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모순…"오염수 피해 없다”며 자국민만 "배상"
손실발생 전제로 한 "어민 풍평피해 보전"
자국민 배상하면 외국 피해자도 배상 마땅
일 "주변국에 피해 생길 거라고 생각 안 해"
일본 정부 외면하면 한국 정부가 나서야
일본정부가 각료회의에서 이르면 24일부터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해양 투기하기로 공식 결정함에 따라 도쿄전력은 구체적인 투기 실행계획을 밝혔다. 아울러 일본정부는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풍평(소문)피해’를 입게 된 어업 종사자들을 비롯한 자국민 피해자들에게 배상/보상 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핵오염수 투기가 과학적으로 절대 안전하고 인체 등에 대한 피해도 거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만일 그렇다면 배상/보상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배상/보상을 하겠다는 것은, 풍평 때문이든 아니든 해양 투기 때문에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걸 전제로 한 것이어서 자가당착인 면이 있다. 그런 논리라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역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인한 불안과 불신 때문에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고 수출입 차단 등의 조치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이웃 나라들의 무고한 동종 종사자들이나 소비자들에게도 배상/보상을 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의 국제적 집단 배상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도쿄전력 올해 4차에 걸쳐 3만 1200톤 ‘방출’
일본정부는 22일 각료회의를 열어 이르면 24일부터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시작하기로 정식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도쿄전력은 올해 핵오염수 저장탱크 30개 분량인 약 3만 1200톤을 4회에 걸쳐 바다에 흘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줄곧 반대해 온 중국과 홍콩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및 식음료 수입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되고, 한국 등 주변나라들의 정계와 시민사회의 대응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2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는 각료회의에서 “폐로(원전 폐기)를 진척시켜서 후쿠시마 부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처리수의 처분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면서 기상 조건 등에 지장이 없다면 24일에 ‘방출’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해 “국제사회의 정확한 이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풍평(소문)피해 대책으로 기금 창설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풍평이나 어업 종사자들의 생계 유지 불안에 대처해야 하는데, 설사 앞으로 수십 년의 긴 세월이 걸리더라도 처리수의 처분이 완료될 때까지 정부는 책임을 가지고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첫 회 7800톤 17일에 걸쳐 투기
각료회의 결정에 따라 도쿄전력은 해양 ‘방출’을 위한 작업에 착수해, 1회째 ‘방출’ 때는 트리튬(삼중수소) 외의 방사성 물질 농도가 기준치 이하인 것을 확인한 약 7800톤의 핵오염수를 약 17일간에 걸쳐 방출할 예정이다. 그때 핵오염수 지하터널 방출구 주변의 트리튬 농도 측정 빈도를 강화해 1리터당 700베크렐을 넘으면 방출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은 올해에 방출할 4회분 합계 3만 1200톤에 포함된 트리튬은 약 5조 베크렐이라며, 방출계획에서 정한 연간 방출량 상한선인 22조 베크렐의 4분의 1 이하라고 주장하면서 “첫 해여서 신중하게 하자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후쿠시마 제1원전 핵오염수 저장탱크는 1000개가 넘으며, 8월 3일까지 약 134만톤의 핵오염수를 저장하고 있었다. 핵오염수는 지하수와 빗물 등의 유입으로 계속 늘고 있어서 바다로 방출한다고 해서 그 분랑먄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도쿄전력은 폐로 완료 목표인 2051년까지 방출을 끝낼 수 있도록 계획을 연도마다 책정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내년 이후 방출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폐기 핵연료 추출 몇 그램 수준, 2051년까지 폐로 불투명
하지만 사고원전 1~3호기의 합계 880톤에 이르는 녹아내린 핵연료 더미의 본격적인 제거 일정은 여전히 전망조차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원래 2021년 중에 2호기부터 시험적으로 핵연료 더미 제거작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필요한 장치 개발 등으로 지연돼 2번이나 연기된 뒤 올해 하반기에 다시 시작할 예정이지만 핵연료 더미 추출 예정량은 겨우 몇 그램에 지나지 않아 나머지 대량의 핵연료 더미 제거는 아직 어떻게 할지 방법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2051년까지 폐로 작업을 완료하겠다고 한 목표 달성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하수나 빗물이 스며들어 핵오염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는 핵연료 더미를 추출해서 처리할 장소가 없어 핵오염수 저장탱크 자리 일부를 비워 장소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진의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현어련 “앞으로도 방출 반대”
