령했다고 한 부분도 극히 일부만 유죄로 인정됐으나 그 부분도 횡령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9월 20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