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기업 급식' 추진…"정부가 식단까지 간섭하나"
윤 대통령의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원칙 어긋나
국힘 성일종 "정서의 문제…남에게 권할 일 아냐"
"이러다 군대·교도소·병원·공공기관 급식도?"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24일 오후 1시쯤 시작된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기업의 임직원 구내식당을 통해 해산물을 소비하자”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기업과 수협중앙회 등은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관련업계도 정부 시책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가 전면에 나서 기업을 통해 해산물 소비를 촉진하는 방식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업 급식은 ‘공산 전체주의’ 방식 아닌가?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사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정부는 기업에 협조를 구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기업 급식은 임직원들의 ‘메뉴 선택의 자유’도 침해한다. 정부가 ‘해산물 최종 소비자’가 될 기업체 직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는 얘기는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식재료와 메뉴 선택도 기업의 자유민주주의적 권리다.
“노동자들에게 반강제로 먹이는 건 패륜”
이런 이유로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급식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강조한 '공산전체주의' 방식과 닮았다.
전우용 역사학자도 23일 SNS에 “정부가 기업의 급식 재료까지 간섭하는 건 ‘파시스트 전체주의’이며, 사람들이 먹고 입는 일까지 간섭하는 권력을 ‘저질 생체권력’이라고 한다”면서 “게다가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는 음식을 노동자들에게 반강제로 먹이는 건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패륜’”이라고 비판했다.
성일종 “말릴 일 아니지만 남에게 권할 일인가?”
‘핵오염수가 처리돼 안전하다’는 여당의 주장을 받아 들여도 ‘정서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민의힘 ‘우리 바다지키기 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조차 지난 6월 12일 페이스북에 ‘정서의 문제’를 언급했다.
“물론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도, 하수 처리한 물도 마신다고 해서 몸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그것을 마시라고 권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마시는 물이란 단순히 깨끗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원해서 마시는 거야 말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권할 일입니까?”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총리님 직계 가족하고, 성일종 의원님, 성일종 의원님 직계가족 등하고 같이 드시면 어떻겠나”고 발언한 것에 대한 반박성 글이었다.
성일종 의원의 논리라면 기업 급식을 먹게 된 회사원들도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정서의 문제가 있는데 기업 급식을 본인이 원해서 먹는 거야 말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권할 일입니까?”
성 의원은 지난 달 27일 “이번 여름휴가는 우리 어촌에서, 안전한 우리 수산물을 많이 소비해주십시오.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군대급식, 학교급식, 교도소급식으로 이어질까?
문제는 기업 급식으로 끝날까, 하는 우려다. 정부가 군대 급식과 교도소 급식, 학교 급식 등을 통해서도 해산물 소비를 시도할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군대 조직은 상명하복 문화가 강해 ‘어느날 갑자기’ 병사들의 식단이 바뀔 수도 있다.
시민들은 “이러다 병원, 공장, 정부기관, 공공기관 급식도 포함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기업에 ‘수산물 소비 확대 협조’ 요청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23일 서울 강남구 트레이트타워 무역협회에서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노동진 수협중앙회장 등을 만나 기업 단체급식에 국산 수산물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구자열 회장은 “무역협회 회원사들과 함께 수산물 소비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노동진 회장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최용석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언론 설명회를 갖고 이 얘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최 실장은 “9월부터 연말까지 HD현대그룹 내 전체 임직원 5만 5000명이 우럭과 전복 등 약 100톤의 국내 수산물을 이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반복했다. 이 자리에는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도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정부가 기업 급식을 ‘대단히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수협중앙회는 22일 “HD현대의 임직원 급식에 올해 우럭, 전복 등 100여 톤의 수산물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업인들과 함께 ‘어업인 지원 및 어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수협과 기업, 급식업체가 힘을 합쳐 사내 급식에 국내산 수산물 활용을 확대하자”고 뜻을 모았다. 협약식에 참석해 서명한 기업인은 금석호 HD현대 부사장, 이헌상 현대그린푸드 부사장 등이었다.
관련업계, 정부 시책에 호응하는 모양새
관련업계의 일부 기업은 정부 시책에 호응하는 모양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500여개 사업장의 급식 서비스를 맡고 있는 CJ프레시웨이는 급식 메뉴의 수산물 비중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수산물 소비 촉진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