한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이날 후쿠시마 현을 찾아가 우치보리 마사오 지사 등과 만났다. 후쿠시마 현과 사고원전이 있는 후타바마치, 오구마마치 대표들은 니시무라 경산상에게 안전을 철저하게 확보하고, 확실한 배상을 실시하며, 핵오염수 발생원이 되는 녹아내린 핵연료 더미에 접촉한 핵오염수를 줄일 것 등 5개 항목의 요망서를 전달했다. 니시무라 경산상은 후쿠시마 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현어련)에도 참석했는데, 현어련의 노자키 데쓰 회장은 “앞으로도 방출반대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절대 안전하고 피해도 없다면서 배상하는 이유
이처럼 후쿠시마 현을 비롯해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더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들의 어업 종사자들이 여전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기본적인 반대 자세를 고수하면서 “철저한 안전과 확실한 배상”을 요구함에 따라 일본정부는 경산성을 중심으로 수백억 엔 규모의 기금들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배상/보상금을 지불해 반대 움직임을 무마하거나 제압하려 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원래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보고서 등을 근거로 핵오염수 해양 투기계획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방출된 핵오염수가 인체나 생태계에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이 자국 어업종사자들을 비롯한 예상 피해자들에게 배상/보상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과학적으로 절대 안전하고 아무런 피해도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산성 등 일본정부 부처들이 기금들을 마련해 자국 어민 등 예상피해자들에게 배상/보상을 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안전하고 피해도 없지만’ 방사성 물질 투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불신’으로 핵오염수 방출해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 근해 생산의 수산물 소비를 꺼림으로써 어민 등 수산업 종사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풍평(소문)피해 등에 따른 현실적인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는 취지와 명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명분이나 취지는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인한 손실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함으로써 해양 투기가 절대 안전하며 아무런 피해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나아가 IAEA의 주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가당착적인 것이다. 이는 그런 명분이나 취지가 실은 해양 투기 반대를 가라앉히거나 덮어버릴 심산으로 내세운 정치적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말해준다.
자국민에 배상하려면 외국 피해자들에도 배상해야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그런 이유, 즉 풍평피해 등의 이유로 자국내 예상 피해자들에게 배상/보상을 하겠다면, 당연히 풍평의 또다른 피해자들인 한국과 중국, 홍콩 그리고 태평양도서국 주민들과 어민들, 수산업 종사자들에게도 배상/보상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이들 주변 나라들에서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수산물 소비가 크게 줄어들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가 강화되면서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 매스컴의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런 풍평피해의 원인 제공자는 분명히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며 그들이 결정한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다.
따라서 자국민 풍평피해에 대한 배상/보상을 하겠다면 당연히 주변 나라들 풍평피해자들에게도 배상/보상을 해야 마땅하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자신들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 때문에 무고한 이웃나라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 배상/보상을 거부한다면 국제적인 집단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
일본정부, 한국 중국 어민에겐 배상/보상 않을 것
일본정부 관계자는 22일 외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한국과 중국 어민들에게도 일본 어민처럼 보상을 하느냐”는 질문에 “방류로 인한 방사선 영향은 무시할 정도여서 주변국 사람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MBC 뉴스> 8월 23일) 배상/보상을 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일본정부의 이런 주장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이자, 중국정부도 지적했듯이 지극히 자국 중심주의적이며 이기적인 사고의 소산이다. 일본정부가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하겠다면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사고와 핵오염수 해양 투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고한 이웃나라들의 피해에 대해 동일한 책임을 지고 배상/보상해야 마땅하다. 일본정부가 통상문제나 영토문제 등과 관련해 걸핏하면 내세우는 ‘국제법’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그래야 한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생각이 어떻든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태평양도서국 풍평 피해자들은 일본 내의 풍평피해자들과 꼭같은 피해 배상/보상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해 요구해야 한다. “방류로 인한 방사선 영향은 무시할 정도여서 주변국 사람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본정부 관계자의 답변이 논리적 정합성을 지니려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자국민 풍평피해자들에게도 배상/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
