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폐수 방류 용인해놓고 찬성 아니라는 얼치기 정부
방류 하루 전까지 핵 폐수 '과학적, 객관적' 운운
여당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같다" 궤변
'실시간' 모니터링한다더니 언제 하는지도 몰라
23일 일본의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를 하루 앞두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일본이 방류를 시작하게 되면 거기에 따른 만반의 대처를 이미 다 준비하고 있다"고 호언했다.
그러면서 "실효적인 모니터링도 하고, 만약에 가동 중에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중단할 수 있는 협의도 이미 다 해 놓고 있다"며 "법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검토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장관의 발언을 신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종일관 일본과의 협의를 강조해 온 박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결정인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 투기 시점과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고 말했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방류에 대해서 (일본과) 협의를 긴밀하게 하신다고 그랬는데, 그러면 통보를 이번에 받은 것도 협의해서 날짜가 결정된 겁니까? 일본이 결정하고 그냥 통보한 겁니까?
박진 외교부 장관 일본이 저희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입니다.
김홍걸 그러니까 협의한 게 없네요, 한마디로.
박진 물론, 그거 이외에 다른 여러가지 안전을 위한 검증을 위한 협의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박 장관은 회의 내내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 문제가 최우선"이라는 기존의 정부 입장을 되풀이하며 일본과 협의하고 있다고 했지만, 일본의 방류 결정에 어떠한 정보도 미리 받지 못하고 일방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직접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박 장관은 '일본에 방류를 반대한다는 말을 한 적 있냐'는 김 의원의 질문에 "일본 측에 대해서 우리 국민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은 여러 번 이야기했다"며, 즉답을 피했다.
'찬성이냐 반대냐'는 민주당 전해철 의원의 질문에도 "우리 정부가 방류를 찬성하거나 지지한 적이 없다"면서도 "IAEA 종합보고서 그리고 정부가 독자적으로 실시한 전문가 현장시찰단의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방류계획이 과학적,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답도 못하는 정부
박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는 방류를 찬성하거나 지지한 적은 없지만 △일본에 반대 의사는 밝히지 않았고 △일본의 방류 계획은 '과학적이고 기술적으로' 문제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일방적인 핵 폐수 방류를 찬성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정치·경제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회피를 위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 기만이다.
정부는 전날(22일)에도 이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입장을 밝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차관급인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 1차장은 후쿠시마 일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일본 측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당초 계획대로 방류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오염수 방류에 계획상의 과학적·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방류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찬성을 했는데 찬성은 아니라는 모순된 발언이다.
정부 내부에서 반대할 여지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 찬성을 '사실상' 방침으로 확정했다. 그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원자력 안전 분야의 대표적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IAEA의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핵 폐수 방류를 용인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같다? 궤변
여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이날 외교통일위원회는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의 바다 우리가 지킵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한다' 등 방류 반대 팻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1시간이나 늦게 개의했다.
정쟁 소재도 아니고 국민의 안전과 건강과 관련된 주제의 팻말임에도 여당은 마치 일본을 대변하듯 강력 반발했다.
황당한 발언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국민 설득을 위해서 우리 국회의원들이 나서자"며 "외통위에서 전문가 시찰단 한번 만들어서 여야 공히 도쿄도 가고 후쿠시마도 가고, 거기서 어민들도 만나보고, 식사도 해 보고, 회도 한번 시식을 해 보자"고 했다.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은 "(정부·여당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가지고 (야당이) 국민들이 핵 폐수 먹게 됐다, 우물에 독극물 뿌리는 거 같다, 이러니까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산업자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같은 당 태영호 의원은 "전문가들 속에서는 오염수의 방류가 우리한테 미칠 영향은 사실상 '0(영)'이나 같다는 과학적인 결과 보고서가 많다"며, 핵 폐수 방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후쿠시마 핵 폐수와 관련해 기조가 같다는 궤변에 가까운 주장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서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은 IAEA 기준에 맞는 적합한 절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답변했다"며 과거 발언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상 방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같은 원칙과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박 장관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잼버리 사태'와 같이 정부에 불리한 국면마다 임기가 끝난 문재인 정부의 탓을 하던 여당이, 이번엔 문재인 정부와 같은 뜻이라면서 말꼬리 잡는 것은 여론 물타기, 책임 떠넘기기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로 갈등을 겪었던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후쿠시마 핵 폐수 방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찬성하거나 용인한다는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실시간 모니터링 한다더니 시작 시점도 몰라
한편 정부는 핵 폐수 방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고 했지만, 정확히 언제 시작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정보 공유를 받는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고 홍보했다.
박 국무1차장은 이날 후쿠시마 일일 브리핑에서 "일본 측은 자료를 1시간 단위로 방류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는 별도 웹사이트를 구축하게 된다"며 "웹사이트에서 공개되는 정보들은, 오염수 방류가 진행되면서 유량계나 감시기에서 연속적, 자동적으로 측정되는 데이터들"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국무1차장은 "K4 탱크(방류 전 방사성 핵종의 배출기준 만족 여부를 측정·확인하는 설비)에 보관된 오염수의 핵종별 농도값과 같이, 시료 채취와 분석 작업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일본 측은 이 데이터들을 도쿄전력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할 예정이지만 방금 말씀드린 데이터의 특성 때문에 사전에 데이터 공표 시점을 예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당장 24일부터 방류하는데 모니터링 시스템조차 구축이 안 된 것이다.
박 국무1차장은 그럼에도 "모니터링을 적시에 수행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생산·공표하는 주체인 일본 측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며 "관련 정보에 대한 적시 연락, 또 이상치 발생 시 신속한 공유 등을 일본 측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자화자찬했다.
박 국무1차장은 한국 정부가 반대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유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과학적·기술적, 그 다음에 국제기준 등에 따라서 평가해 보았을 때 당면한 또는 명시적인 어떤 문제점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일본의 방류 계획에 대해서 일본이 스스로 책임하에 결정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한국 정부가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이 문제로 연결할 문제는 아니"라며 "그 과정을 얼마나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느냐, 이 문제로 봐야 되지, 굳이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 논점을 좁혀서 다툴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