한국정부가 나서야
일본정부가 같은 사안을 두고 자국민에게만 배상/보상하고 외국 피해자들 배상/보상은 외면하는 차별적인 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일본정부가 한국 피해자들에게 배상/보상하도록 교섭, 압박하거나 자체 예산을 책정해서 지원한 뒤 일본에 구상권을 발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시종일관 일본정부 입장을 두둔해 온 윤 정부에게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해양 투기에 대한 홍콩의 반응
홍콩의 리자차오(존 리) 행정장관은 22일 10개 도현(都県. 도쿄도+9개 현)의 수산물의 수입을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시작되는 24일부터 금지하겠다고 중국 본토인들이 보는 SNS <웨이보>에 올렸다. 그는 해양 투기가 “식품 안전과 환경오염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지극히 무책임한 짓으로,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썼다. 홍콩이 금수 조치를 내린 10개 도현에는 사이타마와 나가노 등 내륙 현의 식음료도 포함돼 있다. 중국정부는 2011년 원전 사고가 난 이후 지금까지 니가타산 쌀을 뺀 10개 도현산 수산물을 포함한 모든 식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췌잔완 홍콩 환경생태국장은 “대규모 해양방출이 초래할 안전성 확보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와 얘기해 왔으나 ‘좋은 회답’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수 대상은 후쿠시마 외에 도쿄, 지바, 도치기, 이바라키, 군마, 미야기, 니가타, 나가노, 사이타마 등 10개 도현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홍콩은 일본산 농림수산물 식품 수입에서 2020년까지 16년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중국에 이어 2위로 수입 총액은 진주나 가리비, 해삼 등 2086억 엔(약 1조 9000억 원)에 달했다. 홍콩에는 일본 요리점이 2000개 가까이 있다.
홍콩정부는 일본정부가 해양 투기 움직임을 강화한 지난 6월, 모든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수입시 검사를 강화했고, 7월에는 실제로 해양 투기가 강행된다면 그때까지 후쿠시마 현 야채나 과일 등으로 국한했던 금수 조치를 10개 도현산 수산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홍콩에서는 일부 일식집이 베트남 요리점으로 전환하고, 수산물 수입처를 일본 10개 도현 이외의 곳으로 교체하는 일식집들도 등장했다.
중국 본토의 반응
중국정부도 이날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며 더욱 수입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국정부와 국영 미디어들은 오염수를 ‘핵오염수’로 표기하면서 해양 투기의 위험성을 거듭 주장했다. 인터넷에는 일본산을 수입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이 떴고, “안전하다면 왜 일본 영토 내에서 처리하지 않는가”라는 지적들이 많았다. 상하이의 한 회사원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걱정이다. 금방 문제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라고 했으며, 일본음식 팬을 자처하는 베이징의 한 전직 여성 공무원은 “내 주변에도 방출 전부터 일본의 식자재는 피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과학적이지만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30여년에 걸친 장기 방출의 영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일본인들도 정말로 (일본정부 주장을) 납득하고 있나” 등의 의문도 실렸다.
중국정부는 지난 7월부터 세관 검사를 강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생선(선어) 수입을 금지하는 등 견제를 강화해 왔다. 일본 수산물을 취급하는 중국 내 일식집은 중국산 등으로 서둘러 재료를 교체하고 있는데, 해양 투기가 시작되면 식재료의 ‘탈일본’이 고착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중국세관총서가 18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7월에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수산물 총액은 전월 대비 33.7% 줄어든 2억 3451만 위안(약 423억 원)이었다. “일본 생선은 무섭다”는 얘기들이 나돌고 “일본산 식재로 손님을 끌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아사히> 8월 22일)
한국에서도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해양 투기 반대운동이 일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이날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민주당 의원들이 “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즉각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해양 투기를 “오염수 테러”라고 부르는 의원들도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말 여론조사에서 “바다와 수산물 오염에 대해” 80% 가까이가 걱정한다는 응답을 했다며 핵오염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오염수 문제를 정치문제화해서 윤석열 정권을 공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고, 민주당이 핵오염수 문제로 중국정부와의 공동투쟁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의 정치적 동기를 부각시켰다. 이에 비해 정부 쪽에 대해서는 “해양 투기 계획상의 과학적 기술적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는 정부 기자회견 때의 말을 인용하며 이해를 표시했다고 지적했다.